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우리의 피아노 맨

2019.07.05

by VOGUE

    우리의 피아노 맨

    태런 에저튼이 영화〈로켓맨〉에서 엘튼 존이 되었다. 그는 엘튼 존을 처음 만날 때 “여왕님을 알현하는 것같았다”고 말했다.

    태런 에저튼(Taron Egerton)은 소호의 화이트 시티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는 내내 모자를 벗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아봐서 그런 게 아니다. 사실, 이 프라이빗 멤버십 호텔의 웨스트 런던 체인은 교황이 바에서 술을 마신다고 해도 못 본 체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신경 쓸 필요 없다. 29세의 배우 에저튼은 그저 ‘형편없는’ 헤어스타일로 힘들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곧 출시될 전기 영화 <로켓맨>에서 엘튼 존을 연기한 그는 머리숱을 솎아내고 헤어라인을 위로 올려 이마를 훤히 드러내야 했다.

    자신의 멋진 외모와 동떨어진 모습으로 연기해야 했던 배우라면 공감할 것이다. 2015년 에저튼은 액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전형적인 매력이 넘치는 할리우드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먼저 그의 턱선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미지를 얼른 떨쳐내고 싶었다. “볼품없는 역할을 맡는 것이 더 재미있죠.” 그가 설명했다. 그랬기에 <독수리 에디(Eddie the Eagle)>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 영화는 턱관절이 부정교합인 주걱턱을 가진 불운한 영국 스키 점프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2016년에 개봉한 언더도그 코미디이다. 그리고 이제 ‘외모를 제외한 다방면에서 유명한 엘튼 존’ 역을 맡아 연기(게다가 노래까지)했다. 엘튼 존의 외모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반박했다. “엘튼 존에게는 엄청난 성적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순간 놓치고 말았다. “죄송해요. 이 기사를 읽는 엘튼 존의 모습을 상상하는 바람에.” (그는 유명 가수인 엘튼 존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마치 ‘여왕님을 뵈러 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에저튼은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웨일스로 이사했다. 한동안 그는 ‘흘란바이르푸흘귄기흘고게러훠른드로부흘흘란더실리오고고고흐(Llanfairpwllgwyngyllgogery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라는 마을에 살았다. 그 발음이 너무 웃긴 나머지, 본의 아니게 그가 토크쇼에서 보여주는 개인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매우 이질적이니까요.” 그가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웨일스 세레디존 해안의 시골 마을 애버리스트위스였고, 그곳에서 인격 형성기를 보냈다. 런던에서 연기를 배우려고 (런던 로열연극아카데미 오디션에서 엘튼 존의 ‘유어 송(Your Song)’을 불렀다). 웨일스를 떠나 있을 때, 그곳을 몹시 그리워했다. 실제로 그는 <킹스맨> 촬영을 마친 후 그곳으로 돌아갔다. 블록버스터급 유명세를 누리다가 엄마와 새아빠가 사는 집에서 한동안 지냈다. 극과 극을 달리는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런던에 집을 구할 만큼 충분한 돈이 없었어요.” 그가 말했다.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몹시 불안하던 시절이었죠.” 지금도 그의 웨스트 런던 아파트 벽면은 고향 출신 예술가의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에저튼은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치명적인 수준이 아니라 신중해질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만났을 때 그는 <로켓맨>의 최종 편집본을 아직 보지 않은 상태였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지닌 굉장히 불안한 면이 편집 과정에서 없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술과 마약에 중독된 한 남성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런 것을 그저 보기 좋게 연기할 수는 없죠. 너무 무결점의 모습만 보여주어서도 안 되죠.” 그가 말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라미 말렉이 성공을 거두었듯이 에저튼도 그런 식으로 중요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존재감 있게 보여주면 된다. “제 생각에 저는 그런 신예는 아닌 것 같아요.”

    <로켓맨> 감독 덱스터 플레처는 에저튼이 영화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에저튼은 정말 놀라운 배우예요.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하며,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면서도 강인한 배우죠. 함께 일해서 아주 좋았어요.” 감독은 전화 통화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플레처 감독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겠다는 에저튼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원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90% 정도 완성했지만 전격 해고되면서, 그 대신 플레처 감독이 영화를 마무리했다.) “그것은 현명한 선택인 듯해요.” 그가 에저튼의 선택에 동의를 표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에저튼이 읽고 있는 책(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The Secret History)>), 그의 친구들(그는 <로켓맨>에 함께 출연하는 리처드 매든을 2018년 사귄 ‘베프’라고 표현했다),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 값비싼 트러커 스타일 옷을 입고 나온 에저튼은 자신이 ‘패션 리더’는 아니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옷이 엄청 많다고 했다. 그는 다소 수집광 같은 면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손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의 “소유물은 희열을 주는 물건이거나 버려야 할 물건이다”라는 철학을 배워보는 건 어떨지 제안했다. 에저튼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그는 여자 친구이자 조감독인 에밀리 토머스와 결별했다. 둘 다 일에 열성적이라 서로에게 소홀해지면서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말 주의하지 않으면,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더라고요.” 그들은 최근 재결합했고, 이로 인해 자신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결별한 동안 그는 애버리스트위스 집 침대 옆 협탁에서 토머스가 예전에 보낸 카드를 보았다. 가슴이 아린 나머지 눈물이 쏟아졌다. “뭔가가 당신을 슬프게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거죠!” 에저튼은 기본을 잘 이해하는 듯했다. ‘좋은 것은 좋게, 볼품없는 것은 볼품없이 그대로 두고, 모두를 마음껏 느끼는 편이 낫다’는 것을 말이다.

      포토그래퍼
      Anton Corbijn
      패션 에디터
      Molly Haylor
      글쓴이
      Harriet Fitch Little
      헤어
      Joe Mills
      메이크업
      Nicola Brit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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