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을 주연으로 그리기 시작한 엘리자베스 콜롬바
엘리자베스 콜롬바의 그림은 체제 전복적이다. 그녀는 미술사에서 삭제된 흑인 여성을 끄집어내 무대 중앙에 올린다.
1863년 파리의 비 오는 아침. 화려한 두건을 쓴 흑인 여성이 우산을 들고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듯 서 있다. 나는 지금 뉴욕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 엘리자베스 콜롬바(Elizabeth Colomba)의 스튜디오에 있고, 이것은 그녀가 막 완성한 그림이다. 흑인 여성 뒤쪽으로 말이 끄는 마차가 있고, 잘 차려입은 백인 남성이 꽃다발을 들고 앉아 있다. 그림 속 흑인 여성의 이름은 로르(Laure)다. 그녀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그 유명한 작품 ‘올랭피아(Olympia)’의 모델로 서기 위해 스튜디오에 가는 길이다. 알다시피 ‘올랭피아’는 당시 파리를 충격에 빠트리며 모던 아트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콜롬바의 그림은 1860년대에 그려졌을 법하다. 하지만 그녀는 신예 역사화가다. 옛날 흑인 여성을 얘기할 때는 야망 넘치는 40대 아티스트다. 그녀는 화가로서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마네의 로르처럼 조금씩 알려지는 중이다. 인종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니까. 서양 미술사의 흑인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그녀의 활동은 자연스레 예술계의 주목을 끌었다. 로르는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흰색 쿠션에 나체로 누운 창녀에게 고객의 꽃다발을 건네는 흑인 하녀다. (마차에 탄 백인 남성이 들고 있던 꽃.) 이 창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지 않다. 그녀는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으로 마네와 드가가 가장 좋아하던 모델이자 그녀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에서 나체로 나오는 여인이다.) 여러 논문과 소설에서 빅토린을 다뤘지만, 빅토린 옆에 있던 흑인 하녀는 익명이다.
“저는 실존 인물을 그려요. 유명한 그림에 등장했기 때문에 ‘알려진’ 사람들을요.” 엘리자베스는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로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알려진’은 이름이나 신원을 몰라도 인식 가능하다는 뜻이다. “저는 그림 속에서 그들을 따로 떼어내 어떤 상황을 주죠.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린 시기에 로르는 그의 스튜디오로 걸어갔을 거예요. 그림 속에서처럼 이렇게 우산을 들고 거리에 나섰겠죠. 저는 그녀를 무대 중앙에 세우면서 당시에 누리지 못했을 존재의 가벼움을 입히고 싶었어요.” 노예제도는 1848년에 프랑스에서 폐지됐고, 흑인 여성들이 일부 지역에서 유모, 하인, 예술가의 모델로 일하며 자립하던 시기였다. 엘리자베스의 그림 ‘로르 (한 흑인 여자의 초상화)(Laure (Portrait of a Negresse))’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웰라치 미술관과 파리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모더니티에 의문 제기하기: 마네와 마티스의 흑인 모델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라는 획기적인 전시회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큐레이터 데니스 머렐(Denise Murrell)은 지난 6년 동안 자료를 뒤지며 로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마네는 자신의 노트에 ‘아름다운 흑인 여자’라고 묘사한 그녀를 다른 두 그림에서도 모델로 썼다. 그중 하나는 단독 초상화였다. “제 질문은 항상 ‘로르는 어떤 사람인가?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을 추측할 수 있는가?’였어요.” 내가 전화했을 때 머렐은 이렇게 말했다. “엘리자베스의 작품에서 아주 매력적인 부분도 그거죠. 그녀는 마네와 마리 길레미네 베노이스트(Marie-Guillemine Benoist)를 위해 포즈를 취한 모델의 삶을 열심히 상상해요. 역사적인 미술 작품을 활용하는 다른 동시대 예술가와 다른 방향이죠.”
콜롬바의 스튜디오는 맨해튼 중간지대 어느 건물 5층에 있다. 지난해 12월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는 사계절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봄(Spring)’ 작업에 한창이었다. 높이 180cm, 너비 90cm의 개별 작품은 하나의 계절을 의인화했는데, 봄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흑인 여성의 전신상으로 표현했다. 그 모델은 엘리자베스의 언니 미리암(Myriam)의 열두 살짜리 딸 레아(Léa)다. 자칫 그녀의 숙달된 전통 기법에 매혹됐다간 메시지를 놓칠 수도 있다. ‘흑인들의 삶은 정말 중요하며 항상 그래왔다’는 메시지 말이다. 긴 드레스를 걸친 맨발의 레아는 소용돌이치는 흰색 구름 앞에서 장미 송이를 꺾고 있다. 이것은 밑그림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미술학교에서 배운 거장들의 기법을 바탕으로 회색으로만 채워져 있다. 색은 그 후에 입힌다. 다른 세 계절은 응접실 벽에 기대어 있었다. 올 초에 운명을 달리한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루시안(Lucianne)은 겨울이고, 큐레이터 친구인 칼리아 브룩스 넬슨(Kalia Brooks Nelson)은 가을이다. 여름은 엘리자베스가 거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본 젊은 여성이다. 네 명 모두 아름다운 프랑스 고급 의상을 걸치고 있다. 과거 흑인 여성은 이렇게 격식을 차린 의상을 입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부모는 서인도제도 남동부의 프랑스령 섬인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1971년에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젖먹이 딸 미리암을 데리고 파리 바로 외곽의 에피네쉬르센 지역으로 옮겨갔다. 엘리자베스는 그로부터 5년 후에 태어났다. 조숙한 데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그녀는 여섯 살 때 “피카소가 될 거야!”라고 선포했다. 그녀의 부모는 30년 동안 카리브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운영했다. 그들은 엘리자베스가 물감으로 식당을 장식하도록 했고, 독서를 권했다. “매일 밤 침대에서 손전등을 비춰가며 책을 읽었어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사랑이 오늘날 그림에까지 이어졌다. 엘리자베스는 여덟 살 때 초등학교에서 아버지날 프로젝트를 하며 예술가에 다가섰다. “선생님께서 인상주의 화가에 관한 책을 들고 오셨어요. 그 그림을 따라 그려 아버지께 선물하라고요. 저는 반 고흐의 노란색 남자 초상화를 보고 ‘저 정돈 나도 그리겠어’라고 했어요. 교만했죠. 어쨌든 쉽게 따라 그렸어요.” 이것으로 어른들의 주목을 받았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은 천재예요.” 그녀의 두 번째 집은 동네 도서관이다. 10대 시절 그곳에서 우연히 프랑스계 미국인 수집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존과 도미니크 드 메닐(John and Dominique de Menil)의 책 <서양미술에서 흑인의 이미지 3(The Image of the Black in Western Art Volume 3)>을 봤다. “고전 회화와 조각에 등장하는 흑인을 다룬 아름다운 책이에요. 저처럼 생긴 사람들을 보니 행복해졌죠. 그 순간 이 길을 걸으리라 결심했어요.”
엘리자베스는 파리에 있는 에스티엔 스쿨에서 전통 미술 기법에 대한 기본기를 철저히 다졌다.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엔 광고 에이전시에서 잡다한 일을 하며 지냈다. 그녀는 1998년에 친구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갔다. 친구 엄마는 <토탈 이클립스>를 찍은 영화감독이었다. 그 연줄로 엘리자베스는 영화계 사람들을 만나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8년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머물렀다. 그녀는 매일 그림을 그렸고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스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과 톰 포드 감독의 <싱글 맨(A Single Man)>을 비롯한 영화 삽화 작업을 하며 임대료를 냈다. 그 당시 미술계와 영화계의 연결 고리는 거의 없었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상대가 직업을 물었고, 화가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녀가 ‘도대체 LA에서는 뭘 하는 거죠?’라고 물었어요. 그 한 문장이 일종의 계시가 된 거죠.”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는 뉴욕임을 깨달았다.
뉴욕에서 여배우 줄리 델피(Julie Delpy)를 통해 유명한 프랑스 화가 발튀스(Balthus)의 딸인 하루미 클로소프스카 드 롤라(Harumi Klossowska de Rola)를 만났다. 그녀의 추천으로 프랑스인 안경 디자이너 셀리마 살라운(Selima Salaun)과 할렘 아파트에 입주했다. “할렘이 네덜란드에서 유래한 이름이어서 좋아해요. 제 그림도 네덜란드 거장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녀는 각종 공과금과 임대료를 내려고 영화 작업을 병행했다.
그녀를 뉴욕 미술계로 이끈 사람은 바로 예술계의 보증수표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 뉴욕대 티시예술학교 사진영상학과장인 행크 윌리스 토머스(Hank Willis Thomas)의 어머니인 데보라 윌리스(Deborah Willis) 박사다. 2010년 처음 만난 데보라는 그녀를 아들 행크와 조카이자 큐레이터인 칼리아 브룩스 넬슨에게 소개했다. 칼리아는 엘리자베스를 촉망받는 큐레이터 모니크 롱(Monique Long)에게 추천했다. 2016년 롱은 지역 미술관에서 엘리자베스의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뉴요커>는 그녀의 작품을 “19세기 예술사에서 삭제된 흑인 여성을 살려낸 멋지고, 열정적이고, 고무적이면서도 화려한 초상화”로 묘사했다. 첼시에 있는 메트로 픽처스 갤러리의 공동 소유자인 헬렌 위너(Helene Winer), 프리스턴대학 부속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구매했다.
엘리자베스와 나는 점심 식사를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한 적도, 남자 친구도 없죠. 제가 좀 까다로운가 봐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녀는 예술가 친구를 집에 초대해 엄마표 뵈프 부르기뇽을 요리해주곤 한다. 토요일 아침마다 쿵후를 하고 일주일에 서너 차례 체육관에 간다. 그 밖의 시간은 스튜디오에 있다. 지난 4월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신데렐라(Cinderella)>에 관한 2분짜리 단편영화를 개봉했다. 또 1920년대 할렘에서 ‘거의 마피아처럼’ 성공한 스테파니 세인트 클레어(Stephanie St. Clair)를 모델로 한 그래픽 노블을 시작했다. “그녀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죠. 바람피운 흑인 연인을 죽이려 했고 결국 감옥에 갔어요. 하지만 출소해 매우 부유하게 생을 마감했죠.” 요즘 그녀의 또 다른 작업 주제는 ‘여가’다. 서빙이 아니라 여가를 즐기러 온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사람이 없는 <테이블의 자리(A Seat at the Table)>라는 거대한 정물화도 그린다. “만찬은 여가의 한 부분이잖아요. 끝도 없이 특별한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죠.” 이 세속적인 쾌락의 식탁엔 모두를 초대한다. “아름다움은 평등하죠.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 특권이 주어져선 안 돼요.”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Anton Corbijn
- 글쓴이
- DODIE KAZANJIAN
- 패션 에디터
- Phyllis Posnick
- 메이크업
- Stéphane Mar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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