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화장품의 #미닝아웃

2018.03.26

화장품의 #미닝아웃

아무리 ‘그린’을 부르짖어도 화장품은 존재 자체가 친환경적이지 않다. 자연에 해를 끼쳤다면 그만큼 갚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몇 해 전 뉴욕에서 토네이도를 만났다. JFK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는 뿌리가 뽑힌 채 쓰러진 거목과 사람 키보다 큰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고속도로에서 1명 사망” “기상 이변” “원인은 인간” 유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시속 3km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시체를 옮기는 장면을 목격한 나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에코 라이프에 돌입했다. 가방에는 언제나 스테인리스 찬합이 들어 있었고 기사용 제품을 협찬받을 때 종이봉투를 쓰지 않기 위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협찬 백을 만들었다. ‘유난’을 떠는 나에게 지인이 도전적인 질문을 했다. “네가 분석하고 추천하는 화장품 자체가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 나는 답을 콜린 베번의 책에서 찾았다.

<노 임팩트 맨>은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 콜린 베번이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고 1년간 살아본 이야기다. 냉장고를 쓸 수 없으니 우유를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고 자전거나 킥보드로 갈 수 없는 곳은 포기한다. 이 책에서 그가 알려주지 않는 건, 용변 볼 때 휴지 대신 뭘 썼는지 뿐이다(인간의 존엄을 위해 그것까지 묻진 말아달라고 했다). 사투를 마친 그는 “도시에서 살다 보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즉 노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법에 규정된 화장품의 정의는 “인체를 청결·미화하여 매력을 더하고, 용모를 밝게 변화시키거나 피부·모발의 건강을 유지 또는 증진하기 위하여 인체에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용하지만 작용이 경미하다고? 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어리둥절할 거다. 개인적으로는 화장품을 옹호한다. 위의 정의 몇 줄 안에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긍정적 육체 & 정신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지켜봐왔으니까. 단, 공장에서 기름을 돌려 패키지를 생산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 찾은 안티에이징 원료를 실어오기 위해 배를 띄웠다면 자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 노력하는 브랜드 편에 서고 싶다.

꼬달리는 연간 매출의 1%를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1% for the Planet’의 멤버다. 2020년 전에 6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게 목표다. 클라란스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예 알프스 청정 지역을 사들인다. 로레알 그룹은 바다를 오염시키는 클렌저나 각질 제거제에 들어 있는 미세 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를 미네랄 점토나 과일 씨앗 분말로 대치하고 있다.
사회적 착취를 막는 것도 ‘지속 가능함’을 실천하는 일환이다. 광물에서 추출한 천연 운모는 대표 글리터 성분. 러쉬는 올해 1월 1일부로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반짝이를 합성 운모로 대치했다. ‘내추럴’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겠지만, 동굴을 깊게 파 운모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는 데다, 유통에는 마피아가 개입한다. 러쉬는 그간 감사 보고서가 있는 운모만 사용해왔지만 최근 정직함을 보증해주는 기관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자 미네랄 합성 운모를 사용하기로 했다(물론 바다로 흘러가도 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노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회, 경제, 환경적 보상에 골몰하고 있다.

31년 전,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아예 제품 라벨에 사용법과 성분을 프린트해버린 이솝. 수많은 미투 브랜드가 이솝의 모던한 패키지를 베꼈다(물론 그들은 단상자와 설명서도 만들었다). 며칠 전 내한한 공동 창립자 수잔 산토스에게 이 칼럼을 위한 인터뷰를 부탁했더니 완곡히 거절하며 대신 따뜻하게 손을 잡아줬다. “이솝은 ‘지속 가능함(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 브랜드”이며, 본래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매년 지구의 달 4월이 되면 많은 뷰티 브랜드가 초록색 염료로 캠페인 문구를 새긴 에코 백을 만들고 기부 보도자료를 통해 ‘#미닝아웃’을 하곤 한다. 물론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이고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미닝아웃’을 위해 또 다른 예쁜 쓰레기를 생산하지는 않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즐겁게 쇼핑해 뇌의 행복을 누리되, “종이봉투 드릴까요, 비닐봉투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봉투 필요 없어요”라고 답하는 자세로 말이다.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민경복
    모델
    김민지
    헤어
    이경혜
    메이크업
    류현정
    프랍 스타일링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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