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영자

2023.02.26

영자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이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 (장자의 ‘호접몽’ 中) 작가 황영자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황영자가 되었다.

‘펭귄’, 2015.
선글라스는 프로젝트 프로덕트
× 스튜디오 쿤식(Projekt
Produkt × Studio Kunsik).

1941년 목포에서 태어난 황영자는 내가 아는 가장 주체적 여성 중 한 명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열네 번의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을 치러온 작가이기도 하다. 이혼한 여자 배우는 드라마에 나올 수 없던 시절, 그의 작품은 ‘무서운 여자, 기 센 여자’로 치부되는 누명을 썼다. 황영자의 주체성과 고독의 표현은 시대의 사냥감이었다. 지금 미술계는 사죄를 뛰어넘을 만큼 황영자를 조명하고 있다. 여전히 부술 벽은 많지만, 작품의 가치뿐 아니라 그의 주체적 삶에 대한 경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몽상가’, 2011.

황영자는 7월 4일부터 약 3개월간,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60여 점을 전시한다. 개막을 앞두고 작가 황영자, 비주얼 크리에이터 서영희와 <보그>가 만났다. 황영자를 어떻게 지면에 담을지 고민하다, 작품의 주인공이 자신이란 것에 주목했다. 작품 속 황영자를 꺼내 현실로 재현하기로 했다. 옷은 모두 종이로 제작했다. 서영희는 이렇게 설명한다. “옷을 옷감 같은 물성으로 만들어 촬영하면 의미가 없어요. 기존 재료를 뛰어넘기로 했죠. 그렇게 화가에게 특별한 소재인 종이를 선택했죠.” 황영자는 그림을 본떴지만 별개로 주체성을 획득한 옷을 입고 수 시간 동안 촬영했다. 또 직접 편지를 적어 작품의 기원을 설명한다.

‘몽상가’, 2010.

나는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산다. 그림 속이 내 집이다. 생각 속에서 그림이 나오고 생각을 그리다 다음 그림으로 옮겨지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렇게 작품이 태어난다. 내 마음과 머릿속 지나온 추억이 내 그림의 자궁이다.

어린 시절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손에 자랐다. 바로 내 밑 세 살, 한살, 두 자식을 연이어 잃고 어머니는 반 미친 사람처럼 깊은 우울 속에 살았다. 해만 지면 홀로 물가에 앉아 한없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물에 빠져 죽을까봐 네다섯 살짜리인 나는 잠도 못 자고 어머니를 지키는 그런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나 역시 일찌감치 마음이 고장 나 있었다. 내 부모는 자기들의 깊은 슬픔 때문에 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깊은 우울속에서 맨드라미꽃 만지며 그 부드러운 촉감에 위로를 받고 울던 딸이 어디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하얀 쌀밥에 ‘긴꼬망’ 간장에 콩고물 넣어서 비벼주고 예쁜 ‘간다꾸(원피스)’에 인형만 주면 잘 크리라 생각했을까? 정말 나는 인형에 의지해서 큰 것 같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정신과 치료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고독과 우울이 내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평생 내 마음은 화가 많고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바퀴처럼 기복이 심하다.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항상 뒤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다.

‘내 속에 여럿이 산다’, 2006-2010.

내 시린 가슴은 항상 뻥 뚫려 있고 끝을 향해 달려간다. 지나고 보니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잡아준 것이 그림이다.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고자 하는 나를 어떻게 무엇으로 잡아맬 수 있겠는가. 허수아비 텅 빈 가슴을 그림으로 채워가며 살았다. 본능에 생각을 싣고 감각에 정신을 담아 수많은 세월을 삭히고 닦은 업연으로 인한 선대 인연이 선뜻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걸까?

예술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른 학문은 어떤 교육을 통해서 깨우치며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아차린다면 예술가는 다르다. 배워서가 아니고 누가 뭘 전해준 지식이 아니라 그냥 안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본래 하나라는 걸 몸속 깊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망설이며 살았다. 내 칼날 같은 감각이 무뎌지고 평범해질까 봐 담금질하며 고독하게 살았다. 이제 나이 80이 되니 자신의 노을을 본 것 같고, 이 육신의 덧없음을 몸소 무상의 교훈으로 삼아 상처 많은 마음을 따르지 않으며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펭귄’, 2015. 1980년대 어느 해인가 동생들과 유럽 여행을 한 적 있다. 베드로 성당에 가려고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얼마나 넓은지, 반대편 저 먼 성당 정문 앞에 웬 펭귄 떼가 서 있어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여름에 웬 펭귄들이 저기 서 있지” 하니까 내 동생이 “언니, 무슨 펭귄이야, 신부님들이야” 했다. 그때 왜 내 눈에는 펭귄으로 보였을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필연 같은 우연은 신성한 존재가 보내온 축복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이 태어나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착시를 일으킨 것 같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높은 차원의 문이 가끔씩 열리는데 그때 나의 무의식이 온 우주와 연결되어 머릿속에 요상한 장면이 각인된 게 아닐까? 별생각을 다 해보았다. 한참 후에 나의 지나간 첫사랑·짝사랑·풋사랑을 펭귄으로 담아 추억의 화면으로 그렸다.

‘몽상가’, 2010. 어느 날, 이런 머리 모양을 한 옛 배우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어머니도 핑거 웨이브를 하곤 했다. 그래서 이런 머리를 보면 향수에 젖곤 한다. 그림 속 손은 계속 나의 머리를 그려나가는 중이다. 그레타 가르보, 나의 어머니, 향수 속의 여인이 했던 그 머리를.

‘몽상가’, 2011. 나는 주제를 정하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캔버스 앞에 앉아 좋아하는 색으로 나를 그린다. 무의식 속에 아바타, 추억 속의 아바타, 기쁨 속의 아바타, 슬픔 속의 아바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아바타를 위하여 끊임없이 나를 그릴 것이다. 이 작품에는 좋아하는 예술가인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가 있다. 모르는 여성도 그려 넣었다.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있으면 그 사랑에 숨 막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속에 여럿이 산다’, 2006-2010. 이 그림의 고갱이는 푸른 손에 들려 있는 마스크다. 그 여자의 정열과 내 속에 핏빛 나는 고통을 표현하기로 했다. 원피스는 벌겋게 피어나고 나는 가끔 그림 그릴 때 손이 두 개가 아니고 더 있으면 할 때가 있다. 이것을 그림에 옮겼다. 그런데도 그림은 내 마음에 차지를 않았다. 그 여자는 고통이 없었고, 이렇게 이 여자를 내 화실 한 귀퉁이에서 2년을 오고 가며 바라만 보았다. 나는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작업실에선 예수님보다 부처가 내 마음에 위로가 될 때가 많다. 참으로 많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여자 속에 부처님을 그려 넣었더니 그림이 꽉 차고 나에게 한없는 기쁨을 주었다. 너는 퀸이다.

‘야누스’, 2002. 정말 한 몸이 되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사랑하면 하나가 됨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종종 불가사의한 일을 그림으로 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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