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활활 불타오르는 붉은 머리의 고양이가 루이 비통 하우스의 담을 넘었다. 전설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과 루이 비통의 만남.
미국 <보그>가 120주년을 맞은 2012년. 우리는 그 역사를 묵묵히 이어온 숨은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120년간 미국 <보그>를 대표한 패션 에디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는 그 순간에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얼음을 깬 셈이죠. 그 에너지와 열정에 감탄했어요.” 그 후 어느 인터뷰에서 제스키에르는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코딩턴이 영화 <셉템버 이슈>로 대중에게 더 유명해지고,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에 입성한 뒤, 다시 2016년 미국 <보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5월 우리는 제스키에르와 코딩턴의 15년을 넘는 우정의 멋진 열매를 만날 수 있었다.
5월 29일 남프랑스 마그 미술관(Fondation Maeght)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19 크루즈 컬렉션 현장이 그 첫 목격지다. 호안 미로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사이에 등장한 그레이스 코딩턴은 붉은색 실크 파자마 수트를 입고 있었다. 수트의 모노그램 로고 사이로 슬쩍슬쩍 보인 건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자신의 고양이 펌킨(Pumpkin)과 블랭킷(Blanket), 제스키에르의 강아지 레옹(Leon)이 자유롭게 모노그램 사이를 뛰노는 풍경이었다. 이미 제프쿤스, 쿠사마 야요이, 스티븐 스프라우스 등의 아티스트와 여러 차례 협업을 진행한 루이 비통이 이번엔 코딩턴에게 하우스의 육중한 문을 연 것이다. “3년 전부터 무언가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해왔어요.” 코딩턴은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보그>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면서 그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졌죠. 사실 고양이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건 너무 명백했죠. 그리고 니콜라의 강아지 레옹도 함께 담고 싶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니콜라와 함께 하는 작업이었고,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을 통해 더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사실 코딩턴의 고양이 사랑은 패션 세계에서 유명하다.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그녀의 웨스트빌리지 저택을 집으로 삼아왔고, 그녀가 직접 그린 고양이 그림은 미국 <보그> 페이지를 종종 장식하기도 해왔으니 말이다.
코딩턴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녀가 직접 그린 고양이로 가득 찬 책
오렌지색 모노그램 로고와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가 어우러진 패턴에 대해 루이 비통 하우스는 ‘캣토그램(Catogram)’이라 명명했다. 캣토그램 컬렉션엔 하우스를 대표하는 스피디, 네버풀, 쁘띠뜨 말, 시티 스티머 등의 백도 포함된다. 모두 천연 가죽 위에 동물을 세밀하게 프린트하고 양각해 완성했다. “제가 고객이라면 무엇을 갖고 싶을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코딩턴은 컬렉션을 좀더 다양하게 구성하기 위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비가 쏟아질 때를 대비한 우산,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담요, 쉽게 들 수 있는 부드러운 트렁크 등도 포함되었어요. 그 트렁크는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나를 위해 크레용, 연필, 종이로 채웠죠. 테이블보, 작은 의자, 파자마 등 소풍을 위한 아이템도 떠올랐어요. 스카프와 파자마도 빼놓을 수 없죠.”
패션 세계 정상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참으로 돋보인다.(비범한 재능의 여인이 선보이는 컬렉션은 11월 2일부터 루이 비통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레이스 코딩턴만의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은 덕분이다. “유머 감각이 없다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거예요. 무언가 대담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요.” 루이 비통의 트렁크 위를 뛰어노는 펌킨과 블랭킷, 레옹을보면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패션 하우스와의 협업에서 자신의 고양이를 그려내는 별난 재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니콜라는 저를 별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별난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법은 없죠.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CRAIG MC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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