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측된 블랙홀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서나 봤던 블랙홀. 실제로 관측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블랙홀은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입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합니다.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 중력이죠. 지구에서 지구 중력을 이길 수 있는 속도로 물체를 던진다면 그 물체는 지구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공기저항 등 외력을 무시하고, 순수하게 지구의 중력만 고려했을 때 지구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킬로미터입니다. 행성마다 각기 표면 중력이 다르기 때문에 탈출 속도도 각기 다릅니다. 여기서 가정해봅니다. 만약 중력이 우주의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천체가 존재한다면 그 천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 속도는 빛의 속도인 광속, 즉 초속 30만 킬로미터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그런 천체가 존재한다면 빛조차도 빨아들이겠죠? 이런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 탄생한 개념이 블랙홀입니다.
블랙홀은 지금까지 개념으로만 존재했습니다. 만약 있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의 반사 때문인데, 앞서 말했듯이 엄청난 중력을 가진 블랙홀에는 아예 빛이 닿을 수 없으니까요. 또한 블랙홀의 존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물체든 주변 빛과 시공간에 영향을 미치고, 그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빛과 시공간은 더 많이 휘어집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물체는 없고 에너지와 질량은 호환된다고 설명하는데요. 에너지와 질량이 호환된다는 것은 질량도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뜻입니다. 이 두 이론을 종합하면 빛은 블랙홀에 닿는 순간 왜곡되어버리고 블랙홀에서 시간은 정지하거나 마이너스 상태가 됩니다. 블랙홀의 질량이 무한대로 증가하면서 속도는 무한소가 되니까요. 시공간이 완전히 휘고 뒤틀려서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세계 과학사 최초로 실제 블랙홀이 관측됐습니다. 블랙홀 탐사 글로벌 프로젝트 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진은 지난 10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 팀이 관측한 것은 무게가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하는 초대 질량 블랙홀입니다.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부의 거대 은하 ‘M87’ 한복판,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이죠. 쉽게 말하면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을 정도로 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이론상 관측이 불가능한 블랙홀을 어떻게 관측했을까요? 연구진은 블랙홀 주위를 겉도는 빛을 모아서 블랙홀의 윤곽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블랙홀의 그림자를 본 거죠. 빛의 조각을 관측하고 모으기 위해 남극 망원경, 유럽남방천문대 망원경, 미국 애리조나 전파천문대 등 여섯 개 대륙 여덟 개의 전파망원경을 사용했습니다. 각각의 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슈퍼컴퓨터가 합성, 블랙홀에 의해서 빛이 가려진 블랙홀의 그림자 전체 이미지를 완성했습니다.
이번 관측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미국의 대학원생이 큰 공을 세웠습니다. MIT 대학원 박사과정 케이티 보우만은 블랙홀 촬영을 위해서는 지구만 한 망원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 그런 크기의 망원경을 만들 수 없으니 지구 곳곳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하나의 초대형 망원경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전파망원경의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것을 가능케 한 것이 그녀의 알고리즘이었습니다. 실제로 EHT 연구 팀은 그 알고리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 세계의 고성능 전파망원경을 연결, 지구 전체 규모의 거대한 가상 전파망원경으로 관측에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소소한 일상에 지지고 볶다가 이런 범우주적인 소식을 접하면 내 주위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집니다. 혹은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나와 내 삶의 반경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천체물리학의 ㅊ조차 모르더라도 이런 소식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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