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돔 페리뇽의 우주

2019.06.12

by VOGUE

    돔 페리뇽의 우주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2002 플레니튜드2’가 공개됐다. 가슴속에 하나둘 별을 세며 돔 페리뇽의 우주를 유영했다.

    돔 페리뇽 샴페인병에 적힌 연도를 볼 때면 그해 날씨는 어땠을까 기억을 더듬어보곤 한다. 샴페인이 포도가 부린 마법같은 변신의 결과라고 한다면, 샴페인은 햇빛, 영양분을 전한 토양, 대지를 적셨을 빗방울, 열매를 간질였을 바람에까지 빚을 지고 있다. 자연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샴페인 맛에 결을 더한다. 자연은 인간이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대부분의 샴페인 브랜드는 여러해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함으로써 일정한 맛을 만들어낸다. 올해 부족한 단맛을 작년에 충분히 햇살을 머금은 포도로부터 보충하는 식이다. 하지만 돔 페리뇽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의 힘을 믿는다. 자연이 그해에 인간에게 허락한 포도로만 샴페인을 빚기에 모두 빈티지 와인이다(아예 샴페인을 생산하지 못하는 해가 생긴다는 얘기다). 잠재력을 믿고 끌어올릴 자신이 있기에 기꺼이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

    돔 페리뇽이 시간에 관여하는 방식은 ‘숙성’이다. 효모가 와인에 변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최소 8년 이상 어두운 셀러에 보관하며 정성껏 돌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깊고, 더 넓고, 더 강렬한 맛을 끌어내기 위해 장기 숙성에 도전한다. 숙성의 결과를 ‘절정’으로 표현하는 건 돔 페리뇽만의 언어다. 약 15년이지나 최고조의 맛에 도달했을 때 돔 페리뇽은 비로소 ‘Plénitude 2(두 번째 절정기)’라는 훈장을 부여한다. 생산 연도가 적힌 돔 페리뇽 한 병은 자연의 기록과 동일한 무게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년간 정성스러운 작업을 끝내고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 ‘돔 페리뇽 빈티지 2002 플레니튜드2(Dom Pérignon Vintage 2002 Plénitude 2)’를 만나기 위해 전 세계 기자들이 방문한 곳은 하와이 빅아일랜드다. 삶에서 가장 화려하고 패서너블한 순간을 함께 해온 금빛 액체와 검은 화산섬 사이 무슨 연결 고리가 있는지 되묻지 않았다. 화산활동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섬이 돔 페리뇽의 생명력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구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곳에가면 두 번째 절정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의 비밀도 풀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빅아일랜드에는 마우나케아 천문대(Mauna Kea Observatory)가 있다. 해발 4,180m에 위치, 발아래로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피에르 페리뇽이 “저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어요!(I’m Drinking Stars!)”라고 외친 이래, 돔 페리뇽을 마실 때면 별이 떠올랐고 별을 바라볼 때면 돔 페리뇽이 생각났다. 별에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는 노력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었다.

    빅아일랜드는 다채로웠다. 30분만 달려도 화산 지대가 평원으로, 사막이 열대우림으로 바뀌었다. 비바람이 불다가도 금방 햇살이 비쳤고 영하 10도와 영상 30도가 공존했다. 돔 페리뇽의 우주 탐험은 빅아일랜드의 등고선을 따라 이루어졌다. 첫날 탑승한 헬리콥터는 섬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빅아일랜드는 용암이 분출할 때마다 커지는, 실로 살아 있는 섬이다. 해변의 깎아지른 절벽과 산골짜기 폭포는 섬이 지닌 생명력의 흔적이다. 550여 년 전 용암이 지나간 길인 라바 튜브는 플레니튜드2에 대한 또 다른 은유였다. 복사뼈까지 머리를 기른 하와이 원주민과 함께 등장한 벵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은 동굴 속에서 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 “끊임없이 계속 변화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는 돔 페리뇽에 영감을 선사합니다. 화산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우리 별의 기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활기찬 섬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변화는 돔 페리뇽 빈티지가 새롭게 부여받은 두 번째 삶과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지구와 하늘이 연결된 지점으로부터 나오는 창조력을 함께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행사는 벵상 샤프롱이 셰프드 꺄브로서 나선 첫 공식 석상이기도 했다. 28년 동안 창의적으로 돔 페리뇽을 이끌어온 리샤 지오프로이는 올해 첫날 자신이 쌓아온 창조의 유산을 뱅상 샤프롱에게 승계했다. 13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춘 후였다. 대담한 직관력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품은 새로운 수장의 탄생이었다. 물론 그의 와인에 대한 열정은 진지하고 진실하다.

    그날 저녁 마우나케아 비치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2002 플레니튜드2’가 공개됐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에 눈높이 길이만 한 막대가 세워졌고 돔 페리뇽 글라스가 놓였다. 이 순간을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달려온 기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돔 페리뇽뿐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갔고 곧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힘찬 버블과 함께 입안 가득 풍성한 아로마가 차오르며 깊은 산미가 느껴졌다. 17년이라는 시간은 마치 나이테처럼 샴페인에 쌓여 다채로운 풍미를 발산했다. 벵상은 시 한 편을 읊듯 말했다. “벨벳과 같은 촉감이 도드라지면서 브리오슈와 토스트 향의 정취가 느껴지네요. 2002년에 수확한 포도가 가진 천혜의 풍성함이 추가 숙성 기간 동안 변신을 거치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와인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생기로 빈티지 2002에서는 맛보지 못한 새로운 면모가 드러났습니다. 연금술사가 금속을 금으로 승화시키듯 버블과 함께 천상의 와인으로 변화했습니다.”

    벵상이 꼽은 빈티지와 플레니튜드2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에너지다. “숙성이란 인생과도 같습니다. 장기 숙성을 통해서 점차 활기가 커집니다. 효모의 에너지가 와인으로 옮겨가면서 생명의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마치 배 속에 있는 아기처럼요. 숙성을 통해 더 깊어 빈티지 2002는 에이징을 통해서 조금씩 쇠퇴하고, 입안에서는 조금씩 드라이해집니다. 와인이 가진 복합성이 서서히 좁아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반면 플레니튜드2 2002는 에너지의 팽창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입니다. 추가 숙성을 통해 반짝이는 광채를 머금은 샴페인으로 거듭났습니다.”

    플레니튜드2 2000과 플레니튜드2 2002의 차이를 낳은 건 그해 날씨다. 2000년은 산도와 당도가 균형을 이룬 포도가 수확된 해였다. 하모니가 돋보이는 샴페인이 탄생할 만한 조건이었다는 얘기다. 벵상은 2000년 빈티지는 양날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 질감 등이 서로 경쟁하며 융합을 이루는 맛.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 같았다고 말이다. 추가 숙성한 플레니튜드2 2000은 한마디로 ‘돔 페리뇽 다운 샴페인’이었다. 모든 요소가 융합되며 응집성이 드러났고 연계성이 도드라졌다. 한편 2002년은 특별한 해였다. 샹파뉴의 겨울은 온화했고 따뜻하고 건조한 봄 날씨가 이어졌다. 초여름은 맑았지만 8월이 되자 비가 자주 내렸고 흐린 날이 계속됐다. 근심이 깊어질 무렵 갑작스럽게 맑고 따뜻한 9월이 찾아왔다. 간간이 폭풍우가 찾아왔지만 극과 극을 오가는 날씨로 샤르도네는 농밀하게 무르익었고 최근 20년 사이 가장 당도가 높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다. 날씨라는 변수는 이렇듯 예상치 못한 황홀함을 안긴다. 농밀함이 가득 담긴 샤르도네는 정밀하고 강렬하며 생기가 넘치는 와인으로 탄생했다. 다음 날 하이시스(HISEAS)에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여섯 개 제품을 동시에 맛보며 그 차이를 실감했다. 지구에서 화성과 가장 비슷한 토양으로 화성 모의 기지 훈련 시설이 자리한 이 일대는 바람에서부터 태초의 맛이 났다.

    동안 돔 페리뇽을 테이스팅하며 곁들인 음식은 하와이 전통 식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셰프 마르코는 현지 셰프와 대화를 통해 하와이 식문화를 존중하는 페어링을 시도했다. 하와이 전통 음식 조리법을 고수하면서 음식의 단맛과 짠맛을 조절해 밸런스를 맞췄다. 타로잎으로 감싼 칼루아 피그 바비큐(흙 속에서 뜨거운 증기로 익히는 하와이 전통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고, 코나 커피와 민트를 활용해 구운 양고기 요리, 하와이 문 피시 요리, 열대 과일과 블랙 라바 바닷소금을 곁들인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매치하기도 했다. 화강암과 같은 광석을 그 자체로 접시로 사용한 스타일링도 선보였다. 음식 페어링에 관해 벵상이 권하는 원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시거나, 맵거나, 쓰거나, 단 음식은 피한다. 돔 페리뇽은 복잡성이 두드러지고 하모니가 좋은 와인이다. 단단한 맛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좌우되지 않고 동등하게 조화를 이루기에 음식과 페어링하기가 쉽다.

    모든 여정 끝에 별이 있었다. 마지막 디너의 마지막 코스 이름은 ‘Drinking Stars’였다. 우리는 디너 테이블에서 일어나 해변으로 향했다. 붉은 불빛으로 가득한 화산 지대를 걸어가는 무리는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인류처럼 보였다. 바닷가에 다다라 고개를 들었을 때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만났다. 430년 전 우주를 출발해 우리 눈앞에 도착한 별. 플레니튜드2 2002를 들고 비치 체어에 누워 한 모금을 넘겼다. 온몸 가득 반짝임이 차올랐다. 별도, 플레니튜드2 2002도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존재는 없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DOM PÉRI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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