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재생산
말 많은 업계의 특징? 거대한 비즈니스를 둘러싼 정당한 예측? 어떤 것이든 패션계 루머는 끊이지 않는다.
한동안 분주하던 패션계 짝짓기 철이 끝났다. 서로를 갈망하던 디자이너와 패션 브랜드가 마침내 구애 활동을 마치고 짝을 찾았다. 에디 슬리먼은 셀린을 선택했고, 리카르도 티시는 뜬금없이 버버리로 향했다. 루이 비통을 떠난 킴 존스는 디올 옴므, 존스의 빈자리는 버질 아블로가 차지했다. 반면 11년간 디올 옴므를 지켰던 크리스 반 아쉐는 벨루티. 이 와중에 둥지를 잃은 디자이너도 생겼다. 17년 만에 버버리를 떠난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고작 1년 반 만에 벨루티를 빼앗긴 하이더 아커만, 그리고 휴식을 택한 듯한 피비 파일로. 모든 것은 2018년이 시작된 후의 일이다. 물론 패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저 어려운 외국인 이름의 무작위 나열쯤으로 보일 수 있다. 패션계 속사정에 밝은 사람이라 해도 이런 인사이동은 워낙 빈번하기에 무감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패션계에 손꼽히는 브랜드의 수장이 바뀌는 일은 거대한 사건이다. 피비 파일로가 아닌 에디 슬리먼의 셀린은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디자이너 셔틀’은 말 많은 패션계 사람들에게 솔깃한 뒷얘깃거리를 선사한다. 뉴욕부터 파리로 이어지는 패션 위크에서 제일 큰 재미 중 하나는 루머의 재생산이다. 소위 ‘카더라’ 통신은 프런트 로 혹은 애프터 파티 혹은 패션 위크 리무진 안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이라면, 이 모든 루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차놀이처럼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피비 파일로가 셀린을 떠날 거라는 발표가 나오자, 패션계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는 듯 ‘그것 봐’ 정도의 태도로 반응했다. 그런 뒤 다른 종류의 루머가 피어올랐다. 과연 파일로가 모국 브랜드인 버버리에 안착하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이런 호기심은 또 다른 소문으로 이어진다. 베일리가 떠난 공석의 유력한 후보였던 킴 존스가 비통을 떠나는 진짜 이유가 도나텔라에 이은 베르사체 상속일 거라는 의견도 유력했다. 버버리의 간택을 받은 티시 역시 베르사체 후계자로 유력했다. 그렇다면 지방시의 빈자리는? 지금은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차지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후보에 오른 인물은 버질 아블로였다.
열차처럼 이어지는 소문의 반복이 지겹기도 하지만, 패션계 사람들은 이 화살표 놀이를 즐긴다. 수다쟁이들의 특성과 유난히 스타 디자이너가 넘쳐나는 패션 생태계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루머가 진실로 확인될 때 느끼는 작은 쾌감도 뺄 수 없다. 지난 3월 파리 패션 위크에서 소문으로 나돌던 두 가지 이야기는 이미 현실로 이뤄졌다(존스와 아블로의 행방). 소문의 진앙지에서 <보그>가 채굴한 또 다른 루머는? 킴 존스가 곧 디올의 여성복까지 차지하고, 지금 여성복을 담당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펜디로 향하게 된다는 것. 과연 칼 라거펠트가 펜디를 순순히 내려놓을지 혹은 키우리가 꾸뛰르 하우스를 제 발로 떠나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이토록 끝없이 소문이 나도는 건 이러한 브랜드가 패션 산업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기욤 앙리가 떠난 니나 리치 혹은 나락에 빠진 랑방에 대해 무관심한 이유도 같은 이유다.
4월 초 새로운 패션 루머가 패션계를 강타했다. 유일무이한 패션 여왕인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올해 9월호를 끝으로 은퇴할 거라는 타블로이드의 보도 말이다. 즉위(!) 30주년을 맞은 그녀가 루머처럼 하야할지는 의문이다(이미 그녀는 회사 대변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루머를 부정했다). 소문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루머의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했고, 9월이 되기 전 또 다른 루머가 바통을 이어받을 테니까.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Indigital,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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