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반항
폴 스미스가 DDP에 자신의 세상을 옮겨왔다. 50여 년 디자인 철학을 망라한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를 위해 서울에 온 젠틀맨.
“어쩌면 영국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공격적 방식 대신 시각적 방식을 선택해왔기 때문인 듯하군요.” 4월 초 DDP의 어느 회의실에서 만난 폴 스미스(Paul Smith)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짙은 보라색 안감이 숨겨진 옅은 네이비 수트 차림의 영국 신사에게 “왜 20세기 중반 이후 영국이 패션은 물론 디자인과 예술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후였다. “우리 역시 반항적이었죠. 하지만 프랑스 친구들처럼 무조건 차에 불을 지르진 않았어요. 대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커다란 플랫폼 샌들을 신고, 머리를 괴상하게 자르곤 했죠. 모드족과 글램 록, 뉴 로맨틱 등을 생각해보세요. ‘부드러운 반항’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태도가 더 많은 여유를 지니게 한다고 할 수 있죠.”
결코 무겁지 않지만 정중하고, 경쾌하면서도 깊이가 있으며, 자유롭지만 거칠지 않은 패션. 폴 스미스의 작업은 다분히 영국적 매력을 지닌다. 그가 50여 년간 가꾼 세상을 직접 감상할 기회가 왔다.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다. 2013년 런던 뮤지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전시는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6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을 만큼 인기였다(그의 런던 작업실과 방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 특히 인기).
“누가 와도 흥미로운 전시로 느끼길 원하지만, 특히 패션 학도나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디자이너라면 더 흥미로울 듯합니다.” 그의 사무실을 가득 채운 자료와 소재, 컬러 차트 등을 보면, 그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고 작업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직접 모은 사진과 회화 등 작품으로 가득한 ‘아트 월’ 역시 흥미롭다. “어린 관객들이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저 아저씨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지!’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시작점은 전시를 여는 가로세로 3m²의 작은 공간이다. 1970년 10월 9일 영국 소도시 노팅엄에 처음 문을 열었던 매장을 재현했다. “제가 시작한 곳을 둘러보면서 누구나 작지만 힘차게 도전할 수 있다고 느끼기 바랍니다.” 디자이너는 어느새 추억에 빠진 듯 출발점에 섰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요일과 토요일만 문을 열었던 작은 매장에선 디자이너와 당시 여자 친구였던 폴린이 직접 손으로 만든 남성복을 판매했다. 화려한 색깔의 아이템은 금세 젊은이들에게 인기였다. “누구도 샛노란 트위드 재킷을 만들지 않았죠. 핑크 트위드 재킷을 구하려면 저희에게 와야 했어요. 제가 흔히 말하는 ‘느낌표 색깔’을 잔뜩 사용했습니다.” 매장을 처음 연 지 6년 만에 파리로 향했다. ‘폴 스미스’라는 라벨을 단 컬렉션을 들고 친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연 것이다. “이제 73개국에서 제 옷을 살 수 있어요. 엄청나지 않나요?”
50여 년(“너무 길어요. 5년이라고 하고 싶군요!”)은 지루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억지로 내린 결정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여성복도 주위의 요구 때문이었고, 다양한 나라의 고객을 만난 것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수많은 제안이 있었지만 브랜드를 매각하지 않은 것도 그만의 개성을 지키는 큰 힘이었다. “이 일을 좋아하는 건 즉흥적이고, 독립적이기 때문이에요. 주주들의 노예는 바라진 않습니다.” 오랫동안 브랜드가 사랑받은 또 다른 이유는 ‘아주 잘 만든 옷’이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사이클 선수였다는 사실은 유명하죠. 정식 패션 학교를 다니는 대신 야간 학교에서 재단을 배웠어요. 선생님은 군복을 재단하던 분이었어요. 입은 사람이 돋보이는 편안한 옷. 거기서부터 제 옷은 비롯되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완성도가 기본이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아내의 역할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폴 스미스도 없겠죠.” 스물한 살에 가정교사로 처음 만난 여섯 살 연상의 폴린(“사이클 선수가 되기 위해 열다섯에 학교를 그만두었기에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했어요”)은 지금도 그 옆을 지키고 있다. 영국 왕립 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한, 그녀야말로 스미스에게 패션을 전수한 사람이다. “그녀는 꾸뛰르 교육을 받았어요. 그렇기에 어떻게 옷을 만드는지, 어떤 옷이 훌륭한지 모두 그녀에게 배웠어요. 우리 집 부엌에서 함께 소매를 바느질하면서 상점을 준비했죠.”
수트와 코트 등 영국적 정중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트라이프 제국을 건설한 디자이너에게 애슬레저의 시대는 어떤 의미일까? “모두들 더 이상 수트를 입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사회 변화의 맥락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들 충동적 삶을 살고, 정중한 언어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죠. 어느 때보다 이동과 여행도 많죠. 한결 더 편안해졌으니 옷차림도 바뀔 수밖에요.” 하지만 정작 트레이닝 팬츠에 스니커즈 차림의 폴 스미스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저 역시 더욱 캐주얼한 옷을 많이 선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수트를 비롯한 테일러링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잘 만든 수트는 무엇보다 편안하니까요.”
오랫동안 패션계의 변화를 지켜본 거장조차 지금의 패션계는 정의 내리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몇몇 소비자들에게 자신감을 찾기 어려워요. 스스로 패셔너블하고, 부자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 욕망만 가득하죠. 로고가 유행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그는 과거 패션 디자인의 본질은 ‘익스클루시비티’라고 되짚었다. 타인이 갖지 못한 옷을 입으면서 특별함을 느끼는 일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내고 왜 전 세계 50개 도시에서 똑같이 파는 옷을 사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각 도시마다 다른 컨셉의 매장에 조금씩 다른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변하는 세상에 대해 불평만 하고 주저앉는 건 이 유쾌한 영국 신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매장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인스타그램에 많이 오르는 건물이란 걸 아시나요? 그저 핑크색으로 건물을 칠했을 뿐인데!” 그는 꾸준히 변하는 세상과 함께 페달을 밟는다. 한국에 오기 전엔 칠레에서 새로운 건축가들을 만났다. 서울의 변화도 잊지 않고 관찰한다. 15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거듭 말했다. 이번 방문에선 강북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익선동도 흥미로워요. 옛날 건물을 새롭게 바꾸는 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나 봐요. 익선동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봤나요? 그토록 많은 사람이 즐긴다면, 나쁜 변화라고 하긴 어렵겠죠.”
그리고 특별히 눈여겨 관찰한 건 한국의 창의성. “꿈틀거리는 변화가 직접 느껴집니다. 런던 패션 스쿨은 물론 고향 노팅엄에도 한국인 유학생이 많아요. 그런 열정이 한국을 더 새롭게 변화시키겠죠.” 그리고 그 변화에 자신의 전시가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첫 번째 매장을 지나면서 그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군요. 작은 도토리가 거대한 떡갈나무가 될 수 있으니까요.”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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