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코헤이 나와는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에 예기치 못한 변화를 줌으로써 사유할 거리를 던진다. 물질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끈질긴 탐구는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갤러리 계단부터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사운드스케이프가 인상적이다.
계단을 내려와서 처음 보이는 인체 조각 ‘Vessel’ 시리즈는 안무가 다미앙 잘레(Damien Jalet)와 작업한 퍼포먼스를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일본의 사생관, 즉 ‘요미’를 모티브로 삼았다. ‘요미’는 죽은 자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상상 속에서 영혼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와는 다르다. 퍼포먼스는 옷을 거의 입지 않고 하는데 그 모습이 육체의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인종이나 성별을 전혀 알 수 없는 익명성이 느껴져서 현대사회에 던져야 할 메시지로 여겨지기도 했다. 퍼포먼스는 사후 세계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꺼지면서 끝나는데 이는 현실 세계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사운드스케이프는 교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젊은 아티스트 마리히코 하라(Marihiko Hara)와 작업했다. 새로운 만남에서 나온 새로운 것들을 공간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종교가 있나. 불교의 윤회 사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없다. 하지만 불교의 윤회 사상과 비슷하다. 머리가 없는 몸이 움직이는 모습은 동물이나 벌레 형상을 닮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로 변화는 진화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다. 전후의 일본은 종교관이 애매하다. 자신의 종교관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현대 일본인의 기질과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물질이나 물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했던 ‘Throne’을 축소한 작품도 선보였다. 황금색으로 덮인 모습이 마치 불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Throne’은 왕좌라는 뜻이다. 권력이나 권위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지만 인류 역사에 남아 있다. 인간의 본질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서 만든 작품이다. 지금은 글로벌한 세계이자 정보화 시대다. 어떤 시대든 여러 면모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Throne’에서 왕좌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권력이나 권위가 존재하던 자리를 이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대신하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도 하나.
공포라기보다는 호기심과 재미가 더 강한 것 같다. 사실 내가 했던 상상보다 실제 발달 속도가 느리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들은 대부분 기술상 완성되어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무인 자동차 역시 기술은 완성되었지만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맞다. 역사적으로 첨단 기술은 전쟁을 위해 발달해왔다. 우주도 전쟁을 위해 탐험을 시작했다. 인터넷 자체도 그렇다. 요즘은 무인 자동차뿐만 아니라 무인 전투기도 사고 발생 시 누구를 먼저 죽일 것인가 공론화되고 있다. 어릴 때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했나. 소설에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 과학자가 어떻게 우주의 신비를 밝혀냈는가 같은 학문에 관심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천문학을 좋아했다. 이번 전시에서 ‘Velvet’ 시리즈를 처음 선보였다. 출발점이 궁금하다. 이전에 ‘Swell’ 시리즈가 있었다. 액체를 부으면 거품 형태로 부풀어나가는 소재를 사용한 작품이다. 이미지적으로는 세포가 진화하는 콜로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표면을 벨벳으로 가공한 작품이 이번 시리즈다. 이끼 같은 느낌으로 작업했다.
벨벳으로 구현 불가능할 듯한 형태를 만들어 시선을 끈다. 시각적 이질감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 표면을 관객의 감각에 접속시키는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표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세계에는 물질이 넘쳐나기에 어느 순간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러 비켜나간 시선으로 내가 본 적 없고 만져본 적 없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소재에는 굉장히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조각도 형태뿐 아니라 소재, 공간이 모두 중요하다. 어떤 것을 조각하느냐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느끼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할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조각, 페인팅, 드로잉, 설치 모두 공간 자체의 체험을 중시해서 만든다. 이건 감각을 조각하는 것에 가깝다. 빛과 조명까지 섬세하게 조절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공명한다.
‘Moment’ 시리즈로 움직임과 속도를 물리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 역시 출발점은 ‘셀’일까.
가장 큰 테마는 중력이다. 중력의 힘을 이용해서 그렸다. 예전에 사선으로 그린 작품 ‘Direction’을 수평으로 옮긴 작품이 ‘Moment’ 시리즈다. 하지만 역시 맨 처음에는 ‘셀’이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느끼는 중력, 코리올리의 힘이라는 과학의 원리를 이용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 자체의 큰 테마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도 셀로 이루어졌다고 믿나.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셀로 이루어졌을까.
조금 전에 먹은 빵이나 삼계탕, 첫날 먹은 불고기 아닐까(웃음). 지금은 한국 걸로 구성되어 있다.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교토는 예술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도시인가.
9년 가까이 산속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26년째 살면서 이제 교토가 재미있는 도시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 자체의 밸런스가 좋은 곳이다. 대학교가 많아서 젊은이의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 가득하고 깊은 철학이 깃들어 있는 도시이다. 두 가지가 어우러져서 재미있다.
예술, 디자인, 건축 창작 플랫폼 ‘샌드위치(Sandwich)’를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샌드위치 작업실을 촬영한 짧은 클립을 봤는데, 마치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신기한 공장처럼 보였다. 이곳에서는 매일 무슨 일이 벌어지나.
매일 호화로우면서도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웃음). 샌드위치에서는 많은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된다. 프로젝트는 단순히 일이라기보다 다음 아이디어를 싹 틔우는 과정이다. 새로운 시도는 아티스트에게는 영감을 주고, 학생이나 인턴들에게도 배울수 있는 기회를 준다. 대학과도 다르고 개인 아틀리에와도 다르다. 어떻게 보면 교육기관의 역할도 하는 스튜디오인 것 같다.
작업실에 있는 가장 첨단 장비는 무엇인가.
벌써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최첨단 기술이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촉감 디바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클레이를 띄워놓고 펜을 만지면 그 느낌이 실제로 느껴지는 디바이스다. 세상에 나온 지 좀 됐지만 가격이 비싸서 널리 퍼지지 못하는 기술이자 장비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표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편인가. 목표나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편인가.
둘 다 맞는 것 같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한 작품은 많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많은 걸 상상했지만 시간이나 기회가 부족해서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궁금하다.
지금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누가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서 다 묻어버리려고 하는 답답한 시대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세계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아티스트는 좋은 작품을 만든다.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작가들이 충동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 에디터
- 조소현(피처 에디터), 김미진(패션 에디터), 이소민(Sub)
- 포토그래퍼
- 김보성
- 모델
- 김원경
- 헤어
- 이에녹
- 메이크업
- 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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