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ROMANTIC GENIUS

2019.07.29

ROMANTIC GENIUS

‘시몬 로샤’가 ‘몽클레르’와의 새로운 협업을 ‘서울’에서 발표했다.

최근 이름난 여러 패션 하우스가 흡수하는 분위기는 ‘스트리트’다. 티셔츠, 트레이닝 팬츠, 운동화처럼 세대를 아우 르는 아이템을 향한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시몬 로샤(Simone Rocha)는 이런 범세계적 트렌드의 대척점에 서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몇 안 되는 디자이너다. 때로 시몬 로샤의 룩은 로맨틱, 바로크, 페미닌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만, 옷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보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뷔 초부터 눈에 보이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 노선을 택한 그녀가 몽클레르가 시작한 ‘하나의 하우스, 다양한 목소리(One House, Different Voices)’라는 지니어스 프로젝트 컬렉션의 8인 중 한 명으로 선택된 건 우연이 아니다. 벌써 ‘4 몽클레르 시몬 로샤’라는 이름으로 2019 F/W 시즌까지 선보인 그녀가 세 번째 컬렉션을 위해 난생처음 서울에 들렀다.

얼굴선을 따라 진주와 비즈가 박힌 니트 모자, 커다란 리본 장식 패딩 코트는 4 몽클레르 시몬 로샤(4 Moncler Simone Rocha).

2019 F/W 컬렉션은 몽클레르와 세 번째 협업이죠. 지난 컬렉션과 달리 소재, 디자인, 기술적 측면에서 새롭게 시도한 점은 뭘까요?

첫 번째, 두번째 컬렉션에서 배운 점을 모두 세 번째 컬렉션에 담았어요. 영감은 걸스카우트에서 가져왔고, 그런 요소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아웃도어 느낌을 더했죠. 몽클레르 이미지가 자연과 아웃도어니까요. 우선 야외 텐트에서 고안해 가볍고도 큰 볼륨을 만들었습니다. 기능적인 나일론에 자수를 더했는데, 오랜 역사의 영국산 흰 자수를 더한 면직물인 브로드리 앙글레즈(Broderie Anglaise)를 나일론으로 스포티하게 재해석했어요.

저는 4번 룩, 얼마 전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 밀리 바비 브라운이 어느 잡지 표지에 입고 나온 분홍색 패딩 룩이 마음에 들어요!

바로 그 룩이 텐트의 구조를 연상시키죠. 로프 같은 매듭, 그 매듭을 끼운 펀칭 디테일이 옛날 텐트 요소에서 가져온 거예요. 패턴 커팅을 드레스처럼 입게 했는 데, 입었을 때 큰 볼륨으로 완성되는 옷이에요.

시몬 로샤는 스트리트 패션이나 유행을 바로 적용하는 대신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모델을 런웨이에 세우는 등 자신만의 정서적 노선을 따릅니다. 

제 고객이 되는 여성을 우선 생각해요. 모든 연령대와 사이즈의 여성이 입길 원하죠. 마리 소피 윌슨 카는 제 쇼에 두 번 섰고, 클로에 세비니는 영감을 주는 배우이자 감독이에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등장한 2017 F/W 쇼는 여성성(Femininity)과 여성의 시선(Female Gaze)을 아이디어로 삼았습니다. 이들을 쇼에 세우면서 더 많은 오디언스에게 접근하고 싶었죠.

컬렉션에 영감을 줬거나 혹은 영감을 받고 싶을 때 찾는 예술적 대상이 있나요?

2019 F/W 컬렉션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스튜디오와 주얼리를 협업했어요. 지난해부터 준비한 작업이었는데 그 과정이 엄청난 영감을 줬죠. 그리고 이 컬렉션을 고객과 팬에게 선보이는 자리를 지난 5월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마련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인 신디 셔먼 또한 자리를 빛내줬죠. 변화무쌍한 작업을 하는 그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을 공부하기 전 더블린에서 예술을 전공했죠. 로니 혼, 에바 헤세 등 여성 미술가를 좋아한다고 언급했어요. 한국 여성 아티스트 중 아는 사람이 있나요?

사실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내일 현대미술관에 갈 거예요. 거기에서 새로 알 수 있겠군요.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의 작업은 개인적인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해서 좋아해요. 강력한 힘도 있죠. 각기 다른 작품 뒤에 숨은 의미를 찾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로니 혼의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 기프트 시리즈를 특히 좋아해요.

텐트에서 영감을 받은 빨간색 로프와 펀칭 디테일이 돋보이는 분홍색 패딩 아우터, 동글동글한 니트 장식 모자, 검은색 레인 부츠는 4 몽클레르 시몬 로샤(4 Moncler Simone Rocha).

어떤 사람들은 시몬 로샤의 옷을 ‘여성스럽다(Feminine)’고 표현합니다. 사실 ‘여성스럽다’는 말은 오늘날 새로 정의되거나 지양하는 수식어이기도 하죠.

저에게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다층적 의미예요. 강인하고, 현대적이고, 도전적이고, 흥미롭고, 지금이라는 뜻이죠. 시몬 로샤 옷이 페미닌하다는 건 그런 단어의 요소를 결합한 게 아닐까요.

당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아버지 존 로샤(John Rocha)를 빼놓을 수 없어요. 함께 일하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죠. 어린 시절 부모님께 배운 교훈 중지금까지 유효한 것은 뭔가요?

아주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도 늘 배우죠. 아버지에게는 근면을 배웠어요. 단순히 패션 디자인을 넘어, 매장,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공간 등 여러 분야를 생각하고 늘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요. 어머니에게서는 늘 질문하는 법을 배웠어요. 가능한 한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 다양한 사이즈로 옷을 만들고 착용이 편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죠.

당신에 대해 조사하던 중, 유튜브에서 시몬 로샤 팀이 컬렉션 초대장을 하나하나 재봉틀로 스티치를 넣어 만드는 영상을 봤어요. 수많은 초대장을 다 만들다니, 놀라웠어요!

2018 S/S 컬렉션 초대장이었죠. 우리 팀에게 제가 정말 간곡히 부탁한 스페셜 작업 중 하나였어요. 많은 사람이 사진가와 작업한 우리의 패션쇼 초대장을 수집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장 가치가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 신입 직원이 많아 가능했고 나름의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는데, 현실적 여건상 매번 그렇게 할 순 없죠.

2010년 브랜드를 론칭해서 9년째예요. 5년 뒤 시몬 로샤는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까요?

옷 자체로 아름답고 또 품질을 유지하되, 톰보이 혹은 반항적 느낌, 다양한 영향이 섞인 옷을 만들고 싶어요.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플로럴 크리스털 장식 헤어핀과 귀고리를 착용한 디자이너 시몬 로샤.

전 세계에서 당신의 컬렉션을 보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이 많을 거예요.

학창 시절을 즐기는 게 중요해요. 창작에 전적으로 자유를 지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어떤 책임도 없이요! 그 시간을 실험적으로 쓰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 기회로 삼으면 패션 디자이너라는 쉽지 않은 여정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학생일 때 브랜드, 잡지 등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해요. 패션이라는 산업은 정말 각양각색이니까요. 저는 아버지 브랜드에서도 일했고, 마크 제이콥스, 영국 <보그>,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에서도 일했어요. 20가지에 이르는 다른 경험이죠. 넓은 패션 분야에서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체험하는 게 중요합니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패션을 진로로 삼게 된 특정한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은 어느 순간에 패션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나요?

패션 학도 시절에도 패션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디자이너를 꿈꾼 건 ‘쇼’라는 존재가 가장 컸어요. 컬렉션 디자인 작업과 쇼가 열린 장소, 모델 캐스팅, 많은 사람과의 협업, 그 모든 것을 조합한 쇼의 매력에 빠졌죠.

오늘날 컨템퍼러리 브랜드가 갖춰야 할, 이전 세대의 브랜드에는 요구되지 않은 자질은 뭘까요?

브랜드가 지켜야 할 원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아요.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지녀야 하고, 패션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 자신의 고객과 지역에 관한 이해, 어떤 유통 방식이 자신의 브랜드에 맞는지 말이죠. 요즘 고객은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브랜드를 둘러싼 환경을 잘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빡빡한 패션 위크 스케줄, 수많은 협업과 이벤트. 모든 부분에 민감하게 임해야 하는 게 패션 디자이너의 삶이죠. 이 일을 하면서 당신을 지치지 않게 하는 건 뭔가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당신이 패션에 아주 지쳐 있나 봐요! 하하. 이를테면 런던에서 시몬 로샤 컬렉션을 발표하고 며칠 뒤 밀라노에서 몽클레르 협업 컬렉션을 선보이죠. 이런 특정 기간에 지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가장 신나는 일주일이기도 하죠. 모든 사람이 고무되어 있고 하나의 쇼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잖아요. 그 결과가 ‘진짜’로 일어난 걸 볼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더 전진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주가 끝나면 많은 사람이 실신할 정도지만요. 제게 패션이란 정말 지치는 일인 동시에 흥미진진한 일이에요.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이준경
    모델
    키코 아라이(Kiko Arai)
    헤어
    요이치 토미자와(Yoichi Tomizawa)
    메이크업
    박성희(Seonghee Park)
    캐스팅
    버트 마티로시안(Bert Martirosyan)
    프로덕션
    박인영(Inyoung Park)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