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피부를 위한 정신 승리

2018.08.24

피부를 위한 정신 승리

자존감은 피부까지 조종한다. 전문의가 처방한 약과 크림도, 어렵게 바꾼 식습관도 달래지 못한 피부를 마음 수양으로 바꿀 수 있을까?

나는 홍조가 있다. 서핑처럼 야외 활동을 하거나, 한겨울처럼 실내외 기온차가 클 때 더 심하다. 화가 나거나 거짓말을 해도 그렇다. 내가 홍조를 ‘인식’한 때는 초등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자 선생님은 “나랑이는 긴장하면 얼굴이 빨개지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 주목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전에도 홍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인식’한 순간부터 평생 그 녀석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기온이나 햇빛과 별개로 불안, 긴장, 죄책감, 스트레스가 오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겠거니 체념하고, 실제 그랬다.

당황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긴장하면 땀이 나고, 무서우면 소름이 돋는 것처럼, 마음에 따라 몸이 변한다. 모두 안다. 목마르면 물 마신다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야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와 마음이라는 추상적 존재의 연결을 의학에서 과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1974년 로체스터대학의 로버트 에이더(Robert Ader) 교수는 쥐에게 사카린을 녹인 달콤한 물을 마시게 한 직후 구토와 면역 저하를 유발하는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라는 물질을 주입한다. 단맛과 구토가 연결되는 경험을 한 쥐는 사카린 물을 기피했다. 사카린은 몸에 치명적 독성 효과가 없음에도 이를 억지로 먹은 쥐의 사망률은 높았다. 실험 후 에이더 교수는 뇌(신경계)와 행동, 면역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이란 분야를 연다.

그중 몸에서도 피부와 마음의 연결을 연구하는 정신피부학(Psychodermatology)이 있다. 이 분야는 미국에 전문 병원이 여섯 군데뿐인 새싹 학문이다. 스트레스가 피부에 좋지 않다는 뻔한 얘기여서 그간 연구하지 않은 건가? 시술과 비싼 화장품 말고 피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마음’을 간과해온 이유는 뭘까?

명동 CU클린업피부과 김지영 원장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측정 가능’과 ‘예측 가능’인데, 마음을 측정할 수 없어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치료자와 임상의의 경험과 직관으로 접근해왔을 뿐, 몸-피부-마음의 연결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웠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뇌의 활성화를 보는 FMRI라든지 자율신경계의 밸런스를 보는 HRV 검사, 호르몬 수치를 혈액으로 측정하면서 몸-마음, 마음-피부라는 주제를 과학적으로 논의하게 됐어요.”

최근 연구 결과는 ‘여드름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다. 병원에서 여드름 진단을 받은 후 첫 1년 내 우울증이 발병할 위험이 60% 이상 높다는 것이다. 캘거리대학 연구 팀이 7~50세에 새롭게 여드름 진단을 받은 13만4,437명과 여드름이 없는 173만1,608명을 대상으로 15년간 연구해 <영국피부과학저널>에 밝힌 결과다. 연구 팀은 “여드름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환자의 감정 상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피부와 마음의 연결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마음 문제가 피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둘째, 피부 문제가 마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다. 나는 전자가 궁금했다.

비싼 제품보다 공짜(마음)가 나으니까. 김지영 원장은 마음이 피부에 미치는 과정을 두 가지로 봤다. 첫째, 신경-혈관-면역계를 통해 피부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나는 여행만 가면 뒤집어진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뒤집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실제 그렇게 피부 반응이 반복되면 믿음은 더욱 고착된다. ‘나 조금 있으면 피부가 붉어지고 예민해질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수 초 내에 피부가 반응한다. 이런 현상은 뇌-혈관-면역 연결에 결함이 생겨 과장된 신경-혈관 반응이 나타나는 ‘신경염증’에 의한 것이다. 마음의 변화가 전기에 감전되듯 빠르게 피부에 반영된다. 둘째는 마음이 행동을 변화시켜 피부에 미치는 영향이다. 예를 들어 불안할 때 머리를 뽑아 탈모를 일으키거나, 강박에 손을 너무 자주 씻어 습진이 생긴다.

더엘클리닉의 서수진 원장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심리적인 불안정과 스트레스를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충분히 피부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도 남죠. 일례로 피부의 열감은 피부 질환의 원인인데, 불안, 스트레스, 분노, 우울을 느끼면 코르티솔(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물질)이 나오고, 이 호르몬이 온몸의 열감을 높이고 염증과 피지 분비를 야기하면서 결국 피부는 악화됩니다.”

피부만 치료하던 것에서 접근 방식을 바꿀 때다. 김지영 원장도 피부만 치료하는 것이 효과가 덜하자 환자의 습관을 교정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올바른 습관 정보를 주고 권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마음의 문제였어요. 무너지는 생활 습관도 마음에 따른 것이죠. 마음은 의사가 미처 파악하기 힘든 상대의 공동체, 어린 시절, 회사 생활, 집안 상황에 기인합니다. 예를 들어 평생 50kg을 유지하던 멋진 중년 여성이 어머니의 부재로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면서 3년을 방황하다 피부와 몸이 망가져 내원하셨어요. 이런 분은 아무리 시술을 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우선 좋아져야 한다는 내적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자신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힘으로 몸이 리듬을 찾아야 궁극적으로 피부가 달라지죠.” ‘고객님께서 이 제품을 결제하셔야 한다’는 말보다 괴롭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던가.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첫째는 자존감이다. 피부 문제가 있는 대부분이 자기부정을 한다. 김지영 원장은 피부과에 내원하는 사람 중에 객관적으로 심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피부 때문에 숨고 싶다는 분들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런 분들은 너무 예민하다고 평가받습니다. 예민한 자신에 자괴감을 가져요. 그래서 자신을 부정하며, 피부를 가리는 진한 화장을 하거나 시술을 반복하죠. 자신을 부정하는 시술의 이면에는 중독의 개념도 있어요. 또 이런 분들은 질환이 만성이 될 거라며 일어나지 않을 일로 불안해해요.” 자존감과 함께 마음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회계사를 준비하던 24세의 여성은 시험과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홍조가 심해져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피부과를 찾았고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김지영 원장이 내린 처방은 간단하다. “첫째, 피부는 조금 포기하세요. 둘째,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세요.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피부 문제에 미리 불안해하지 마세요. 셋째, 피부는 제가 케어할게요. 당신은 공부를 하세요.” 그 여성은 불안감을 덜어내는 연습과 피부 치료를 병행하면서 완치됐다. 서수진 원장도 마찬가지다. “치료하면서 주의할 점, 먹고 발라야 할 약물을 정해주지만, 그 외에는 신경을 끄라고 해요. 큰일 아니고 충분히 회복될 거라고 안심시키죠. 아예 문제를 생각하지 말고 회피하라고도 해요. 이 처방을 잘 지키는 환자가 예민하게 걱정하는 환자보다 확실히 치료 효과가 좋아요.”

성형외과 의사이자 밀리언셀러 <성공의 법칙>을 쓴 맥스웰 몰츠는 자존감과 성형 효과를 연결한다. 그는 자신의 현란한 메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모에 자신 없고 불만인 사람들이 의아했다. 오랜 관찰 후에 그들의 ‘자아상(Self-image)’에 문제가 있음을 찾아낸다. 자아상은 ‘나는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에서 나온다. 자아상을 수술하지 않으면 성형 효과는 물론 어떤 성공과 성취도 가능하지 않음을 500페이지 내내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 지옥 같은 여드름의 터널을 지나온 선배가 비웃는다. “아직도 그런 순진한 생각을 믿는 거야? 결국 돈과 기술의 문제라고.” 여드름이란 대항마를 이겨낸 승자의 태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편집부에서 자존감에선 지지 않는 인물이다. 정신피부학 전문의 매트 트라우브(Matt Traube)는 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 크림, 로션은 확실히 도움됩니다. 식습관을 바꿀 때처럼요. 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없다면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김지영 원장도 “마음의 핵심은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Self–love’”라고 강조한다. “피부 문제의 이면에는 부정 또는 불안이 있어요. 이를 줄이려면 받아들임(Acceptance)과 알아차림(Awareness)을 해야 합니다. 현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인 후에야 ‘Better Me’를 위해 노력해볼 여지가 생기죠. (그녀는 관련 논문을 첨부해 보냈다.) 나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한 변화 시도는 중독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잘만 하면 피부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획기적이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지 몰라요.”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얼라인 곤타르(Aline Gontar)
    모델
    마리아 쿨리코프스카야(Maria Kulikovsk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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