메달 수집가, 이승훈
국가 대표에게 자국 올림픽 출전이나 메달 획득은 100년에 한 번 떨어지는 혜성을 보는 것만큼 어렵다.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 금메달 두 개, 은메달 세 개로 아시아 최다 올림픽 메달 보유자다.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그 소식을 듣는데 좀 놀랐어요. 정말 내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메달을 늘리고 싶어요.” 이승훈은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 금메달, 5,000m 은메달,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팀추월 은메달을 획득했고,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매스스타트 금메달, 팀추월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이번에 정식 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는 초대 우승자다. “굉장한 영광이죠. 제가 죽어도 역사에 남는 기록이잖아요.” 그는 금메달이 확정되고 인터뷰를 하다 울음을 터트렸다.
“피니시에 들어오자마자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 감격스러웠어요. 그래도 울진 않았는데, 나중에 기자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그때 기분이 다시 떠올라서 감정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이승훈이 뛴 경기의 총거리는 37,400m. 마라톤과 맞먹는다. “힘들었냐고요? 솔직히 하루 훈련량이 그보다 많아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밥, 훈련, 밥, 훈련을 반복해요.”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지 1년도 안 돼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남자 10,000m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시상대에 함께 선 선수들이 이승훈을 번쩍 들어 올려 사진을 찍었다. 멋진 세리머니기도 했지만 그들에 비해 작은 177cm의 키와 몸집을 보여주는 사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지 7개월 만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이유를 분석할 때 엄청난 폐활량, 깔끔한 코너링, 강인한 지구력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승훈은 제약 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훈련량을 얘기한다.
“웬만한 선수보다 더 많이 훈련을 해요. 선배로서 할 일은 제 수준을 떨어트리지 않고 정상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야 후배들도 잘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주력 종목으로 훈련해온 매스스타트 외에 5,000m와 10,000m에 출전한 이유도 선수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 제가 출전하지 않으면 자국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타격이 있었어요. 하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음에도 격려를 많이 받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피드스케이팅에 빠진다고 했다. 이전엔 지옥 같던 훈련마저 이젠 재미있다고. “처음 메달을 딴 뒤에 스케이트가 더 재미있어졌어요. 마음이 가벼워져서 그런가 봐요. 스피드스케이팅은 선수와 기록만 존재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한 종목이에요. 한 바퀴 한 바퀴 돌며 기록을 깨나갈 때 희열을 느껴요. 오로지 나와 ‘그것’만 존재하는 멋진 경험이죠.”
먼 훗날 스케이트화를 벗을 때의 꿈은 지도자가 아닌 전업주부.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옆에서 조언을 잘해주는 선배로 충분하고, 대신에 좋은 전업주부가 되고 싶어요. 메달보다 그 꿈이 더 어렵게 느껴져요.(웃음)”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YOUNGKYU KONG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BEB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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