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말한다. 가족과 나 사이는 20cm, 친구와 나 사이는 46cm, 회사 동료와 나 사이는 1.2m가 필요하다고. 당신과 나 사이의 적정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나와 아내의 거리는 68cm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심리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 박사에 따르면 인간이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거리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타인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는 사적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끼면서 불편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소속과 안정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면 외롭거나 불안해지거나, 혹은 배척당했다고 느끼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남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는 불안해지고 너무 가깝다고 느끼면 불편해진다. 물론 이 거리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충 아는 사람이 너무 가까이 앉으면 불편하지만, 애인과는 살을 맞대도 행복하다. 장소에 따라서도 편안한 거리의 기준은 달라진다. 사적인 공간에서는 기준이 더 엄격하다. 반면에 공공장소에서는 조금 너그럽다. 극장이나 지하철, 버스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바짝 붙어 서거나 앉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그 장소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카페라면 불편해진다. 성격에 따른 차이도 있다. 식당에서 낯모르는 다른 사람과 천연덕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게 먹다간 체하기 십상인 사람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애초부터 감성이 메마른 편이었다. 어린 시절 혼자 구석에 틀어박혀 그림이나 그리며 놀기를 좋아하던 나를 보며 부모님은 자폐증이 아닌가 걱정하실 정도였다. 나는 진짜 사람보다는 스크린 속의 사람들이 더 좋았다. 아니, 편했다는 쪽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영화 속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게, 실제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사실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늘 사람들이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내 심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친구들과 지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들 무리에 끌어들여줬을 뿐, 내가 접근해본 적은 없었다. 문제는 그래서 정말 내가 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계 형성 기술 백치인 나에게 심리학 공부는 연애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수 있었던 건, 지금의 아내가 나를 거두어주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당시에 아내는 내 심성에 대해서 온전히 알지 못했고, 나 역시 아내가 내 상상과 다른 실제 사람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적정한 거리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어쨌든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 나와 아내의 거리는 68cm다. 내 짧은 팔 길이만큼이다. 그보다 가까우면 울컥하거나 상처를 입히고, 너무 멀면 불안해진다. 어쨌든 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늘 아내가 있었다. 내가 거리를 두려 하면 아내가 좁혔고, 아내가 거리를 두려 하면 내가 좁히는 식이었다. 최근에는 주로 후자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아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또다시 불안해진다.
장근영(심리학자)
나와 어린 시절 ‘나’와의 거리는 0.1cm
어린 시절의 나는 소심하고 잘 우는 아이였던 것 같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아 꽤 애를 먹였다고 한다. 화장실까지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엄마는 웃으시곤 했다. 아주 오래 그러했지만 서서히 나는 내 세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웃들은 겁이 많았던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덤으로 콩나물이나 조개 같은 것을 듬뿍 얹어주던 상인들 중에는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분들도 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 많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마음
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 사건이 ‘나’를 키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길고양이가 느닷없이 출현하는 골목길이다. 가난하고 후미진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공사장 인부들이나 노점 상인들은 일을 하다가 마찰이 생기면 거친 욕을 내뱉으며 마구 싸워댔지만 다음 날이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웃으며 일상을 보내곤 했다. 어린 내게는 다소 이상한 일이었지만 안도감을 동시에 주는 모습이었다. 옆 동네 대학에서 자주 최루가스가 날아들어 눈물 콧물을 뺐고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댔다. 그 가스 속에 실린 울분과 분노를 어린 나는 아직 몰랐을 것이다. 작고 사소한 기억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변함없이 내 마음 속의 등불 같은 것이 되어준다. 좋게만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억압과 차별의 순간에 느끼는 절망을 뒤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기에 어리고 심지가 약했다. 침묵과 관찰로 배움을 채워갔으니 마음속에 그것은 죄의식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을 시간, 그것이 바로 현재이다.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 나는 줄곧 글을 쓰고 있다. 뒤늦게 수다를 떠는 셈인데 내 방식으로 다시 호흡하는 과거의 시간은 조금 다른 세계로 나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어쩐지 그런 시간은 희미해지고 요즘의 나는 조금 더 안락하게 살아보려고만 하는 것 같다. 어쩌지 못하는 욕망의 덩어리를 굴려가다가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의 흔적을 서둘러 벗어버리고 싶던 시절이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공동의 호흡과 나를 키운 울타리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공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을 것이다. 자주 나의 욕망과 내가 지나온 시간을 저울질하며 나의 현재 삶을 단속하고는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동과 변
화의 가능성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언제라도 어린 시절의 나와 0.1cm쯤 떨어져 있다.
간혹 학창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 옛날 얘기를 하고 있자면 무척 재밌는 사실을 발견한다.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 한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의 그 차이가 자리의 즐거움을 더한다. 어떤 반가움과 아쉬움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며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일 테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조건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도 삶은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좀더 복잡한 국면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고통을 어렵사리 극복하고, 희미한 희망을 짓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전혀 그렇지 못해 상처를 끌어안고 평생을 견뎌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고통의 근원에는 타인과의 관계만큼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자기 이해의 모순과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통받고 방황하지만 그러면서 자주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며 현재의 ‘나’를 되비추고 미래의 ‘나’를 점쳐볼 것이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도 0.1cm쯤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 희망 아니겠는가. 그 미래에 ‘나’는 누구와 어떤 순간을 함께할 것인지는 자기 자신의 선택과 이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바깥으로부터 규정된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 미완인 채 자신의 부족함을 끌어안는 것, 다른 사람과의 교섭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꿈꾸는 것, 자주 절망하지만 믿음 안에서 희미한 불씨를 되살려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이자, 사랑의 힘이 아닐까. 그 희망은 나를 나 자신의 고유함 위에 놓는 것과 나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사이의 긴장과 탄력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움직이는 거리에 의해 이 세계는 완고한 규정을 조금씩 벗어나 아주 약간씩만 빛이 난다.
이근화(시인)
나와 작가의 거리는 5cm~2만km
그래픽 디자이너인 나는 주로 책, 도록, 음반을 만든다. 내가 다루는 재료인 글, 이미지, 음악을 만든 작가는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그들의 창작물을 다른 매체로 옮기는 일이다. 그래픽 번역인 셈이다. 모든 번역이 그렇듯 출발점이 되는 작품과 완벽하게 합치하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에서 각자의 레인을 지키며 나란히 달리는 수밖에 없다. 서로 부딪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폭인 1m라면 적당할까. 그런데 원작과 번역물 사이의 유격에서 신선한 관점이 움트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내려면 일정 거리를 두는 데 더해 가끔 서로 포개져도 괜찮겠다.
때로는 제대로 짚어내고 때로는 오독하겠지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흡수해 작가의 관점을 내 관점인 양 취하는 것이 첫 단추다. 이때 나는 작가(작품)를 30cm 앞에 둔다. 누군가를 마주하거나 무언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탐색하기 적당한 거리. 그 속까지 들여다보아야 하니 어쩌면 -5cm쯤 파고드는 일일지도.
단추를 다 채우고 구상을 시작하면 작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내 안에 스며든 작가의 관점을 토대로 내 길을 찾는 단계다. 작가에게 등을 돌리고 보이지 않을 만큼 물러선다. 500m? 1km? 40km? 그때그때 다르다. 필요한 만큼 물러서되 너무 벗어나지 않는지 틈틈이 점검한다. 언제라도 5cm 이내까지 다가가 50배율 접사 렌즈를 장착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800km 밖으로 물러선다. 감당할 수 있다면 아예 대기권을 벗어나 2만km쯤 물러서도 좋겠다. 이쯤 되면 물러선다기보다 나아가는 것이겠지. 멀어지는 만큼 새로운 시선이 열리리라.
한쪽에 작가의 글, 이미지, 음악이 있고 한쪽에 책, 도록, 음반이 있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누군가의 글, 이미지, 음악이 나를 만나는 바람에 어떤 책, 도록, 음반으로 나온다. 다른 디자이너가 매개자였다면 다른 형태로 나왔을 테다. 그 사이에 내가 있게 된 인연이 작업물로 열리는 셈이다. 나와 작가의 거리는 열매의 지름만큼일지도 모른다. 수박만 할지 살구만 할지 모르지만.
이기준(그래픽 디자이너)
그와 세상과의 거리는 5m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장난기 많은 어른들이 어린 그의 얼굴에 까칠한 수염을 비빌 때처럼 늘 제대로 숨쉬기가 어려웠다. 사과 봉지를 건네는 상점 주인의 얼굴에는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곡선이 있었다. 저녁 내내 어른거리던 그 얼굴은 급기야는 꿈속에 나타났다. 영화관에 가려고 버스를 탔을 때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트레이닝복에 새겨진 마크는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그는 완전히 충족되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갈 필요가 없어졌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는 같은 줄 끄트머리에 서 있는 지원자가 신고 있는 붉은색 가죽 구두 때문에 면접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외워왔던 그럴듯한 문장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는 자주 매혹되었다. 그건 때로 비율이었고 때로는 색상이었으며 그보다 더 자주 어떤 모양이었다. 물을 마시고 난 뒤 컵에 남아 있는 물방울의 무늬나 늘어뜨린 커튼에서 흘러내리는 주름의 각도를 그는 사랑했다. 다리를 떠는 사람들은 질색이었는데 시야에 그 움직임이 들어오는 순간 시선을 빼앗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절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는 누구에게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친구들과도 두서너 마디 이상은 나누기 어려웠다. 두 마디까지는 어떻게 노력해보더라도 세 마디 이상 나누면 포화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애인은 당연히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어떤 남자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걸 보았다. 맞은편에 아무도 없는데도 그 남자는 코앞에 사랑하는 이를 마주하고 있다는 듯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더 멀리 던져 5m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인이 손을 흔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우린 둘 다 사람과 가까이 있질 못해요. 난 냄새를 너무 진하게 맡고 아내는 촉각에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가까이 가는 순간 우리한텐 거의 지진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거죠.”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에 분명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먼 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남자에게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서서히 죽이며 멀어졌다. 그리고 5m 정도 뒤로 물러나 외쳤다.
“고마워요! 난 지금 당신에게서 희망을 들었습니다.”
남자가 엄지와 검지를 맞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는 여전히 많은 것에 매혹된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어떤 모양도 소리도, 색깔도 아니다. 그것은 때로 어떤 사물이고 때로는 어떤 풍경이며 종종 어떤 다른 사람이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가 코에 검은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거나 물건을 사는 일은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고 이젠 화려한 색깔의 구두나 그를 흥분시킬 만큼 멋진 마크가 달린 옷을 입은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다. 무심해질 수 있었으므로 그만큼 가까이 갈 수도 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고 난 비행기 구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느 봄날의 산책길, 그는 콧등에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다가 5m쯤 떨어진 곳에서 귀마개를 끼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그 사람이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예감했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속삭였다.
“이봐요, 저기, 저,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 귀를 막고 있는 겁니까?”
최정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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