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맨
이정재는 뭐든 압도하는 힘을 가졌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의 염라대왕처럼.
배우의 배역이 배역을 낳는다는 명제를 전제로 둔다면 <신과 함께> 염라대왕은 <관상>의 수양대군에게 빚진 바 있다. 이정재가 극 중에서 안타고니스트로서 위협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적합한 인물임을 영화 <관상>이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집어삼킬 단 하나의 생물이 있다면 이정재라고 생각했을 만큼 수양대군은 압도적이었다. 절대 세계의 검은 호랑이 같았다.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염라대왕이 등장한 장면도 그랬다. 검은 흙바람이 불었고 나무가 흔들렸고 땅거죽이 요동쳤으며 하늘의 별까지도 그를 향해 이동했다. 염라대왕 이정재는 모래 지옥처럼 관객을 스크린으로 빨아 당겼다. 그가 등장한 짧은 몇 초 동안 팝콘을 입에 넣기는커녕 눈이라도 깜빡인 관객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게감을 더해가는 배우는 많지만 장악력을 폭발시키는 배우는 드물다. 물론 염라대왕은 등장과 동시에 차태현에게 멱살을 잡히지만.
<신과 함께> 두 번째 이야기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염라대왕은 이야기가 완성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주요 역할로 등장한다.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하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특별 출연이라기보다 매우 특별한 출연인 셈이다. 이정재는 어느 때보다 배우 개인보다 영화를 둘러싼 여러 입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 영화를 함께 하는 동료로서 내 영화, 남의 영화 따로 생각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해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죠. 왕이야 연기 생활 하다 보면 언젠가 할 수도 있는 역할인데 염라대왕은 언제 해보겠느냐는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작품에 대한 재미가 30, ‘와, 한국에서도 1, 2편을 동시에 찍어 시간차를 두고 개봉하는 영화가 있다니 꼭 해야겠네’ 하는 마음 30, 김용화 감독과 하정우 씨까지 얽혀 있는 인간관계가 30이었던 것 같아요.” 하정우와 만들어낸 명장면도 예고했다. “하정우 씨와 긴장감 도는 밀도 높은 연기를 해나가는 장면이 있어요. 호흡을 굉장히 촘촘히 맞춰야 하는 신을 놓고 ‘어떻게 상대방의 호흡을 잘 받아 교감할 수 있을까’가 중요했어요. 손동작 하나까지도 신경을 쓴 장면이에요. 그동안 연기하면서 상대방의 호흡에 이렇게까지 신경 쓴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동료 배우와 이룬 앙상블이었죠.”
이정재의 영화에 대한 순정은 분량이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배우들의 것과 확실히 다르다. 그는 ‘애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신과 함께>는 사후 세계를 특수 효과로 생생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영화였다. “해외 세일즈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200명도 안 되는 스태프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어요. 촬영과 후반 작업에 2년 남짓 걸렸고요. 이 자금에, 이 시간에, 이 정도 기술이면 다른 나라에서 굉장히 부러워할 만한 기술력이에요. 기술력이 꼭 테크놀로지만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의 능력을 얼마나 영화에 잘 투입하느냐도, 연출자가 영화 현장을 얼마나 융통성있게 운영해나가느냐도 기술로 봐야 해요. 이런 기술력을 보다 많은 나라에 자랑할 수 있고, 더 좋은 일거리를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면 ‘애국’인 거죠.”
김용화 감독과 인연은 <오! 브라더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만날 때부터 믿음이 갔고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 “보는 눈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자기가 본 것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말재주가 아주 뛰어나요. <오! 브라더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이범수 선배랑 셋이 연습실을 빌려 일주일 내내 리허설을 했어요. 그때 감독님의 장점을 많이 봤고 심지어 저도 그때 연기가 많이 자연스러워지고 좋아졌어요. 그런 좋은 경험이 기억에 깊이 남다 보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고 지냈어요. 오랜만에 사석이 아닌 현장에서 보니까, 뭐 이제 대가가 다 됐더라고요.(웃음)”
이정재는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처럼 영역을 구분 짓는 데 회의적이라고 말해왔다. 이제는 경계선이 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영상 매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가 더 정답이 아닐까요. 영화, 드라마가 아니라 단편 영상물, 회 차가 계속 진행되는 영상물로 얘기하는 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것 같아요. 아마존, 애플TV… 계속 쏟아져 나올 거고 국내 브랜드도 생기겠죠. 우리는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가 특별한 자신의 추억을 짤막하게 A4 반 페이지만 채워도 기획자가 되는 거예요. 작가, 연출, 배우, 제작의 경계도 넘나든다기보다 아예 벽이 없어야 하는 거죠. 벽이 없으면 넘을 것도 없으니까요.” 그는 지금 자신을 ‘영화 사업부 기획 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영화 기획안을 두고 함께 회의하고 발전시켜나가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2년 전 이정재는 정우성과 함께 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를 차렸다. <보그>와 찍은 창립 1주년 기념 화보 외에 별다른 소개나 홍보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업계에 안착했다. 하정우, 염정아, 고아라, 고아성, 이솜 등 자기 색깔이 뚜렷한 배우들이 이적했고 예전보다 생동감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뀌었지만 하는 일 자체가 달라진 건 없다. “연기자는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자기를 맞추는 게 본질이거든요. 이야기가 재미있다 정도만 돼도 나머지는 배우가 맞춰가야 해요.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고 만들어가는 희열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느껴야 한다는 게 저희 회사의 모토예요. 그 마음으로 저 역시 20년 넘게 일해온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동료 배우분들에게 알려주는 정도죠.” 아티스트 컴퍼니는 처음 꿈꾼 것처럼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벌써 두 편을 완성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 편은 로맨틱 코미디, 한 편은 액션물이다. 배우로서 늘 하던 고민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서 대명사 ‘내’가 ‘우리’가 되었을 뿐 이정재는 크게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티스트 컴퍼니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배우들 간의 연대가 떠오른다. 이정재는 배우란 비정규직이자 늘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라고 불안감을 토로한 바 있는데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긴 이후 불안도 많이 줄어들었다. “동료들과 함께 상의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왜 불안한지 같이 고민하다 보니 조금씩 방법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저로서는 아주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변화와 시간 얘기를 하다가 “나이를 실감하는가”란 질문에 그는 이정재라는 이름과 한 번도 함께 떠올려본 적 없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이제는 아저씨죠, 그럼요.” 섬세한 선으로 구성된 균형미 있는 이정재의 얼굴을 두고 우리는 늘 ‘도회적’ ‘세련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그리고 갑자기 환하게 웃어버릴 때면 소년의 것이 되곤 했다. 25년 동안 ‘도회적’으로 불렸으니 이젠 그가 그 단어의 범주를 넓혔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이는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요. 얘기할 때는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안 된 거였구나 생각이 들 때 ‘나이 들었구나’ 느껴요. 사실 나이에 대한 격차는 좀 없애고 싶어요. 다 친구 아닌가요.(웃음)” 그는 선배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시대 감성은 제가 정확하게 캐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저보다 선배인 거죠. 모르는 사람이 후배예요.” 20대가 이해가 가느냐고 물었을 때는 현답을 들려줬다. “소크라테스도 그랬대요. 요즘 애들 이해 못하겠다고.”
이정재의 차기작은 <사바하>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다룬 무려 ‘오컬트 영화’다. 25년 가까이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보아왔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보지 못한 모습이 남아 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을 추적하는 목사 이야긴데 안 해본 장르이고 캐릭터라 흥미를 느끼고 선택했어요. 사실 저는 호러나 그런 쪽 장르는 거의 안 본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장재현 감독님이 감성이 많이 다른 연출자예요. 머리가 아주 좋은데, 수능을 만점을 받았다니까 말 다 했죠. 배우에게 원하는 연기가 따로 있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역시 또 우리 사무실에 가서 리허설하자고 했죠.(웃음) 두 번째 만났을 때 감독님보고 연기하라고 하고 전 그걸 카메라로 다 찍었어요. 그리고 집에서 계속 돌려 봤죠. 웃기는 방식도 되게 달라요. 아, 이게 웃긴 신이었구나, 나중에 알고.(웃음).” 상대 배우는 충무로의 대세 박정민이다. “제가 현장에서 말이 없는데 저보다 더하더라고요. 이러다가는 우리 둘이 영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 제가 좀더 말해야겠구나 했어요. 그래 봤자 평소보다 한두 마디 더한 것 같아요.(웃음)”
그는 그동안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기 4~5년 차 때까지도 현장 울렁증이 있었어요. 현장에만 가면 대사를 다 까먹으니까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죠. ‘레디, 액션’ 하면 완전히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말이 별로 없었어요. 이제 울렁증은 없어졌지만 그날 찍는 장면에서 뭘 더 해야 하고 뭘 덜 해야 하는지 그 생각만 해도 하루가 꽉 차버려요. 늘 제가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주변에 잘 안 와요. 오래된 스태프들은 ‘저 사람이 다음 장면 찍으려고 저러나 보다’ 하는데 막내들은 오해도 해요. 그래서 이제는 초반에 얘길 해요. ‘내가 말이 없으니까 이해해달라. 당신들이랑 놀기 싫어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렇다’하고요.” 한 분야를 10년 이상 파고들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지만 자신이 완성형이라고 말하는 배우를 만나본 적은 없다. 이정재도 마찬가지다. “연기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장면에서 커피 잔을 잡아도 되고 안 잡아도 되니까, 고개를 숙이고 대사해도 되고, 눈을 보고 대사해도 되니까요. 정답이 없다 보니 ‘무엇이 정답일까’ 늘 궁금하고 그 생각이 끝이 없어요.”
나에게 이정재는 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한 배우였다. 무려 15년 전, 그가 레스토랑 사업에 한눈을 팔았을 때, 특별한 날이면 그가 창조한 공간에 가곤 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벽에 걸고 이런 의자를 고르고 이런 음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엇에 감동받을까 궁금했다. 최근 이정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하와이다. 건강한 공기가, 신비로운 자연의 풍경이 남아 있다. 이정재가 요즘 가장 아끼는 대상은 식물이다. 언젠가 화분을 선물 받았는데 화분이 공간에 선사하는 생기가 정말 좋았다. 덕분에 틈틈이 화분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안방은 정글이 됐다. 지방에서 촬영하다가도 물을 주러 서울로 올라온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도 ‘식물이 잘 자랄 때’다. 그러니까 이정재는 여가 시간이면 이파리를 쓰다듬으며 “너랑 나랑 이렇게 잘 사는구나” 다정하게 얘기하며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있단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이정재는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물론 20여 년 전에는 패션가에서 조금 더 맹렬히 그를 사랑했다. 요즘 온라인 매체 기자들이 그를 두고 흔히 붙이는 제목은 ‘화보를 씹어 먹는 비주얼’이다. 이정재는 명성만큼 옷을 좋아하지만 자주 사지는 않는다. 원칙은 명확하고 간결하다. 1년에 한두 번 티셔츠, 셔츠, 재킷, 바지, 신발까지 풀 세트로 구입한다. “5년간 산 다섯 세트가 섞이면 서른 번 입을 수 있어요. 10~15년 동안 구입한 옷을 섞어 입어요. 구입한 지 10년 넘어가면 핏이 마음에 들지 않죠. 그러면 수선집에 가서 손봐달라고 해서 또 5년을 더 입어요. 저는 패션에서 컬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피부 톤과 흰자위가 밝은 편이라 블루 베이스 컬러가 잘 맞아요. 옐로 베이스는 안 어울려요. 똑같은 그레이라도 옐로 베이스냐, 블루 베이스냐에 따라 컬러가 다르죠.” 평소 옷차림은 ‘청바지에 셔츠 하나 대충 입고’다. 이유가 있다. “저희는 옷을 많이 입는 배우잖아요. 평소에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입고 있으면 나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는 은행 직원, 목사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거든요. 만날 패션 피플처럼 입고 다니면 머리도 그렇게 잘라야 할 거예요. 그러면 영화 의상이 어울리지 않아요. 무슨 영화를 하더라도 그냥 잡지 화보에 나오는 이정재 같아 보여요.”
<신과 함께> 두 번째 이야기의 부제는 ‘인과 연’이다. 이정재는 그동안 만난 배우와 스태프를 모두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지금까지 이토록 고유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변화에 유연한 배우는 없었다. 그는 언제든 세상을 담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연과 관련해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했다. ‘평소에 정우성 씨와 점심은 어디서 드세요?’ 이정재는 우리가 25년간 사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다래성 콩국수. 청미심 소머리국밥!”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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