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매직 펑크 쇼
<황야의 무법자>, 이소룡, 커트 코베인. 어느 시절을 떠올리면 영원히 기억나는 이름이 있다. 먼지 더미 추억 틈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우연이라도 그 이름이 들려오는 순간 우리 영혼은 그날의 생생한 현장으로 날아간다. 거창하게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개인의 역사에서는 특정 시절을 무한 소환하는 마법의 버튼 같은 것. 한국을 대표하는 펑크 밴드 크라잉넛이 바로 그런 이름이다. 1995년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드럭’에는 화산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크라잉넛이 있었다. 무대에서 다이빙하며 난장을 벌이던 이들은 슬램(Slam)이나 모싱(Moshing)의 개념도 없던 보수적 한국 공연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친놈’들이었다. 불후의 명곡 ‘말 달리자’가 탄생하고, 옐로우키친과 함께 한국 인디 음악의 새로운 장을 예고한 스플릿 앨범
어느덧 8집이다. 9월 11일 크라잉넛은 신곡을 선공개하며 정규 앨범을 선보인다. 추억에 박제된 전설들과 달리 크라잉넛은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여전히 활기차며 음악은 싱싱하다. 그야말로 주옥같은 히트곡이 넘쳐난다. ‘말 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가 수록된 123집은 인디 음반 최초로 10만 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이 기록은 이후로도 깨지지 않았다. 그 밖의 다른 노래(‘좋지 아니한가’ ‘룩셈부르크’ ‘명동콜링’ ‘비둘기’ ‘여름’ 등) 역시 지금도 누구나 흥얼거릴 만큼 익숙하다. 크라잉넛의 음악이 이처럼 다채로운 건 멤버 전원이 싱어송라이터로 각자의 색깔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년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멤버 교체도 없었다. 옥상에서 기타를 두들기던 서울 동부이촌동 초중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밴드를 결성한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3년. 이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김인수가 합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크라잉넛은 군대까지 동반 입대할 정도로 끈끈하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이런 밴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5년 만에 내는 정규 앨범이라 열 곡째 녹음하는 지금도 좋은 곡이 쏟아지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오며 느낌 감정과 생각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앨범이 될 거예요. 정교한 테크닉이나 화려한 연주력을 내세우기보단 숙성시킨 위스키처럼 25년 차 밴드만의 진한 향취가 녹아 있죠.” 10월 27일에는 서교동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8집 앨범 발매 기념 단독 공연도 열린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연이어 잡혀 있다. 드럭에서 첫 공연하던 그때부터 늘 그래왔듯 음악 작업과 공연은 크라잉넛의 일상이다. 최근에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과 협연했다. “우리가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동경해온 록 스타와 한 무대에서 공연하다니! 엄청나게 흥분되고 고무적이었죠.”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DMZ에서 처음 열린 록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글렌 매트록과 크라잉넛이함께 ‘말 달리자’를 연주하던 순간이었다. 그 시절의 펑크 키드들은 모두 나이가 들었어도 크라잉넛의 음악만큼은 언제나 스무 살 청춘이다. 시한폭탄 같던 분노가 넉살 좋은 웃음으로 변해가는 동안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는 전보다 더 커졌다. “우린 대단한 성공 같은 걸 바라지 않아요.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도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도 기타를 메고 어딘가를 걷고 있을 록 키드들과 동료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그리고 크라잉넛의 음악을 듣는 분들 모두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음악은 우리의 인생 자체니까요. 우린 아직 지치지 않았습니다.(웃음)” —이미혜(컨트리뷰팅 에디터)
- 에디터
-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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