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 스타일리스트 조 맥케나
소중한 친구였던 아제딘 알라이아를 위해 서울을 찾은 스타일리스트 조 맥케나. 그와 나눈 패션 사진, 새로운 사진가, 알라이아에 대한 추억.
우리는 청담동 10 꼬르소 꼬모 카페 안쪽에 앉아 있었다. 패션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타일리스트는 따뜻한 라테를 주문한 채 주변을 살폈다. 그의 옷차림은 서울에서 패션 좀 안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소박해 보였다. 주위 시선을 피하듯이 꾹 눌러쓴 버킷 햇, 빳빳한 푸른색 옥스퍼드 셔츠 위에 입은 브이넥 회색 스웨터, 낡은 리바이스 블랙 진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뉴발란스 러닝화. 라테를 한 모금 마신 그가 간신히 결심한듯 먼저 말을 건넸다. “저는 정말 이런 것(인터뷰)을 잘못하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럼 시작할까요?”
방금 수줍은 미소를 띠고 내게 말을 건넨 인물은 조 맥케나(Joe McKenna). 슈퍼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는 지난 30년간 우리가 기억하는 근사한 패션 이미지를 완성해왔다. 캘빈 클라인과 베르사체 등의 광고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다면, 그의 작업을 목격한 셈이다. 브루스 웨버, 데이비드심스, 스티븐 마이젤 등 전설적인 사진가의 작업을 눈여겨보았다면, 맥케나가 함께 한 이미지일 확률이 높다. 스테파노 필라티, 빅토리아 베컴, 발렌티노 등도 컬렉션을 준비할 때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맥케나가 패션에 발을들인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약한 그는 런던에서 잠시 팝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다. 짐작하기론 팝 스타로 활동하기에는 숫기가 부족했을 것 같다.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대신 패션에 관심이 생겼죠.” 친구들과 준비한 화보는 당시 <페이스> 같은 독립 매거진에 실렸다. 그의 작업을 눈여겨본 브루스 웨버가 함께 일하자고 연락을 해왔고, 영국, 이탈리아 <보그> 등이 러브 콜을 보냈다.
시대에 따라 패션은 변해왔지만, 미니멀하면서도 온화한 그의 스타일링은 흔들리지 않았다. 때로 이네즈앤 비누드 커플과 맨해튼을 거닐며 치노 팬츠 화보를 완성하고, 머트 앤 마커스 듀오와는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전원 풍경을 상상한다. “예전엔 영감을 얻는 게 쉬웠어요. 아무도 모르는 이탈리아 영화를 참고하면 끝이었죠.” 세상 모든 이미지가 핀터레스트 핀의 대상인 지금,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제 본능을 더 믿어야 해요. 그리고 사진가가 원하는 무언가를 함께 찾아야 합니다.”
‘팀’이라는 단어는 맥케나가 좋아하는 작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사진가는 물론 다양한 멤버와 팀워크를 이루어 완성하는 것이 진짜 패션 이미지다. “패션은 본질적으로 ‘팀워크’입니다. 모두가 각자 역할을 해내야 하죠.” 패션 천재들과 함께 일해온 그는 ‘존중’을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신세대 사진가들과도 작업을 계속한다. “카림 사들리, 제이미 혹스워스 등은 아직 젊지만, 자신만의 인물을 완성하는 뷰를 갖췄습니다. 그러한 시선이 저를 흥분시킵니다.”
30년간 당대 패션을 대표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흔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고(“저와는 다른 세대 이야기예요”), 쇼장에 다니며 스트리트 사진에 찍히지도 않는다(“그 많은 쇼장에 어떻게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어필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패션 스타다. 오늘을 위한 촬영 역시 정중히 거절했으며, 인터뷰 다음 날 진행한 패션 강의에서도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안내까지 덧붙일 정도였다. 자기 작업을 모은 책도 준비하지 않았다(1992년과 1998년엔
자기 PR에 관심이 없는 그가 서울에 와서 <보그> 인터뷰를 위해 나를 만난 건 그의 오랜 친구를 위해서였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의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아제딘 알라이아 전시 말이다. 이 전시에서는 맥케나가 직접 기록한 알라이아에 대한 2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함께 상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제딘이 제게쇼 스타일링을 맡아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그가 알라이아와 작업하던 첫 순간을 기억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우정은 지난해 알라이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는 왜 갑자기 준비한 걸까? “패션계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왔습니다. 문득 둘러보니 전통적 방식으로 패션을 완성하는 인물은 아제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의 작업 방식과 삶,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새벽까지 TV를 틀어놓고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모습이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구두 패턴을 완성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이다. 맥케나의 입에서 직접 듣는 알라이아에 대한 일화는 더 정겨웠다(경탄과 애정의 시선이 가득한 알라이아 이야기는 ‘joesfilm.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정말 유일무이한 인물이었습니다. 경탄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요.” 그가 무한한 영감을 준 인물에 대해 찬사를 이어갔다. “지금은 유머감각, 그가 직접 성대하게 준비하던 저녁 식사가 가장 그리워요.”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David S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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