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전설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2018.11.06

by VOGUE

    전설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활활 불타오르는 붉은 머리의 고양이가 루이 비통 하우스의 담을 넘었다. 전설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과 루이 비통의 만남.

    지난 5월 루이 비통의 리조트 컬렉션이 열린 프랑스의 마그 미술관에서 만난 그레이스 코딩턴. 그녀가 직접 그린 고양이와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캣토그램 파자마 수트 차림이 인상적이다.

    미국 <보그>가 120주년을 맞은 2012년. 우리는 그 역사를 묵묵히 이어온 숨은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120년간 미국 <보그>를 대표한 패션 에디터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 전설적인 사진가와 패션 디자이너의 일화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특히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1988년 미국 <보그>에 합류한 그레이스 코딩턴이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와 함께한 2003년 화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촬영 중 사건이다. 당시 발렌시아가 디자이너였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입을 하늘색 러플 드레스를 특별히 완성했다. 하지만 레보비츠는 드레스의 장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며, 드레스를 앞뒤로 바꿔 입자고 제안했다. 디자이너를 세트로 초대한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얼굴이 새파래질 제안이다. 결국 코딩턴은 조심스럽게 왼쪽을 장식한 러플 장식을 오른쪽으로 옮길 수 있냐고 부탁했고, 제스키에르는 45분 만에 드레스를 완전히 해체한 후 다시 재조립했다.

    독특하고 특별한 취향을 이야기한
    루이 비통의 리조트 컬렉션에 그레이스 코딩턴과 함께한
    트위스트 백을 매치했다.
    코딩턴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세련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드레스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는 그 순간에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얼음을 깬 셈이죠. 그 에너지와 열정에 감탄했어요.” 그 후 어느 인터뷰에서 제스키에르는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코딩턴이 영화 <셉템버 이슈>로 대중에게 더 유명해지고,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에 입성한 뒤, 다시 2016년 미국 <보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5월 우리는 제스키에르와 코딩턴의 15년을 넘는 우정의 멋진 열매를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고양이만 편애해온 그레이스 코딩턴.
    고양이를 그린 책을 낼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가 완성한 루이 비통 스타일.
    카디건과 파자마 쇼츠에도 고양이가 자유롭게 뛰어논다.

    5월 29일 남프랑스 마그 미술관(Fondation Maeght)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19 크루즈 컬렉션 현장이 그 첫 목격지다. 호안 미로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사이에 등장한 그레이스 코딩턴은 붉은색 실크 파자마 수트를 입고 있었다. 수트의 모노그램 로고 사이로 슬쩍슬쩍 보인 건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자신의 고양이 펌킨(Pumpkin)과 블랭킷(Blanket), 제스키에르의 강아지 레옹(Leon)이 자유롭게 모노그램 사이를 뛰노는 풍경이었다. 이미 제프쿤스, 쿠사마 야요이, 스티븐 스프라우스 등의 아티스트와 여러 차례 협업을 진행한 루이 비통이 이번엔 코딩턴에게 하우스의 육중한 문을 연 것이다. “3년 전부터 무언가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해왔어요.” 코딩턴은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보그>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면서 그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졌죠. 사실 고양이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건 너무 명백했죠. 그리고 니콜라의 강아지 레옹도 함께 담고 싶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니콜라와 함께 하는 작업이었고,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을 통해 더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사실 코딩턴의 고양이 사랑은 패션 세계에서 유명하다.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그녀의 웨스트빌리지 저택을 집으로 삼아왔고, 그녀가 직접 그린 고양이 그림은 미국 <보그> 페이지를 종종 장식하기도 해왔으니 말이다.

    클래식한 실루엣을 사랑하는 코딩턴이
    직접 입어도 좋을 만한 스타일. 클래식한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에
    그녀가 디자인한 백을 함께 멨다.

    코딩턴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녀가 직접 그린 고양이로 가득 찬 책 도 기억할 법하다. 코코 샤넬을 닮은 코코, 통통한 베이비, 덩치 큰 헨리를 비롯한 고양이들은 패션 무대를 누비는 모험을 즐기곤 했다. “저는 오랫동안 고양이를 그려왔어요. 언제나 고양이를 사랑해왔죠.” 사람을 닮은 고양이의 행동이 항상 놀랍다는 코딩턴에게 첫 고양이는 브라이언과 스탠리. 지금 키우고 있는 펌킨과 블랭킷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캣 쇼’에서 데려온 것이다. “길고 뾰쪽한 코의 마른 고양이보다 언제나 뚱뚱하고 덩치가 큰 고양이를 더 좋아했어요. 그리고 털이 북슬북슬한 고양이도 예뻐하죠.”

    공원으로 소풍을 떠날 때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는 코딩턴. 그녀가 완성한 컬렉션 속에는
    트렁크 백과 우산, 스카프 등 다양한 아이템이 자리한다.
    그녀의 고양이 펌킨과 블랭킷, 제스키에르의
    강아지 레옹이 등장한 컬렉션은 11월 2일부터 루이 비통 매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오렌지색 모노그램 로고와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가 어우러진 패턴에 대해 루이 비통 하우스는 ‘캣토그램(Catogram)’이라 명명했다. 캣토그램 컬렉션엔 하우스를 대표하는 스피디, 네버풀, 쁘띠뜨 말, 시티 스티머 등의 백도 포함된다. 모두 천연 가죽 위에 동물을 세밀하게 프린트하고 양각해 완성했다. “제가 고객이라면 무엇을 갖고 싶을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코딩턴은 컬렉션을 좀더 다양하게 구성하기 위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비가 쏟아질 때를 대비한 우산,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담요, 쉽게 들 수 있는 부드러운 트렁크 등도 포함되었어요. 그 트렁크는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나를 위해 크레용, 연필, 종이로 채웠죠. 테이블보, 작은 의자, 파자마 등 소풍을 위한 아이템도 떠올랐어요. 스카프와 파자마도 빼놓을 수 없죠.”

    15년이 넘도록 우정을 간직해온 루이 비통의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미국 <보그>를
    대표하던 패션 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그들의 우정은 이번 협업 컬렉션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패션 세계 정상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참으로 돋보인다.(비범한 재능의 여인이 선보이는 컬렉션은 11월 2일부터 루이 비통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레이스 코딩턴만의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은 덕분이다. “유머 감각이 없다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거예요. 무언가 대담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요.” 루이 비통의 트렁크 위를 뛰어노는 펌킨과 블랭킷, 레옹을보면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패션 하우스와의 협업에서 자신의 고양이를 그려내는 별난 재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니콜라는 저를 별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별난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법은 없죠.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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