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의 귀환
20년 전 여성을 설레게 하던 가방이 돌아왔다. 그저 그런 가방이 아닌, 하나의 현상이었던 바게트의 귀환.
“요즘의 여성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강박관념이 여기 있다. 장식과 컬러가 패션에 힘을 실어주면서 90년대 중반의 미니멀리즘에 양념을 더한다. 여성 대부분의 기본 아이템이었던 검정 가죽 백은 독특한 소재와 자수, 비즈, 모피 등을 더한 새로운 백에 비교하면 낡아 보인다. 점점 퍼지고 있는 핸드백 열풍 때문에 액세서리 마켓이 상종가를 기록하는 중이다.”
1999년 7월 18일 <뉴욕 타임스>는 패션계에서 기록할 만한 현상을 보도했다. 기사 내용은 단순하고 전통적인 핸드백 대신 화려하고 특징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핸드백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톰 포드의 구찌가 선보인 뱀부 백, 존 갈리아노의 디올에서 나온 레이디 디올 백,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에서 발표한 로고 백 등은 곧 도래할 ‘잇 백’ 시대의 서막을 여는 트리오였다. “옷은 개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죠.” 마침 이라는 책을 출판한 뉴욕 FIT 뮤지엄의 큐레이터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은 당시 기자에게 백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핸드백을 통해 패션 센스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자가 주목한 건 하나의 핸드백을 둘러싼 열풍. “펜디 바게트야말로 지금의 ‘백 마니아’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프랑스 바게트 빵처럼 어깨 아래에 끼고 다닐 수 있어 명명된 작은 가방은 시퀸과 진주 등으로 장식한 예술적인 숄더백이다.” 1997년 가을 펜디가 소개한 바게트는 심플한 나일론 백부터 손으로 자수를 놓은 장식까지 여러 버전으로 등장했고, 2년 만에 거의 500개에 가까운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백을 ‘컬렉팅’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결국 그들 사이에 펜디 열풍이 시작된 셈이다.
1년 뒤 바게트 백은 또 한 번 열풍을 경험한다. 그 당시 패션 애호가들에게 성전 같았던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에 또 하나의 조연으로 등장한 것이다. 2000년 10월 방송된 에피소드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연기한 캐리 브래드쇼는 뉴욕 거리를 거닐다 강도와 맞닥뜨린다. 핸드백을 내놓으라는 강도의 말에 캐리는 이렇게 외친다. “하지만 이건 바게트라고요!” 하나의 백이 아니라, 그만의 정체성을 가진 오브제로 인정받은 것이다.
2012년 바게트 백 탄생 15주년을 맞아 펜디가 리졸리 출판사와 내놓은 바게트 백을 주제로 한 책 서문에서도 사라 제시카 파커는 바게트 백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펜디는 우리에게 아이템을 대여해준 첫 번째 중요한 패션 하우스였습니다. 바게트야말로 그 홍수의 문을 열었고, 우리 스토리라인에도 영향을 끼쳤죠. 캐리가 집보다 패션에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 바게트 백의 열풍이 시작된 또 다른 이유는 뉴욕에서 열린 전설적인 샘플 세일 때문이었다. 멋쟁이 뉴욕 기자들이 아주 합리적인 가격으로 바게트 백을 휩쓴 다음, 동시에 유럽 패션 위크 출장을 떠났고 곧 그들 자체가 훌륭한 바게트 광고 역할을 해준 것이다. 지금 펜디가 선보인 프로젝트 역시 그 아이디어를 닮아 있다. 인플루언서들이 다 함께 하나의 패션 아이템을 즐기는 모습으로 여성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 게다가 바게트의 원조 히트 메이커가 동참했으니, 곧 다시 한번 바게트 열풍이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
올봄 사라 제시카 파커와 바게트가 재회했다. 펜디 하우스가 여성 간의 우정과 바게트 백을 기념하는 #BaguetteFriendsForever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상하이, 홍콩,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에서 인플루언서세대 여성들은 쇼핑과 칵테일, 바게트를 함께 즐긴다. 특히 인상적인 건 뉴욕 에피소드. 카로 다울, 나타샤 라우, 에보니 데이비스, 멜리사 마르티네즈는 함께 칵테일을 마시면서 쇼핑 이야기를 나눈다. 손에 쥐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쇼핑 욕망에 이끌려 그들이 달려간 곳은 펜디 매장. 꼭 가지고 싶었던 퍼플 시퀸 장식의 바게트 백은 이미 사라진 후. 방금 그 백을 사갔다는 여성을 향해 그 백은 내 것이라고 외치자 바게트의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상상 가능하다시피 그 여인은 사라 제시카 파커, 그리고 퍼플 바게트 백은 20여 년 전 그녀가 강도에게 뺏긴 바게트를 꼭 닮아 있다. “이건 가방이 아니에요, 바게트죠(This is not a bag, it’s a Baguette)!”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FENDI
- 스폰서
-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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