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D2C 시대

2018.04.12

by VOGUE

    D2C 시대

    ‘다이렉트 투 컨슈머.’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대세다. 이 새로운 방식이 다음 세대의 럭셔리를 정의한다.

    “어제 뉴욕에서 선보인 2018 F/W 컬렉션을 선주문할 수 있는 첫 기회를 여러분께 드리게 돼 기뻐요. 내 웹사이트에서 가방, 신발, 선글라스를 포함한 전 컬렉션을 일정 시간 동안 주문할 수 있어요. 지금 빅토리아베컴닷컴을 방문하세요!” 빅토리아 베컴은 2018 F/W 컬렉션 쇼를 선보인 다음 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포스팅했다. ‘패션에 미소를 빼앗긴’ 걸로 알려진 디자이너는 종종 런던 도버 스트리트 매장의 윈도를 불투명하게 만들 정도로 쌀쌀맞다. 이 얼음 여왕의 도도함을 녹인 건 ‘다이렉트 투 컨슈머(Direct-to-Consumer, 줄여서 D2C)’ 비즈니스. 말 그대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고 판매하는 방식이다.

    “가장 기본 형태의 D2C는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거죠. 패션 업계에서는 백화점이나 편집매장 같은 도매업자와 거래하지 않고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셔츠에 특화된 온라인 D2C 브랜드 ‘암마라 뉴욕(Ammara NYC)’의 설립자 암마라 야큅은 원래 풀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그렇지만 더 낮은 가격대에 디자이너 레이블 수준의 제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2015년부터 도매 유통을 줄이고, 온라인에서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야큅뿐 아니라 최근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독립 디자이너 대부분이 중간 상인 없이 성공을 이뤘다.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또 다른 D2C 브랜드 ‘더 마이티 컴퍼니(The Mighty Company)’의 설립자 제시 윌너는 “오늘날 D2C 방식은 중간 상인의 부재로 이득을 얻고 그로 인한 이윤을 고객들에게 돌려줍니다. 최상의 소재와 품질을 갖춘 아이템을 제작하고, 정직한 가격을 매길 수 있으니까요”라고 성공의 이유를 설명했다.

    백화점에서 제품을 팔려면 낮은 마진을 받아들이고 복잡한 규칙이나 조건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백화점은 브랜드에 광고를 위한 비용과 조건 없는 환불 처리를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세일에 들어가면 제품 단가를 더 낮춰 지불할 권리도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였거나 일하면서 알게 된 여덟 명의 여자가 함께 론칭한 보헤미안풍 브랜드 ‘도엔(Dôen)’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캐서린 클리블랜드는 브랜드를 시작하려 했을 때 D2C만 유일하게 가능한 옵션이었다고 고백했다. “가장 주요한 방식으로 제품을 소개하면서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를 갖고, 도매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공해와 가격 상승을 피하고 싶다는 게 우리의 열망이었으니까요.”

    이들에게 온라인 플랫폼은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한 플래그십 스토어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가상의 매장을 통해 즉각적으로 소비자들이 무엇에 공감하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중간 상인을 통해 전달받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글로시에의 ‘밀키 젤리 클렌저’는 에밀리 와이스가 자신의 뷰티 웹사이트 ‘인투 더 글로스(intothegloss.com)’의 오디언스를 대상으로 “당신이 꿈꾸는 세안제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답이 모여 탄생한 것으로, 론칭 직후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됐다. “전 오디언스들의 코멘트를 언제나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읽곤 하죠.”

    고객에게 친근하게 접근해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긴밀한 관계 맺기는 BFF(Best Fashion Friend) 마케팅이라고 불린다. 특히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은 이런 관계 맺기에 아주 능숙하다. ‘레알리자시옹 파(Réalisation Par)’는 유명 인플루언서 알렉산드라 스펜서(Alexandra Spencer)와 틸 탤벗(Teale Talbot)이 함께 설립한 브랜드로, 웹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비앙카 블라우스에 “이 셔츠는 모든 타입의 친구들에게 발송됐어요. 키가 크든 작든, 볼륨 있는 몸매든 마른 몸매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죠!”라는 내용의 캡션을 달았다. 인기 아이템인 오지 드레스의 캡션도 비슷하다.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 거예요. 캐시미어 장갑보다도 당신에게 꼭 맞도록 수없이 바느질하고 또 했죠.” 1년 내내라는 뜻의 준말 ‘에어(AYR, All Year Round)’의 이메일 뉴스레터는 친구의 수다처럼 유머 감각이 넘쳐 절대 스팸으로 분류할 수 없다. “너의 소셜 미디어 피드조차 때에 따라 너를 기분 좋게 만들거나 불쾌하게 만들지. 그렇지만 우리 청바지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늘 어메이징한 기분이 들도록 디자인했어.” 실제 이메일 뉴스레터로 이뤄진 사이트 트래픽은 60%에 이른다. 좋은 의미의 여학생 클럽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브랜드의 성장에 참여한다는 소속감을 주는 것은 BFF 마케팅의 중요한 부분. 설립자들은 하나같이 “커뮤니티의 리더가 될 수 없다면 브랜드의 CEO 역시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대표적인 D2C 브랜드는 각자 그들만의 해시태그도 공유한다. 잔느 다마가 론칭한 루즈(Rouje)는 #LesFillesenRouje(루즈를 입은 여자들),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 리포메이션(Reformation)은 #RefBabes, 도엔은 #DoenCollective다.

    이들의 승승장구는 오프라인 도매상의 몰락을 가져오는 체제 전복의 상황을 이끌어냈다. 오히려 백화점이나 편집매장에서 이들 제품을 바잉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할 정도. D2C 브랜드는 기존 시스템에 흡수되는 대신 유대감과 투명성이라는 특징을 강화해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전 세계적인 여성 인권 강조 움직임과 더불어 도엔 같은 브랜드는 여성에 의한, 여성의, 여성을 위한 브랜드라는 점을 앞세운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제이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의 미래 전략 담당 루시 그린(Lucie Greene)은 “포용적인 레나 던햄 스타일의 대화는 재점화된 페미니즘 물결과 맞아떨어졌고 D2C 브랜드를 여성 설립자가 세웠다는 점에서 이 움직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브랜드 스토리가 여성 역량 강화의 본보기가 되고, 사람들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성공 스토리의 팬으로서 브랜드를 지지하게 됩니다.”

    이들의 시작이 상당 부분 불필요한 비용 발생에 대한 반발에 기인했다는 점은 기존 브랜드보다 사회적 책임에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D2C 브랜드 사이에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다. 의미 있는 기부 단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웹사이트에 공정 거래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음을 투명하게 밝히려고 애쓴다. 고객이 지불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한다. “D2C 모델은 또 다른 경험으로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고, 그들을 올바르게 응대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전통 있는 하우스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방법이죠. 고객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우리 제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더 마이티 컴퍼니의 윌너의 말은 왜 우리가 지금 D2C에 눈을 돌려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유서 깊은 하우스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고고한 하우스는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다. 그렇지만 변치 않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바야흐로 고객과의 관계, 사회적 책임과 신뢰. D2C 브랜드가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새로운 럭셔리를 정의한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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