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이제 한국인에게 ‘밥심’이란 것도 철 지난 단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체식량이 미래의 식탁을 지배한다.
때는 바야흐로 2068년. 손목 경피에 삽입된 스마트 워치가 깜빡이며 식사 시간을 알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홀로그램화된 투명 사무실에 앉아 캡슐 한 알로 식사를 대신하던 남녀의 눈이 마주친다. 순간 미래식에 염증을 느낀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맥도날드로 달려가 빅맥을 손에 쥔다. 맥도날드 스페인이 제작한 바이럴 필름의 시놉시스다. 이 필름에 따르면 50여 년 뒤 식사는 알약 한 알이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미래식의 혼돈 속에서도 빅맥은 건재하고 말이다.
맛집마다 긴 줄이 늘어서고,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산 넘고 물 건너온 진귀한 식재료가 새벽 배송 되며 먹방과 쿡방 콘텐츠가 절찬리에 소비되는 ‘푸드 맥시멀리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알약 식사는 공상과학적 MSG를 팍팍 친 픽션에서나 머무를 듯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고 가정 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 시장이 연평균 21%씩 가파르게 성장하는 이 사회현상이 미래식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식탁에 원하는 건 누군가의 희생으로 차려낸 칠첩반상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체식량일지 모른다.
알약 한 알까진 아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소일렌트 셰이크’는 가장 진보한 식사 방법론을 제시한다. 파우더에 물이나 우유를 타서 마시는 이 셰이크는 시간이 곧 돈인 실리콘밸리의 생태계가 돌아가게 하는 필수 연료 같은 존재. 비슷한 음용법을 따르는 다이어트 파우더, 단백질 파우더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이 제품이 특별한 건 성인 남자의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영양학적으로 풍부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체중 조절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홀린 듯 아마존을 클릭했고 일주일 뒤 파우더와 드링크가 주방에 세팅됐다. 이제 속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패키지, 그 안의 모든 것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차례다.
첫 끼니는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그 이름, 오리지널 맛의 차지였다. 90g의 파우더에 정확히 우유 355ml를 섞은 뒤 한입 들이켜자 ‘되직하고’ 비릿한 콩 국물과 무설탕 두유가 뒤섞인 듯한 애매모호한 미각의 세계가 펼쳐졌다. 적어도 실리콘밸리의 일벌레들이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님을 확신했다. 400kcal의 한 끼 식사를 마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이내. 놀라운 사실은 은근히 배가 부르다는 것이다. 확실히 같은 400kcal라도 평소 빵이나 뜯어 먹을 때와는 다른 포만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효율성 면에선 합격점. 영양 성분 표시를 살펴보니 콜레스테롤은 제로.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단백질, 칼슘, 미네랄 등 25가지 영양소는 하루 권장량의 20% 정도 충전됐음을 알 수 있다. 아이폰 배터리처럼 앞으로 ‘완충’까지 남은 열량과 영양소가 예측 가능한 것도 대체식의 큰 메리트 중 하나다. 그로부터 3~4시간 정도 지났을까. 공복감이 예고 없이 훅 밀려오며 다음 식사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게 만들었다(분명 기대감이 아니라 보다 생존적 이유에 가까움을 밝혀둔다). 두 번째 끼니는 카페 모카 맛 드링크. 달콤함이 배가되니 목 넘김은 수월했지만 특유의 ‘밍밍함’을 어서 탄산 가득한 콜라로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고작 두 끼니 만에 유동식 외의 다른 옵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물리지 않게 만들, 씹고 뜯고 맛볼 욕구를 해소할 선택지는 한국의 소일렌트로 불리는 ‘랩노쉬’에 있었다. 랩노쉬를 택한 건 전투식량 같은 느낌이 덜한 조금은 감성적인 첫인상과 다양한 맛, 초코 바 등 씹을 거리가 있다는 이유였다. “대체식은 다이어트 식품이 아니에요. 삼시 세끼를 모두 대체식으로 바꾸라는 게 아니죠. 일반 식단을 이어가되 정말 바쁜 순간 간단히, 또 건강하게 끼니를 해결해줄 목적이죠. 일반식과 병행해서 하루 한 번, 최대 두 번 정도 섭취하는 걸 추천합니다.” 랩노쉬의 식품개발팀장 손혜진의 조언에 따라 약속이 없는 날, 요리가 귀찮을 때, 마감에 치여 밥때를 놓친 순간, 전날 과식했다고 느껴질 때 ‘푸드 쉐이크’로 식사를 대신했다. 밀크티, 블루베리 요거트, 곡물, 커피 등 총 여섯 가지 타입으로 구성된 셰이크는 소일렌트보다 익숙한 맛으로 입에 착 감겼고, 중간중간 초콜릿으로 코팅된 푸드 바로 허기를 달래니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던 입안에 핑크빛 생기가 돌았다. 물론 쫀득쫀득 피넛 버터가 쭉 늘어지는 깊은 풍미의 초코 바와 맛을 비교하는 건 반칙이다.
한 달 정도 간헐적으로나마 경험한 지금, 삼각김밥만큼이나 간편하지만 영양학적으로 알찬 대체식을 주변에 입소문 내는 중이다. 정크 푸드로 끼니를 때울 때처럼 부종이나 변비, 피부 트러블 현상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다. 다이어트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제품은 아니지만 저녁 한 끼 정도를 대신한다면 공복감의 급한 불은 끄면서 체중 감량 효과도 노려볼 수 있을 듯했다. 메뉴 결정부터 식재료 쇼핑과 상차림, 설거지, 냉장고 정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수반되는 수많은 골칫거리를 한 방에 해결해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의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다만 우리는 우주의 항해자가 아니기에 식사가 주는 정서적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다. 미래식의 판은 이미 벌어졌고, 아이디어 넘치는 수많은 스타트업 브랜드가 견인하며 진일보할 것이 자명하다.
먼 미래엔 ‘밥 먹자’는 말이 지닌 ‘소셜라이징’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왕이면 K-미래식이 흥하길 바라지만 우리 식탁을 잠식하지는 않길. 더불어 다이어트에 죽고 사는 이 나라에서 미래형 식사가 다이어트식으로 흐지부지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도 살짝 포갠다.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글쓴이
- 박세미(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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