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영화화되는 희대의 사기꾼 과학자

2023.02.26

by 송보라

    영화화되는 희대의 사기꾼 과학자

    몇 년 전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죠. 미국 의료 서비스 스타트업 ‘테라노스’와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의 거대한 사기극입니다. 그 사건의 전말을 다룬 책 <배드 블러드>가 우리나라에 번역되고 제니퍼 로렌스를 주연으로 한 영화 제작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어요.

    얼마 전 번역본이 출간됐습니다.

    제니퍼 로렌스를 홈즈 역으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식.

    엘리자베스 홈즈는 아름다우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로 어필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화학 전공자 엘리자베스 홈즈가 피 한 방울로 25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업합니다. 기술력에 대한 정확한 검증이 없었는데도 미국은 젊고 유능한 미모의 인물과 혁신적인 기술에 열광하죠. 미국의 주요 투자자와 유명인이 앞다퉈 투자를 하고 기업의 시장가치가 90억 달러까지 치솟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에 의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까발려집니다. 회사의 가치는 순식간에 0달러로 떨어지고 홈즈 역시 허위, 과장된 주장을 통해 투자자를 속인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됩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테라노스를 설립하고 한 방울의 피로 25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에디슨 키트’를 발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즈는 대외적으로는 합리적이고 명석한 리더였지만 실상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기를 원해서 매일 직원들의 출근과 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악덕 CEO였습니다. 그때까지 직원들이 남아 있도록, 저녁 케이터링을 늘 8시 이후에 주문했고요. 회사 기밀을 유지하는 데 집착해 외부인이 회사를 방문할 때는 화장실에 갈 때도 보디가드를 붙일 정도였죠. 자신의 사무실 창문은 방탄유리라고 으스댔고, 그녀가 움직일 때는 최대 스무 명의 보디가드가 그녀를 에워쌌습니다.

    뒤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저 순간에도 과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런 표정으로 직원들을 압박했을 듯.

    기술에 대한 명확한 검증 없이 그녀가 순식간에 부와 명성을 누리게 된 데에는 그녀의 외모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 역시 철저하게 의도된 것인데요. 그녀는 자신의 빨강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목소리도 꾸며서 낮고 굵게 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테라노스의 전 직원 중 한 명은 그녀가 술을 마시고 몇 옥타브 높은 원래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었다고 전했죠(아래 영상에서 패널들은 그녀의 꾸며진 목소리에 대해 신나게 씹어댑니다). 홈즈는 자신의 이미지를 여자 스티브 잡스로 설정하고, 항상 검은 터틀넥을 입었습니다. 아침마다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데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대답과 함께요.

    그녀는 테라노스의 최고경영책임자로 당시 자신의 연인이었던 서니 발와니를 회사에 들였습니다. 발와니는 그녀보다 거의 스무 살이 많았는데요.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스탠퍼드대 여름 프로그램으로 중국에 갔을 때 그를 만났습니다. 발와니는 그녀를 만난 후 아티스트인 일본인 아내와 이혼했죠. 어쨌든 COO인 발와니 역시 그녀 못지않게 직원들을 감시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뿐인가요. 홈즈는 의학과 과학 지식이 전무한 자신의 남동생 크리스찬 홈즈도 회사 임원으로 채용했습니다. 크리스찬은 스포츠 온라인 사이트를 구경하며 업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동창까지 회사 직원으로 고용해 직원들 사이에서는 비밀스런 놀림감이었죠.

    테라노스 회사에서 직원 교육 중인 홈즈와 발와니.

    파티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홈즈와 동생 크리스찬 홈즈.

    그럼에도 뛰어난 자기 PR 능력과 화려한 언변으로 그녀는 <포브스>와 <포춘>지 커버에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여자 자수성가 억만장자’라는 타이틀도 얻고, 테라노스는 루퍼트 머독과 워런 버핏 같은 거물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실리콘밸리의 유망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죠. 그즈음 테라노스의 혁신적인 진단 키트 ‘에디슨’의 작용 원리에 대한 <뉴요커>지의 질문에 그녀는 황당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화학반응이 일어나도록 화학작용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혈액 샘플과 검사 키트의 화학작용으로 신호가 발생하면 그것을 번역하고 검증된 연구소 직원이 그 결과를 검토하죠.” 과학에 젬병이어도 대답이 좀 이상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어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요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요리가 완성되면 대접합니다” 같은 수준의 내용이니까요.

    사진을 합성한 게 아니랍니다. 그녀가 커버에 등장한 매체를 보면 모두가 얼마나 완벽하게 속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존 캐리루가 조사에 착수합니다. 테라노스의 전 직원 60여 명을 포함한 160여 명을 인터뷰해 에디슨 검사 키트의 진실을 까발리죠. ‘피 한 방울로 26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 키트’로 실제 진단할 수 있는 항목은 고작 10가지. 나머지 250여 가지는 대기업에서 제조한 기계로 해왔던 기존 방식을 통해 진단한 것이었습니다. 만능 진단 키트라는 것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이제 보니 기술이 아니라 인력으로 돌리는 기운이 흠씬 풍기는 테라노스 연구실의 전경입니다.

    자신이 쓴 저서 <배드 블러드>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존 캐리루.

    이 기계에 피 한방울을 넣으면 방대한 데이터가 나온다는 말을 믿었던 겁니다.

    결국 그녀와 발와니는 9건의 사기 혐의와 2건의 사기 공모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홈즈는 10년 동안 공기업 임원이나 이사로 일하는 게 금지됐죠. 그녀가 회사에 출근하는 마지막 날, 발토라는 이름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사무실에 데리고 왔는데요.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반려견이라 미팅 중인 사무실에서 실례를 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최근에 전해진 소식. 항소해서 2022년에 다시 재판을 받게 될 엘리자베스 홈즈는 27세의 에반스 호텔 그룹 상속자 빌리 에반스와 샌프란시스코의 럭셔리한 아파트에서 동거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에반스는 그 논란의 반려견 발토의 아빠이기도 하죠. 그들의 계정은 비공개지만 그들이 찍은 사진이 이미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대체 그녀가 이루고 싶은 삶의 목표는 뭘까요?

    엘리자베스 홈즈, 발토, 빌리 에반스의 조합.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The View, Facebook,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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