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트루맨 쇼

2019.07.05

by VOGUE

    트루맨 쇼

    더 이상 환상에 현혹되고 싶지 않다. 진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다. 친구와도 불가능해진 일이 SNS, 유튜버와 가능할지 모른다.

    유방암 조직 검사를 앞둔 며칠 밤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검색을 계속했다. 발병 이유, 증상, 후유증, 좋은 병원, 명의 등을 새벽 2~3시까지 팔목이 시릴 만큼 들여다봤다. 정보는 불확실하고 점점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그러다 암 환우의 개인 채널을 봤다. 나처럼 젊은 직장 여성들이었다. 한 채널의 이름은 아예 ‘암환자 뽀삐’다. 그녀는 ‘극히 주관적인 암 환자 가발 리뷰’ ‘암 진단 후 멘탈 붕괴 극복하기’ 등을 올렸다. 뷰티 크리에이터 S는 항암 탈모 과정과 삭발 과정을 업로드했다. 그녀는 모자나 가발을 쓰고 여전히 화장하는 영상을 제작한다. 그런 채널은 내가 병명을 검색하면 나오던 병원홍보가 깔린 후기도 아니고, 공을 들인 TV 다큐멘터리도 아니었다. 병명만 다를 뿐 모두가 아픈 지금, 다른 이는 아픔을 어떻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진짜 이야기다.

    나는 특정 검색어를 입력해서 보게 됐지만, 그런 영상의 조회 수는 꽤 높았다. 남 일 같지 않은 암이라는 병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심각하거나 거창하지 않게) 말하는 그네들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진가 양동민이 유방암 환우를 인터뷰하는 영상도 그러했다. 양동민의 어머니는 2016년에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고, 그녀 역시 지난해 5월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했다. 병을 이겨내는 두 명의 여성이 차를 마시며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것”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 등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환우의 대화기도 하지만, 모두 생은 한 번이고 그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기에, 우린 그 영상에서 잊고 있던 가치를 환기한다. 진실한 이야기는 영상 기술이나 꾸밈 없이도 가닿는다. 양동민은 내게 이렇게 전해왔다. “자신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고 나면 더이상 그것이 아픔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쏘왓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항암 수술 날짜와 남은 치료가 쓰여 있다. 그녀는 원래 SNS를 아예 하지않았고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자기 얼굴을 올린 적 없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암 진단을 받으면서 기댈 곳이 없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 여기 있다고, 이렇게 살아간다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너무 두려울 것 같았어요.”

    그들이 가장 솔직할 수 있고 위로받는 곳은 일기장이고, 그 일기장이 요즘은 개인 채널, SNS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매개로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 양동민과 쏘왓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넘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SNS로 메시지를 많이 받았는데 제 또래의 암 환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들에게 작은 용기로 큰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 영상 제작을 시작했어요.” 쏘왓 또한 “제가 다른 환우분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힘을 냈기에, 저 또한 투병기를 있는 그대로 쓰면서 병에 걸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우린 타인의 잘나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보는 것에 질려버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더 이상 명품 하울은 보고 싶지 않고, 뽀얀 조명도 싫다. 아름다운 환상은 충분하다.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고, 하고 싶다. 부러움이 아니라 공감을 유발하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진실을 거의 듣지 못한다. 친구와 대화에서 오는 공허함, 직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소통에 지쳤는데, 또 어떤 환상에 젖는 것은 나를 어디에도 쉬지 못하게 한다.

    요즘 유튜브에서 새롭게 인기를 얻는 채널도 그런 맥락에 있다. 강 과장이 15평 투 룸 1억4,000만원 전세에서 4평 4,000만원 전세로 옮기는 과정은, 조회 수 153만 회를 넘겼다. 한때 친구가 방에 놀러 와 ‘우아, 좋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어 10년간 돈을 모으고 모아 평수를 넓히려 노력했으나 비싼 집값에 좌절한 경험, 이제 그런 허세에서 벗어나 이사한 이야기는 부동산 제국에 사는 약자들의 호응을 받았을 거다.

    강 과장은 그 뒤로도 ‘30대 중반 미혼남 한 달 영수증 살펴보기’ ‘퇴사 이야기’ 등을 올리는데, ‘이렇게 궁상 맞아도 되냐’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솔직하다. 내게 그의 삶은 미니멀 라이프고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진짜다. 강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유튜브 속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그냥 보통 사람이 아등바등 나름 잘살아보겠다는 것에 공감해주는 정도 같아요. 앞으로도 거창하게 나의 가치관을 알린다기보다 한국 어딘가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누군가는 제 영상을 보며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하며 두렵지 않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좀더 다채로운 주제의 영상을 만들어 다양성에 거부감이 줄어드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제 어느 연예인이 유튜브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의미 없을 만큼 많은 이가 참여한다. 그들의 요즘 트렌드는 음 소거로 음식을 만들고 개를 산책시키는 신세경의 채널처럼, 그들의 일상을 보이는 데 집중한다. 이전에는 미니 방송처럼 주제를 정해 체험하고 리뷰했는데 철 지난 유행이 됐다. 파리와 밀라노 패션 위크를 순회하는 자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상렬은 술집에서 후배들과 술을 마신다. 내용은 정말 술을 마시는거고, 술기운에 흘러나오는 대화를 담으려 한다. 그러나 Mnet 방송사가 함께해서인지 방송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제는 진실한 대화, 진짜 일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깨달은 제작진은 명민하다. 하지만 지상렬은 진짜 술에 취할 수 있을까. 함께 술을 마신 힙합 하는 동생들은 진짜 한잔하려고 그 자리에 있었을까.

    물론 전문가들의 콘텐츠 영역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진짜 이야기를 전하는 채널을 볼 거다. 재미있게도, SNS와 유튜브는 우리를 한참 허탈하게 만들었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진짜 대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옆에서 살갗을 부딪치는 생명체와 대화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나는 타인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으며, 전해지진 않겠지만 마음의 대화를 하고 싶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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