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스타일링법
기억하시나요? 뉴욕 사교계를 충격에 빠뜨린 가짜 독일인 상속녀 안나 소로킨 말입니다. 억만장자 상속녀 행세를 하면서 뉴욕의 고급 호텔에서 무상으로 숙식하고, 명품을 휘감고 다니며 거대한 아트 센터를 만들겠다고 금융회사에서 2억여 원을 대출받기도 했죠. 그녀가 재판을 받는 동안 남다른 법정 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2급 중 절도죄와 절도 미수 등 총 세 건의 중범죄 및 경범죄와 1건의 중범죄 미수 혐의를 받고 뉴욕의 교정 복합 시설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에 갇힌 범인이 죄수복이 아닌 일상복을 입는 것은 흔치 않은 일. 게다가 단정한 수트 차림이 아닌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미니 드레스와 리본, 러플 장식이 너울거리니 말 다 했죠. 이 범상치 않은 옷차림 뒤에 셀러브리티 스타일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시작은 검은색 디자이너 드레스와 초커, 커다란 프레임의 안경이었습니다. 소매 없는 브이넥 시프트 드레스는 마이클 코어스, 오버사이즈 안경은 셀린이었죠. 검은색 오버사이즈 안경은 이날 이후로 그녀의 시그니처가 됐습니다. 변호사가 그녀에게 옷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충고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안나는 휴정 후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드레스 위에 단정한 H&M 베이지색 스웨터를 입고 다시 나타났죠.
그다음 재판에서 그녀가 입은 것은 검은색 시폰 소재 생로랑 보우 블라우스와 빅토리아 베컴 팬츠. 감옥에 오기 전에 입던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한번은 오버사이즈의 화이트 셔츠에 검은색 팬츠를 입고 법정에 들어왔는데요. 그날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이미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입장을 거부하는 등 여러 차례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던 터라, 판사는 “오늘이 옷 가지고 장난하는 마지막 날입니다”라고 경고를 날렸습니다.
이후로 그녀의 룩은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단추가 터질 것 같은 레트로풍 뱀피 무늬 셔츠 드레스와 자라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미스터리한 여인의 인상을 연출했고 그다음엔 순진무구해 보이려는 의도가 명백한 흰색 드레스가 뒤를 이었죠. 이런 드레스는 전부 무릎 위 허벅지를 겨우 가리는 길이의 귀여운 베이비 돌 드레스였는데요. 그중에는 허리 라인이 낮은 드롭 웨이스트 디자인에 러플 스커트가 달린 레이스 드레스도 있었습니다. 법정보다는 성찬식에 어울릴 옷이죠.
안나 소로킨이 죄수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것에 대해 안나 소로킨의 변호사 토드 스포덱은 죄수복이 유죄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해서 공판 일주일 전에 황급히 옷을 구했다고 밝혔습니다. H&M에서 200달러어치 옷을 사서 넣어주고, 신발도 뾰족한 스틸레토 힐을 신길 계획이었죠. 하지만 교정교화부에서 너무 위험하다고 금지해서 결국 재판 내내 흰색 푸마 스니커즈와 검은색 발레 플랫 슈즈를 신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를 분노케 한 의상 대부분은 변호사가 넣어준 옷이 아닙니다. 그녀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기 전, 그녀가 자신의 집처럼 묵었던 호텔 11 하워드에서 컨시어지로 일했던 네프 데이비스가 그녀에게 소개해준 셀러브리티 스타일리스트의 작품. 처음에는 비밀에 싸여 있었지만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면서 스타일리스트의 정체가 드러났죠. 여러 유명 패션지에서도 그녀를 인터뷰했는데요. 전직 패션 매거진 에디터이자 코트니 러브, 티페인과도 일한 적이 있는 아나스타샤 워커입니다.
워커는 소로킨을 직접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무엇을 입고 싶은지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구체적인 룩을 볼 수는 없었지만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소로킨이 원하는 스타일에 대해 이런저런 예를 들면서 상의했죠. 워커는 그녀가 많은 매체에 노출될 거라는 점을 유의해서 유행 타지 않는 아이템을 골랐다고 밝혔는데요. 심지어 소로킨의 사기 행각이 넷플릭스나 HBO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까지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워후!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스타그램에는 소로킨의 법정 룩을 기록하는 계정 @annadelveycourtlooks까지 생겼습니다. 이 계정을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아나스타샤 워커일 거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멘탈 갑 태도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기도 했죠. 결국 그녀는 4년에서 12년 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물론 2억원이 넘는 배상금과 3,000만원이 넘는 벌금도 물어야 하죠. 희대의 사기꾼, 그녀에게 속은 뉴욕 사교계. 그리고 그녀는 끝까지 옷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했습니다.
-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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