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신낭만주의자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뿌려놓은 기억의 조각들. 그 시간의 향을 찾는 여행.
영상과 이미지로 일상을 기록하는 밀레니얼이 후각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시각적 자극에 묻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향’에 대한 추억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긴 하다. 처음 들른 이국적 도시의 낯선 공기의 향, 유년 시절에 엄마 품에 안겨 잠들 때까지 맡던 포근한 살냄새, 이른 아침 단정하게 걸린 화이트 셔츠의 쾌청한 향기, 잊고 지낸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누군가의 체취 등등. 이처럼 향은 기억의 증폭제, 기억 속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다. “제게 향은 전부와 같아요. 대부분의 기억이 특정한 향의 느낌과 집념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눈을 감는 순간 내 기억 속 어디든 떠오르는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다주는 매개체. 제가 생각하는 향수의 정의입니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설명이다. 온갖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인 그에게도 ‘향’만큼은 손에 닿지 않는 신비의 영역이다.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올 향을 만들고 싶은 미켈레의 순수한 소망은 마스터 조향사 알베르토 모리야스에 의해 구현됐다. 지난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서 열린 구찌 2020 크루즈 쇼의 애프터 파티에서 구찌 가문 최초의 유니섹스 향수 ‘메모아 뒨 오더’가 베일을 벗었다.
‘타임머신’을 향으로 재정립한 조향사 모리야스는 메모아 뒨 오더를 위해 새로운 ‘미네랄’ 향조를 구상했다. 투명하고 맑지만 날카로운 면면이 느껴지는 전통적 미네랄 향조에 아로마틱 노트를 섞어 꿈같은 달콤함을 선사한다. 이 신비로운 ‘미네랄 아로마틱’ 향조가 메모아 뒨 오더의 핵심. 주변으로 샌들우드와 가볍고 미묘한 시더우드, 깊은 뿌리 나무와 부드러운 바닐라 노트가 차례로 이어진다.
새롭게 등장한 ‘아로마틱 노트’는 메모아의 또 다른 즐길 거리다. 두 명의 마에스트로는 아로마틱 노트의 원재료로 ‘로만 카모마일’을 택했다. 16~17세기 로마의 테라스 정원을 메우던 로만 카모마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활기찬 그리너리 향을 품고 있다. 게다가 구찌 하우스만의 독점 노트인 인디안 코럴 재스민과 만나면 부드럽고 풍부한 향을, 머스크와 만나면 깊이 있는 안정감을 선사하는 변신의 귀재다. “미켈레가 카모마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숙고해봤어요. 카모마일 향을 맡자마자 깨달았죠. 유년 시절 추억이 떠올랐으니까요.” 90년대 초, 오래된 구찌 향수에서 영감을 받은 짙푸른 에메랄드빛 보틀에 담긴 메모아 뒨 오더의 잔향은 기억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어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미래로 견인한다.
“메모아 뒨 오더는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요. 그렇기에 광고 캠페인에서도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어요. 어떠한 제한과 저항도 없는 비시대적, 비공간적, 비사회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 역할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을 떠올려보세요.” 미켈레의 독특한 시대상은 영상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로마 변두리에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추억을 공유하는 스물두 명은 자유로운 공동체에 대한 미켈레의 표현 방식이다. 이들은 함께 춤추고, 태양이 내리쬐는 카날레 몬테라노를 거닐며 신비로운 프레스코가 새겨진 중세 시대 몬테칼벨로 성 안쪽 분수에서 시간을 때운다. 그들은 그리스 로마 신전의 단단한 기둥과 꼭 닮은 형상의 메모아 뒨 오더를 쥐고 있으며, 이 무리의 중심에는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가 자리한다. 찰나의 순간과 감정을 명확하고 예리하게 포착한 결과물이 사진과 향의 공통점이다.
미켈레와 모리야스는 추억 가득한 앨범을 펼치듯 메모아 뒨 오더의 향을 완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모아는 ‘추억의 기념품’이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처음 메모아를 떠올린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추억의 향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단순한 향이 아닌 공감각적 향을 원했죠.” 향을 잃은 삶은 메마른 땅과 같아 짙푸른 나무와 아름다운 꽃을 생산할 수 없다.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미래로 이끌 타임머신 퍼퓸이 당신을 찾아간다.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Courtesy of Gucci, Sponsored by Co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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