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소셜 미디어 대란, 서양탕국 다이어트

2020.02.04

소셜 미디어 대란, 서양탕국 다이어트

미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다이어트 보조제 시장은 난공불락일 겁니다. 사람들은 속고 속고 또 속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종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서 집에 쌓아두곤 하니까요.

“이런, 사이즈 변화가 전혀 없군요. 새로운 다이어트 보조제를 찾아봐야겠어요!”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빵! 하고 터진 다이어트 보조제는 ‘서양탕국’입니다. 세상에, 마시기만 해도 살이 빠진답니다. 다이어트 보조제 시장에서 이보다 식상한 어불성설 문구도 없지만 희한하게 이 말만 들으면 뭐에 홀린 듯이 너도나도 사게 되죠.

이것이 바로 온라인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서양탕국!

자, 그럼 서양탕국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우선 서양탕국은 영생보감이라는 한방 라이프 식품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식품입니다. 참고로 영생보감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하는 책의 이름은 아닙니다. 커피는 19세기 선교사로 온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서양 외교관들이 조선 왕실에 커피를 진상하면서 양탕 혹은 양탕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죠.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고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입니다. 영생보감에서는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 개화기 절세 미녀 서씨의 성을 붙여서 서양탕국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주의! 이 이야기는 논픽션이며 실존 인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양탕국 사이트에서는 서씨가 양탕국을 마시고 ‘매끈하고 가벼워졌다’고 하는데, 어쨌든 서씨는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한 인물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효능이 있었다면 가상의 인물 서씨보다도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인 고종에게 단박에 효과가 났을 텐데요. 궁에서는 커피를 마신 왕이 자꾸 여위니 탕국이 위험 식품이라는 우려의 소리 또한 높았을 테고요. 물론 <고종실록>에도 기록이 남았겠죠? 그러니 사실이 아닌 걸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 고종 황제.

어쨌든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스토리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앗, TMI였나요?

이제 서양탕국의 원료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콜롬비아산 인스턴트커피 90%, L-카르니틴 5%, 그린 커피 빈 추출 분말 5%. 19세기에는 인스턴트커피도 없었지만 서양 외교관들이 공수한 원두의 생산지에 대해 정확히 남겨진 기록도 없습니다. 콜롬비아산인지 에티오피아산인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커피 외의 성분 10%를 포함하고 있으니 ‘조선 개화기 최초의 커피’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커피로 고종을 독살하려 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 <가비>.

하지만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성분은 바로 이 10%에 있다는 사실. L-카르니틴은 다이어트 3대 보조 식품 중 하나로 체내 지방산에 붙어서 미토콘드리아로 이동하는 수송체 역할을 합니다. 지방산의 에너지화를 촉진하기 때문에 지방 연소에 도움을 주는 거죠. 말만 들어서는 먹기만 해도 몸속의 지방이 죽죽 빠질 것 같지만 인간의 몸은 이론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L-카르니틴 복용에 대한 여러 번의 인체 실험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엇갈렸으니까요. 공통된 결과는 운동할 때 지방 연소가 촉진된다는 것뿐.

다이어트 3대 보조 식품 중 하나인 L-카르니틴도 운동 없이는 아무런 효과가 없답니다.

또한 볶지 않은 생원두인 그린 커피 빈도 폴리페놀 물질 클로로겐산을 함유해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클로로겐산이 간에서 지방 대사를 활성화해 중성지방 농도를 낮춘다는 원리인데요. 문제는 그린 커피 빈 추출물로 진행한 그동안의 실험 역시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고 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인터넷에는 지금도 엇갈린 리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함유한 성분의 실험 결과처럼 서양탕국의 체중 감량 효과도 분명치 않습니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4kg이 빠졌고 누군가는 효과를 1도 보지 못했죠. 몸무게가 줄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달달한 믹스 커피 혹은 커피 전문점의 시럽 가득한 라테를 끊고 서양탕국을 마셨다면 분명 빠졌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그즈음에 운동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요. 혹은 우연히도 입맛이 없어져서 예전만큼 못 먹었을 수도 있겠군요. 영생보감에서는 서양탕국을 식품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마시기만 해도 가벼워지는 ‘커피’라고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90% 커피니까요. 게다가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성분을 포함했으니 가벼워질지도 모르고요.

그러고 보니 서양탕국을 먹는 동안 운동도 하고, 달달한 라테도 끊었던 거예요!

여러분에게 확실히 말할 만한 한 가지는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 모은’ 다이어트 보조제에 비하면 유통기한을 넘길 확률도, 애물단지로 집 안 어딘가에 쌓일 확률도 가장 적다는 것. 어쨌든 심심하면 타 먹을 수 있는 커피잖아요?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Everett Collection,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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