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상주의에 대한 시선

2019.04.10

인상주의에 대한 시선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인상주의 회화 전시를 선보였다. 〈코톨드 컬렉션: 인상주의에 대한 시선〉은 예술에 대한 사적인 열정의 변화를 확인할 자리다.

프랭크 게리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설계하며 예술품의 전 세계 순회를 염두에 두었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세계에서 가장 모던한 유리 범선인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싣고 순항 중이다. 6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에 이들의 작품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본 전시에서는 영국인 기업가 겸 후원자인 사무엘 코톨드(Samuel Courtauld)가 소유했던 회화, 프린트, 드로잉 100여 점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작품을 보유한 런던 코톨드 갤러리가 2018년 9월부터 보수공사로 잠시 문을 닫으면서 파리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게 됐다.

조르주 쇠라. ‘쿠르브 부아의 다리’, 1886-1887.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코톨드의 컬렉션은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고갱의 ‘네버모어’, 르누아르의 ‘특별관람석’,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같은 대작이 다수 포함된, 그야말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인상주의를 만끽할 방대한 컬렉션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세잔, 쇠라,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반 고흐, 고갱의 귀중한 작품을 볼 수 있어 인상주의의 발자취를 뒤따를 수 있다.

코톨드 갤러리는 18세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전통적인 공간이다. 이에 반해 이곳은 ‘파리의 뮤지엄은 전통적이다’라는 이미지를 바꿨을 정도로 젊고 역동적이다. 익숙하고 전통적인 공간 속 인상주의 그림과 모던한 공간 속 인상주의 그림은 전혀 다른 감동이다. 코톨드 갤러리 관장 에른스트 베젤린 반 클라에르 베르겐(Ernst Vegelin Van Claerbergen)은 전혀 다른 공간의 차이를 아우르는 일에 집중했다. 관람객이 강렬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큰 공간도, 작은 공간도 만들었으며 서로 다른 각도로 공간을 배치하기도 하며 그림을 아름답게 걸었다. 6개 전시실은 작가별로, 연대순으로 채워졌고 각 전시실은 앙상블을 이룬다. 이와 같은 섬세한 배치를 통해 쇠라의 ‘분첩을 가지고 화장하는 여인’은 코톨드 갤러리에서 지니지 못한 기념비성과 영향력을 나타내는 중이다.

조르주 쇠라. ‘강가의 배’, 1883.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사실 인상주의 컬렉션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그림’이기도 하지만 모두 아는 그림이기도 하다. 호기심이 생겨 전시장을 찾는다기보다 명성을 직접 확인하러 가는 행위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아티스틱 디렉터 수잔 파제(Suzanne Page)는 오랜 시간 인정받아온 ‘명작’은 모순을 가진다고 말했다. “전설적이고 상징적이라서 많은 이들이 런던에서 직접 작품을 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와 소재로 재생산된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가 됐고 자신의 ‘아우라’를 빼앗겼죠. 따라서 이번 전시의 주요 강점은 작품이 본래 지닌 진동을 되살린 것입니다.”

전통적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 자체에 관심을 두며 등장한 인상주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깔까지 좇았기에 아름답고, 일상과 자연을 그렸기에 친근하다. 카미유 피사로의 ‘덜위치의 로드십 레인 역’에는 기찻길 풍경이 있고,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난파 후의 새벽’에는 동틀 무렵 바다가 있다. 19~20세기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지금보다 훨씬 찬란하고 빛나는 시절이었을지 모르겠다. 각기 다른 작가가 유사한 화풍으로 그린 동일 시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개인사를 떠오르게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상주의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니까.

카미유 피사로. ‘덜위치의 로드십 레인 역’, 1871.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이번 전시는 한 수집가의 열정이 훗날 전 세계 대중의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는지 보여준다. 문화의 민주화다. 사무엘 코톨드는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나 세르게이 시추킨(Sergei Shchukin)과 견줄 수 있는 수집가다. 직물 회사를 설립해 합성섬유 비스코스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는 넓고 깊은 시야로 사회를 바라봤는데 그 중심에 예술이 자리했다. 과도한 물질주의를 경계했던 그는 정신적 가치를 되돌릴 수 있는 건 예술뿐이라 믿었다.

‘감정(Emotion)’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사무엘과 아내 엘리자베스는 평생을 예술 작품 구입과 작가 지원에 몰두했다. 작품 구입 원칙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단 하나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인상파 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믿었고 인상주의를 가능한 한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 특히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과 ‘안시 호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과 같은 세잔 컬렉션을 보유함으로써 세잔이 영국에서 명성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컬렉션은 화가의 커리어 전체를 아우른다. 또한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일찍 죽음을 맞이한 쇠라를 영국에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덕분에 이곳에서도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분첩을 가지고 화장하는 여인’ 등 쇠라의 작품 13점을 감상할 수 있다.

코톨드는 대량 구매를 하지 않았고 작품을 한 점씩 아주 신중하게 선별했다. 그는 모든 그림을 일상의 일부로 여기고 깊이 경험했다. 에른스트 베젤린 반 클라에르베르겐은 말했다. “사무엘 코톨드에게 예술은 현대 사회에서 보이는 물질주의에 대한 필수적인 해독제였습니다. 그는 예술이 사람과 국가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예술 소장품을 가능한 한 폭넓게 공유하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사무엘 코톨드의 감수성이 오롯이 녹아 있다. 항상 자신들의 컬렉션이 공공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코톨드 미술 연구소와 갤러리를 설립했고 대부분의 소장품을 기부했다.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두 사람’. 1892-1896.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전시는 시대를 앞서갔던 코톨드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와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박애주의라는 단어는 그에게 거창하지 않다. 예술 창작자만 예술을 위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가 예술의 힘을 믿고 순수하게 사랑했던 컬렉터를 향해 보내는 마땅한 조명이기에 대중에게도 의미를 가진다. 에른스트 베젤린 반 클라에르베르겐은 일화를 들려줬다. “프랑스는 사무엘 코톨드를 그야말로 자신의 심장부로 데려온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 역시 아주 많은 사람이 컬렉션을 감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기뻤어요. 전시 개막 리셉션이 끝난 후 떠나려고 하던 차에 한 여성이 기념품점에서 급히 뛰쳐나오며 말했어요. ‘우리 모두 사무엘 코톨드를 사랑해요. 그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업가예요’라고요. 저는 이 말이 아주 진실하고 감동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은 이들이 사무엘 코톨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특별관람석’, 1874.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이곳은 예술품을 공유하려는 컬렉터의 욕망을 꾸준히 주목해왔다. 수잔 파제는 말한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개관 이래 현대미술에 관한 사명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분리하지 않도록 유념해왔습니다. 코톨드 전시는 과거 (2014-2015), 뉴욕 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비잉 모던: 모마 인 파리(Being Modern: MoMA in Paris)(2017-2018), (2016-2017)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들 전시는 예술사에서 수집가의 상징적인 역할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표현주의적이며(Expressionist) 사색하는 듯 하고(Contemplative) 팝적이며(Popist) 음악적인(Music) 컬렉션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술관 3개 층과 테라스에서는 전도 한창이다. 새로 선보이는 소장품 75점이다. 조안 미첼, 알렉스 카츠, 게르하르트 리히터, 에토레 스팔레티, 구사마 야요이 작품은 최신 복제 기법과 함께 회화가 어떻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규정을 넘어섰는지 보여준다.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통과 가능한 입방체-블루’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둘러본 관람객이 반드시 인증샷을 찍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부서질 듯 파란 이미지는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난파 후의 새벽’, 1841.
©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Samuel Courtauld Trust)

극도로 현대적인 동시에 장엄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전시는 이어진다. 7월에는 길버트와 조지(Gilbert and George)의 기념비적인 목탄 드로잉 작품 ‘두 젊은 남성이 있었다(There were Two Young Men)’(1971)를 한시적으로 선보인다. 하반기에는 재단 내 모든 공간을 할애해 프랑스 출신 선구자적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에 헌정하는 전시를 준비한다. 페르낭 레제,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 호안 미로, 앙리 로랑스 같은 예술가의 회화, 조각, 사진 등 그녀의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넣은 작품을 전시해 다재다능했던 예술가를 조명한다. 2020년초에는 상징적인 현대미술가 신디 셔먼 헌정 전시도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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