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with a Parasol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들은 어디로 갔나. 양산은 여성의 지위와 취향, 스타일을 드러내는 가장 고급스러운 선택 중 하나였다. 프랑스 무형문화재 미셸 오르토가 복원, 창작한 18~20세기 우양산 컬렉션과 함께 우아함의 재림을 소원하다.
옷장에서 15년 전에 산 양산을 꺼냈다. 레이스 공예가 유명한 이탈리아 부라노섬에서 거금을 준 아이보리색 양산이다. 가장 싼 숙소에서 자고, 단품 메뉴만 먹던 배낭여행 중에도 양산을 이고 지고 다녔다. 배낭에 다 들어가지 않아 양산 꼭지가 빼꼼 밖으로 나왔다. 아마 허름한 여행자의 호신용 막대기 정도로 보였을 거다. 어렵게 데려왔음에도 한반도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아깝기보다 샤넬 여사의 “마지막 액세서리 하나는 빼라”라는 격언처럼 무리한 치장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장마가 끝나면 이 아름다운 레이스 양산을 들고 <보그>로 출근할 것이다. 결심의 시작은 아래의 전시였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18~20세기 우양산 컬렉션을 선보이는 <Summer Bloom 여름이 피다>전이 열렸다. 2013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Maître d’Art)에 선정된 우양산 장인 미셸 오르토(Michel Heurtault)가 30여 년간 복원, 창작한 작품이다. 함께 전시를 본 비주얼 크리에이터 서영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양산에 빠져들었다. “어릴 때 한복에 양산을 쓰고 외출하던 엄마가 떠올랐어요. 여름이니 한복 속옷과 양산이 어우러지는 화보를 <보그>와 만들고 싶었죠.”
전시 휴무일에 양산을 외부 스튜디오로 반출하고, 서걱서걱 여름이 스치는 소재와 베이지 계열의 한복, 속옷을 준비했다. 우리가 촬영한 양산은 하나하나 역사가 얽혀 있다. 아시아를 동경한 19세기 유럽에서 중국식으로 중봉을 조각한 양산, 부풀린 치마를 즐겨 입던 여성이 마차에 쉽게 오르도록 작게 만든 양산 등 미셸이 수집하고 복원한 18~20세기 우양산 중에 고르고 고른 것이다(한때 파스타 면만 먹을 정도의 재정난을 견디며 모으고 지켜온 것들이다). “작업할 때면 시간 여행을 해요. 손잡이만 남은 양산이지만 제작 당시인 1900년대 러시아 왕족의 역사와 의복에 영감을 받아 복원해내죠. 복원보단 순수한 오뜨 꾸뛰르 창작에 가깝습니다.”
당시 우양산은 지위를 드러내는 사치품이기에, 완성도 또한 최고의 기술과 재료를 들여 아름답다. 미셸이 당시의 작업 방식과 재료로 복원하는 이유다. 2008년 설립한 그의 공방 ‘파라솔르리 오르토(Parasolerie Heurtault)’에는 19세기산 재단 기계가 있고(세계에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거다), 수십, 수백 년 전의 레이스와 우양산 소품으로 가득하다. “제가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수준이 오늘날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에요. 이전엔 ‘럭셔리’가 ‘퀄리티’와 동의어였어요. 오늘날은 럭셔리가 ‘브랜드’와 동의어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별 가치 없는 것을 매우 비싸게 사고 있어요.”
<보그>는 이 아름다운 사치품을 패셔너블하게 해석해왔다. 1910년대 〈보그>의 일러스트레이션 커버에는 종종 양산이 등장한다. 와이드 햇, 벨 햇등을 쓴 여인이 대나무 살에 기름을 먹인 밝은색 종이를 덧댄 동양식 양산을 들고 있다. (당시 사치품이었던 양산과 모자는 보통 함께 등장한다.) 나는 사진가 루이즈 달 울프(Louise Dahl Wolfe)가 1959년에 푸에르토리코 해변에서 촬영한 전설의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붉은색 수영복과 라피아 모자, 동양풍의 우산을 쓴 두 명의 여인이다(런던 루마스 갤러리의 ‘Masterpieces of Fashion Photography’에 전시되기도 했다). 제인 캠피온(Jane Campion)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 영감을 받은 1994년 화보도 아름답다. 영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남편을 낯선 땅에서 기다리는 모녀의 곁에는 피아노와 검은색 우양산이 있다. 이 한 컷은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존 갈리아노의 의상과 흑백 우양산의 화보로 새롭게 태어났다.
2019년 <보그>는 양산을 든 여인이 그립다. 우리가 들던 아름다운 양산은 어디로 갔나? 그들은 인디안 서머처럼 한 시절을 세차게 장식하고 갑작스레 떠나버린 것 같다.
한국에서 우양산은 개화기에 들어서야 여성의 친구가 된다. 1911년 배화학당이 학생에게 쓰개치마를 금지하면서 자퇴생이 늘자, 그 대용으로 검정 우산을 건넸다. 이는 여학생을 넘어 신여성의 패션 아이템으로 유행한다. 1910년대, 개량한 한복에 레이스 숄을 두르고 양산을 든 신여성의 흑백사진을 봤다.
‘Parasol, 1915년경’. 검은색 옻칠을 한 너도밤나무로 만든 당구채 스타일의 긴 중봉이 눈에 띈다. 16개의 고래 수염 살을 바탕으로 다섯 겹의 란제리를 배접한 실크 튤을 씌웠다. 1920년대 모던걸이 등장하면서 양산은 더욱 화려하게 변모한다. (모던걸은 1925년 <신여성> 기사에서 신여성과 번갈아 쓰기 시작했고, 보통 신여성보다 근대화된 여성을 일컫는다.) 쌀 두 가마니 가격을 주고 구두를 사 신던 모던걸은 손목시계, 다이아몬드 반지, 악어가죽으로 만든 ‘오페라 빽’과 양산을 소유하고자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앞서나가는 여성은 허영과 사치의 죄인으로, 낭비를 조장하고 사회질서를 무너트리는 ‘못된걸’로 취급받았다. 사회 활동을 하고, 더 이상 입을 다물 생각이 없는 여성에게 패션(양산)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 수단이었는데 말이다.
패션이 또 다른 자아가 된 지금, 양산이 재림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물론 환경오염의 여파로 여름이 뜨거워지면서 서울 거리에 양산을 쓴 여성이 늘긴 했다. 하지만 그 양산에는 기능성 외의 미감은 거세됐다. 플로리스트 조셉 프리(Joseph Free)가 만든 생화로 만든 우산(<보그>의 로다테 2018 F/W 컬렉션 화보를 위해 제작했다)처럼,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멋진 양산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창의성이 폭발하는 시대니까. (동시대인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물론 양산의 사용법은 변하지 않을 거다. 미셸은 가장 멋지게 양산을 쓰는 법을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블랑섹의 기이한 모험>, <페어웰, 마이 퀸>, <마드무아젤: 위대한 유혹> 등 영화 여러 편의 양산을 작업했죠. 재미있게도 많은 배우가 양산 쓰는 법을 잘 모르더군요. 그래서 촬영 중 제가 끼어들어 양산 쓰는 법을 설명해야 했어요. 양산은 단순히 장식용으로 예쁘게 쓰는 게 아니라, 햇볕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씁니다. 그러니 햇볕이 정면으로 비출 때 양산을 등 뒤에 놓고 있으면 안 되죠!”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조기석
- 모델
- 소유정
- 비주얼 크리에이터
- 서영희
- 헤어
- 김정한
- 메이크업
- 이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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