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책하는 침략자

2019.06.28

산책하는 침략자

〈산책하는 침략자〉의 주인공처럼 비엔나는 끊임없이 산책 욕구를 일으킨다.

비엔나의 절반은 숲, 초원, 공원, 정원이다(면적은 서울의 3분의 2 정도). 쇤부른 궁전(Schönbrunn Palace)의 정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이 자리한 비엔나 시민공원(Stadtpark), 비엔나 숲(Vienna Woods) 지대와 포도밭, 다뉴브강의 습지 등 만약 당신이 비엔나를 걷다 쉬고 싶다면 지척에는 분명 나무와 벤치가 있다. 특히 주말에는 프라터 공원(Prater Park)으로 간단한 먹거리를 들고 소풍을 가도 좋다.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에서 3km쯤 걸으면 600만㎡의 잔디 공원, 수변 공원, 숲이 펼쳐진다. 시민들이 녹음에서 조깅, 자전거 타기, 독서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897년산 대관람차를 비롯해 놀이 기구도 있다. 대관람차를 타면 비엔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뉴브강 산책도 빼놓을 수 없다. 목가적 분위기의 올드 다뉴브(The Old Danube)는 수상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 정원, 잔디밭이 강을 둘러싼다. 패들 보트나 나룻배, 전동 보트를 대여해 유람해도 좋다. 배가 다니는 구역은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수심이 깊지 않다. 여름이면 강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하는 사람으로 북적댄다.


내가 산책하면서 가장 좋았던 공간은 쿤스트 하우스(Kunst Haus)다. 자연을 사랑했던 건축가이자 화가, 환경 운동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박물관이다. 실내에서 나무가 자라도록 설계하고, 획일적인 것을 혐오해 바닥도 언덕처럼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그의 자연주의 철학을 볼 수 있다. 내부에 녹음이 어우러진 카페도 아름답다. 쿤스트 하우스의 옥상에선 양봉을 한다. 이곳뿐 아니라 국립 오페라 극장(Vienna State Opera),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등의 옥상에서도 양봉을 한다. 환경을 위해 양봉을 시작한 젤렌카 토마스(Zelenka Thomas)는 이렇게 얘기한다. “비엔나에는 크고 작은 양봉장 2,000여 곳이 있어요. 우린 녹음을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할 용의가 있죠.”


비엔나를 산책하며 중세부터 19세기까지 역사적 건축물을 자연스레 거치게 된다. 비엔나 자체가 역사 지구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또 200여 개 박물관과 다수의 갤러리가 있어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피터르 브뢰헬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의 걸작을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 뮤제움콰르티어(MuseumsQuartier)에 자리한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관람할 수 있다. 뮤제움콰르티어는 문화 단지다. 총 8개 층으로 문화 단지로는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단지에는 건축 박물관(Architekturzentrum Wien), 현대미술 전시회장인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각종 페스티벌과 콘서트가 열리는 행사장,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다. 비엔나에는 네 곳의 오페라 하우스와 50여 개 극장이 있다. 그중 창립 150주년을 맞은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은 저렴한 스탠딩석부터 로열석까지 거의 매진이므로 예약이 필수다. 공연을 보지 못하더라도 백스테이지 투어는 할 만하다. 40여 분간 로비부터 무대 뒤편의 공연 준비 과정까지 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신청자 수백 명이 팀을 짜서 이동하니 붐비긴 한다. 이곳은 매년 초, 1,709석의 좌석을 모두 들어내고 비엔나 오페른발(Wiener Opernball)을 연다. 전 세계 예술가, 정치인, 셀러브리티,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왈츠를 즐기는 무도회다. 왈츠와 무도회는 비엔나의 유전자 중 하나다.

비엔나의 유전자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카페 문화다. 수십, 수백 년을 이어온 ‘카페 시조새’가 가득하다. 1880년에 개업한 카페 슈페를(Café Sperl), 클림트가 에곤 실레를 만나러 자주 찾던 카페 클림트(Café Klimt)(들렀을 때는 내부 공사 중) 등이 유명하다. 1900년대 초에 이미 600여 개 카페가 있었을 만큼, 비엔나 시민에게 카페는 제2의 집이다. 오래 머물며 책을 읽고 편지도 쓰고 당구도 쳤다.
그 문화가 이어져 지금도 비엔나 카페에는 각종 신문과 잡지, 당구대, 옷걸이 등을 구비한 곳이 많다. 좋았던 카페는 배우이자 행위 예술가인 수잔네 비들(Susanne Widl)이 운영하는 카페 코르프(Café Korb)이다. 그녀는 비엔나 요식업계의 큰손으로 비엔나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웨이터를 직접 관리하며 오랜 세월 카페 코르프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화려하진 않지만 세월의 멋이 배어 있으며, 지하실은 귄터 브루스, 페터 코글러 등 오스트리아 예술가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또 하나의 유전자는 호이리게다. 호이리게는 햇포도주를 뜻하는 단어로,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된 와인과 슈니첼 등의 안주를 즐기는 문화다. 교외에는 호이리게 펍이 많다. 그중 하나인 푸어가슬 후버(Fuhrgassl-Huber)에 들렀을 때 결혼 피로연부터 가족 모임까지 다들 왁자지껄 와인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와이너리도 소유한다. 비엔나에는 여섯 개 대표적인 와이너리가 있다(개인 제조업자까지 합치면 150여 개). 레드 와인의 생산량은 10%이고 나머지는 거의 화이트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을 주로 즐기며 탄산수나 소다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비엔나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산책에 나섰다. 목적지는 비엔나 중앙묘지다. 어느 도시를 가든 공동묘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산책로기 때문이다. 비엔나 중앙묘지는 함부르크의 프리트호프 올스도르프(Friedhof Ohlsdorf) 공동묘지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유명 음악가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커다란 가로수 길과 교회를 사이에 두고 무덤이 끝없이 펼쳐진다. 사슴, 토끼, 여우, 오소리 등 야생동물이 많아 사파리 투어도 운영한다. 이름 또한 ‘삶과 죽음의 사파리’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비엔나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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