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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폰이 담긴 책을 팝니다

2020.02.04

탐폰이 담긴 책을 팝니다

우리나라에서 2004년부터 생리용품 부가세 면세가 시행됐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체감하지 못합니다. 면세품이 됐음에도 우리나라 생리용품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가장 비싸기 때문이죠. 언론에서는 판매 가격에서 부가세를 면제할 뿐 생산과 유통 과정에는 여전히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하는데요. 제조업체는 가격 상승을 인정하면서도 원재료값 상승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2016년 기준 OECD 일부 국가와 우리나라의 생리대 가격을 비교한 표

요즘 독일에서는 생리용품에 사치품과 동일한 19%의 부가세가 붙는 것에 반발, 신박한 아이디어의 스타트업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습니다. ‘더 피메일 컴퍼니(The Female Company)’라는 이름의 이 스타트업은 안 조피 클라우스(Ann-Sophie Claus)와 지냐 슈타델마이어(Sinja Stadelmaier)가 함께 설립한 친환경 탐폰을 판매하는 회사죠. 올 초 이 회사에서 <더 탐폰 북(The Tampon Book)>이라는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생리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인 텍스트와 일러스트로 자세히 다룬 46쪽짜리 책이죠. 유기농 탐폰 15개와 함께요!

<더 탐폰 북>. 텍스트와 일러스트로 구성된 46페이지의 책과 함께 탐폰 15개가 들어 있습니다.

안과 지냐가 이 책을 구상한 계기는 앞서 말한 19%의 부가세 때문입니다. 생필품이나 다름없는 여성용품에 사치품과 동일한 비율의 부가세라니요. 책에는 7%의 부가세가 붙는다는 데 착안한 두 사람은 탐폰을 책 안에 넣어서 팔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 <더 탐폰 북>에는 7%의 부가세만 붙습니다. 한 권 가격은 3.11유로, 4,000원에 불과하죠.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쉽게 나온 게 아닙니다. 두 설립자는 일명 ‘탐폰세’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1년 동안 노력했습니다. 정부에 탐폰세를 낮춰달라는 진정서를 내려고 17만5,000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죠. “부가세를 낮췄을 때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다”는 독일 재무 장관 올라프 숄츠의 소극적인 답변만 돌아왔을 뿐.

여기서 포기했다면 <더 탐폰 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합법적으로 낮은 부가세를 내며 탐폰을 팔기 위해 이들은 책을 택했고 <더 탐폰 북>은 1쇄가 하루 만에 매진, 2쇄는 1만 부가 팔려나갔습니다. 생리용품에 사치품과 동일한 5%의 부가세가 붙는 영국에서도 <더 탐폰 북>은 큰 반향을 일으켰죠. ‘더 피메일 컴퍼니’의 두 설립자는 송로버섯에 붙는 부가세가 7%인데 생리용품에 19%의 부가세는 말도 안 되며, 부당함을 납득하기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움직임에 힘이 되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6월 말에 열린 2019 칸 국제광고제에서 <더 탐폰 북> 광고 영상이 PR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거죠(위의 인스타그램 영상입니다). 심사위원단은 창의력과 PR의 기술을 잘 보여주는 동시대 의사소통의 훌륭한 예라고 평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광고를 만들어도 상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이템 자체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아이디어가 훌륭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면세품인데도 높은 가격 때문에 생리용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10대가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도 메시지를 담은 아이디어와 함께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때가 아닐까요?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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