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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웃기다

2019.04.19

by VOGUE

    마침내 웃기다

    한국 코미디 영화가 진화했다. 눈물과 감동을 걷고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자 관객들이 웃었다.

    나는 한국 코미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이게 꽤나 뒤틀린 습관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한 장르를 ‘한국 코미디’로 뭉뚱그려서 일컫는 것 또한 꽤나 무례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좀처럼 참아낼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는 이를테면 웨스 앤더슨의 영화나 우디 앨런의 영화다. 느긋하게 주인공들을 따라가며 시시껄렁하지만 복기하면 할수록 웃긴 대사를 주고받게 만드는 영화 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주인공들을 사랑해 마지않게 되는 그런 코미디 영화 말이다. 혹은 아예 작정하고 ‘화장실 유머’의 어떤 극단을 창출해내는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다. 이건 어떻게 보면 취향의 문제다. 문제는 내 취향을 오롯이 저격해주는 한국 코미디 영화란 거의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청탁받은 후에야 <극한직업>을 봤다.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앉았다. 첫 시퀀스가 시작됐다. 다섯 명의 주인공 경찰들이 마약 범죄자를 쫓는 시퀀스다. 형사들은 엉터리고 범죄자도 엉터리다. 형사들은 이상한 대사를 쳤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그들은 도통 의미가 없는데도 웃기는 대사를 주고받았다. 액션도 엉터리다. 쫓고 쫓기는 쾌감을 위한 액션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는 대사도 액션도 엇박자의 리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병헌 감독은 그저 ‘웃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 이병헌 감독은 <과속스캔들>(2008)과 <써니>(2011)의 각색에 참여했고, 두 편의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스몰>(2014)과 <바람 바람 바람>(2017)이다. 앞의 두 편은 이를테면 일종의 ‘병맛’ 코미디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은 전작에서 자신감 있게 밀어붙이던 병맛을 <극한직업>에서 물을 만난 것처럼 쏘아붙인다.

    이병헌 영화의 가장 거대한 장점은 대사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유머를 뽑아낸다. 그리고 대개 이 유머는 두 가지에 기대고 있다. 하나는 무심하게 쫀쫀한 리듬이고 둘은 반복이다. 이를테면 류승룡이 휴대폰을 받을 때의 대사가 그렇다. 그는 치킨집을 차리고 난 뒤 전화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치킨인가, 갈비인가”라는 홍보 멘트를 내뱉는다. 그 장면은 예고편으로 보면 그리 큰 감흥은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류승룡은 이 대사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코미디의 리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사는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더 웃기다. 그런데 이런 리듬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시실리 2km>와 괴물 영화 <차우>의 신정원 감독 영화에서다. 특히 <차우>의 거의 첫 장면에서 신정원은 ‘반복적인 리듬의 코미디’를 기가 막히게 선보인다. 사건 현장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경찰들은 미끄러운 시골길을 내려가다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진다. 처음 미끄러지는 장면은 그냥 보통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끄러지는 장면을 끝없이 반복함으로써 신정원은 보통의 슬랩스틱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시퀀스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극한직업>에서 또 한 명의 코미디 대가를 당신은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이명세 감독이다. 이명세 감독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유려한 비주얼리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코미디 감독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진지한 장면에서 아이러니한 유머 감각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박중훈과 안성기가 건물 옥상에서 싸우는 장면이 그렇다. 그는 두 사람이 엉겨 붙어 싸우는 장면에서 왈츠를 틀어버린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왈츠 음악이 들어가는 순간 휘영청 밝은 달 아래서 벌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병헌 감독은 <극한직업>의 라스트에서 이 장면을 빌려온 것이 틀림없다. 류승룡과 신하균이 작은 보트 위에서 싸우는 장면은 거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극한직업>은 한국 코미디 영화의 선배들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이 단단한 코미디 영화에서 ‘촤르륵’ 펼쳐놓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신정원과 이명세 외에 21세기 이후 한국 영화의 코미디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둘 있다. 바로 김상진과 장진이다. 김상진은 <돈을 갖고 튀어라>(1995), <깡패 수업>(1996),
    <신라의 달밤>(2001)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김상진의 특징은 그의 선배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투캅스> 시리즈의 강우석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액션과 코미디 장르를 버무리는 것이다. <극한직업> 역시 두 장르의 결합이다. 동시에 반드시 언급해야 할 감독은 <기막힌 사내들>(1998)로 데뷔한 장진이다. 그의 코미디는 <킬러들의 수다>(2001), <아는 여자>(2004), <박수 칠 때 떠나라>(2005)로 이어진다. 장진의 장점은 이른바 ‘대사발’과 리듬감이다. 그는 주인공들로 하여금 묘한 대사를 치게 만드는데, 그 대사의 리듬은 언제나 기막힌 엇박자다. 그 느슨함이 주는 코미디 영화의 즐거움은 오롯이 장진의 것이었다. 이병헌 감독은 두 선배 감독들로부터 분명한 영향을 받은 영화광으로 보인다. 다만 이병헌의 신작이 선배들로부터 영향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선배들과 결별을 선언하는 영화라고 짚는 일은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그간 한국 코미디 영화는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웃기는 동시에 울리고 싶어 했다. 혹은 웃기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영화적 감동을 안겨주려고 했다. <극한직업>에서 이병헌은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형사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투캅스>를 비롯한 많은 한국 코미디 장르 영화의 외피를 따르지만 결코 선배들처럼 엔딩의 눈물과 감동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오로지 웃기는 데만 집중한다.

    <극한직업>과 꼭 함께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코미디 영화로는 <완벽한 타인>이 있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리메이크한 이 블랙코미디 역시 목적은 하나다. 그것이 통쾌한 웃음이든 찝찝한 웃음이든 뭐든 관객을 웃게 만드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 부부 동반으로 모여 식사를 하던 중 서로의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와 메시지를 공개하는 게임을 벌인다. 여기서는 가히 슬랩스틱이라 할 만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고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비밀이 드러나기도 한다.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 타인의 비밀을 캐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영화는 그들의 욕망으로 관객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달려나간다. TV 드라마 PD 출신인 이재규 감독은 다소 연극적이고 드라마적인 이 영화에서 ‘관객의 기대치’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탈리아 원전이 갖고 있는 어두운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신나게 풀어놓는다. 대개의 해외 영화 리메이크작이 ‘한국적인 각색’에 머물렀다면, <완벽한 타인>은 “좀 어색하지만 어때? 낄낄거리며 웃어봐!”라고 완벽하게 웃어 젖힌다.

    2018년 내내 충무로는 100억, 200억의 예산을 들인 다소 무거운 블록버스터를 양산했다. 많은 영화가 다소 무거운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혹은 할리우드 장르의 복기였다. 관객들은 질렸다. 그들이 기다리던 영화는 역사와 장르의 무게를 벗어던진,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였다. <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은 모두가 가벼운 영화에 목말라 있던 시기에 운 좋게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두 영화의 성공을 가늠할 수는 없다. <극한직업>은 진화한 코미디 영화다. 여기에는 이명세, 김상진, 장진, 신정원 감독이라는 기존 충무로 감독들의 장기에서 충무로적인 무언가를 걷어낸 코미디 감각과, 가히 주성치적인 ‘병맛’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병헌 감독은 그 감각과 맛을 거침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달린다. <완벽한 타인>은 진화한 리메이크 영화다. 한국 관객도 유럽 스타일의 블랙코미디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이다.

    동시에 <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의 성공은 2019년이라는 시대에서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 정치는 시끄럽고 경제는 암울하다. 이런 시기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민을 집어던지고 웃는 것이다. 충무로는 마침내 마음 놓고 웃어도 괜찮은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냈고, 많은 관객이 거기에 화답했다. 만약 22세기쯤 한국 영화사를 다룬 책이 나온다면 21세기 한국 코미디 영화는 2019년 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코미디 장르에서 눈물과 감동은 걷어내도 좋다. 한국 관객들도 <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 이후로는 새로운 코미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충무로는 그럴 준비가 되었는가? 그걸 물을 때가 왔다.

    에디터
    조소현
    글쓴이
    김도훈( 편집장)
    일러스트레이터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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