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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지각변동

2019.09.01

차트 지각변동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잡지 <롤링 스톤>이 차트를 열었다. 집계에서 라디오 방송 횟수를 빼고, 주간인 빌보드와 달리 매일 업데이트한다. ‘롤링 스톤 차트’가 음악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태초에 잔 웨너(Jann Wenner)가 있었다. 그가 <롤링 스톤>을 창간하면서 대중음악 저널리즘의 역사는 영원히 바뀌었다. 1960년대에 수면 위로 부상하던 서브컬처의 흐름은 자신을 제대로 대변할 잡지를 만나 역대급 시너지를 일으켰다. 현재 활동 중인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롤링 스톤>의 영향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록의 전성기를 거치며 거침없이 성장한 <롤링 스톤>은 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잡지가 됐다. 그들은 소수의 목소리를 전하는 ‘힙’ 전도사이자 영향력과 규모 면에서 미디어 공룡이다. 비록 종이 잡지 쇠락의 파도를 거스르지 못하고 격주간지에서 월간지로 자세를 움츠렸지만.

매거진 영향력 자체가 감소했다고는 하나 전통적 강소 미디어가 구축한 유구한 권위와 브랜드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2019년 3월 <롤링 스톤>의 나머지 지분 49%를 인수하며 사실상 소유주가 된 펜스케 미디어도 이 점에 주목했다. <버라이어티> 등 유명 매체를 다수 소유한 이 미디어 기업은 역시 산하에 두고 있는 음악 트렌드 분석 업체 버즈앵글과 <롤링 스톤>의 시너지를 고민했다.

‘<롤링 스톤>의 브랜드 권위와 버즈앵글의 음악 산업 데이터를 합치면 환상적인 차트가 탄생하지 않을까?’ 그렇게 롤링 스톤의 차트가 태어났다. 최초 예정일보다 2개월이나 늦어졌으나 어쨌든 난관을 뚫고 공개됐다. 이름은 그냥 ‘롤링 스톤 차트’다.

신생 기업은 당연히 터줏대감과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차트 업계엔 이미 80년 전통의 빌보드가 있다. 신뢰도 높기로 소문난 닐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데다가, 메인 차트인 ‘Hot 100’ 순위가 곧 인기의 글로벌 바로미터로 인식되기 때문에 차별화 말고는 승부수를 던질 길이 없다. 롤링 스톤은 어떻게든 빌보드와 달라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롤링 스톤 차트는 역시 빌보드가 하지 않는 실험을 시도했다. 첫째, ‘데일리’ 업데이트다. 현재 빌보드는 ‘주간’ 단위로 발표한다. 그리고 이는 <롤링 스톤>이 판단하기에 때늦은 뒷북이다. <롤링 스톤>은 “엔터 업계의 거의 모든 통계는 위클리 기반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소비 트렌드에 뒤처져 있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요즘은 실시간 차트를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어 주간 단위로 종합해 내놓으면 늦다. 한국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몰락도 실시간 차트의 대세 장악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라디오를 집계에서 배제했다. 전통적으로 라디오는 인기를 판가름하는 지표로 오래 활용되어왔다. 빌보드의 경우도 온 · 오프라인 판매량과 스트리밍에 더해 라디오를 집계에 포함시킨다. 라디오를 집계하는 ‘라디오 송스’ 차트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하지만 <롤링 스톤>은 이를 “수동적 청취”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청취자의 의지로 특정 곡을 들은 것이 아니라면 적극적 청취로 간주하지 않고 차트에도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라디오엔 지상파뿐 아니라 디지털 라디오도 포함된다. 라디오 제외의 이유로 “수동적 청취” 외에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차트를 공개하며 밝힌 뒤의 출사표를 통해 또 다른 이유를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의 목적은 가장 주목받을 자격 있는 아티스트에게 축하를 보내고, 1위에 오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더 나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방송의 영향력을 축소시킨 소비자 위주의 차트가 좀더 순수한 대중성이며 1 위는 그러한 집계를 토대로 가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소셜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스트리밍 비중을 강화한 것이다.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 외에도 아티스트 차트 및 트렌드 차트 등도 발표하는데, 이 중 아티스트 및 트렌드 차트는 오로지 스트리밍 기준으로 집계한다. 빌보드의 ‘Artist 100’은 음악 소비량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활동도 측정한다. 그리고 이는 SNS 시대를 맞아 대중적 인기를 측정하는 합리적 방법 중 하나로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롤링 스톤>은 이를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은 없고 단지 “스트리밍은 미국 음악 청취자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라디오를 “수동적 청취”라며 배제한 것을 고려했을 때 소셜 활동을 통해서든 입소문을 통해서든, 결국 ‘들은’ 것만 집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역시 차트 1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재정의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라디오의 배제는 세 가지 시도 중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동적 · 적극적 청취라는 구분 외에도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된 음악계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기존 매체의 간극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사이트 ‘데이터페이스닷컴’의 분석에 따르면, 하나의 곡이 히트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라디오보다 스트리밍이 짧다. 사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로직의 ‘1-800-273-8255’는 스포티파이에서는 발표되자마자 10위권에 진입했지만 라디오 차트에서는 (빌보드 기준) 20주가 지나서야 50위권에 안착했다. 하나의 예에 그치지 않는다. 릴 우지 버트의 ‘XO Tour Life3’는 스포티파이에서는 발매 첫 주에 곧장 5위권에 진입했지만 라디오에서는 10주나 지나 50위권에 간신히 모습을 드러냈다. 힙합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다.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는 스포티파이에서는 첫 주에 곧장 1위를 했지만 라디오에서는 7주가 지나 1위를 기록했다. 데이터페이스닷컴은 평균 통계도 제시했다. 하나의 곡이 차트 톱 10에 진입하는 속도가 스포티파이는 평균 2주, 빌보드 라디오 차트는 평균 11주가 걸린다고 한다. 이 기사의 제목은 “스트리밍 대비 라디오의 지연 속도를 측정하다”이다.

속도만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 스트리밍과 라디오는 장르 취향 또한 나뉜다. 역시 데이터페이스닷컴 기사에 따르면, 톱 50 히트를 기준으로 스포티파이가 라디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R&B/랩 히트곡을 배출한다. 반면 라디오는 스포티파이보다 1.5배 많은 팝 히트곡을 배출한다.

장르 관련해 또 다른 통계도 재미있다. 라디오에서는 히트곡이 적지만 스포티파이에서는 많은 아티스트 1 위는? 엑스엑스엑스텐타시온이다. 에미넴, 카니예 웨스트, 릴 펌, 찬스 더 래퍼 등 힙합 뮤지션이 절대다수다. 빌리 아일리시와 BTS의 이름도 보인다. 그렇다면 반대로 라디오에서는 잘나가지만 스포이파이에서는 히트곡이 적은 아티스트 1위는? 제이슨 알딘이다. ‘Big Green Tractor’로 유명한 미국의 컨트리 아티스트다. 블레이크 셸턴, 루크 브라이언, 키스 어번 등 상위권의 대부분을 컨트리 아티스트가 차지했다. 낮은 순위이긴 하지만 아델의 이름도 보인다.

무엇을 의미하나? 라디오는 히트 속도가 느려 하루 단위로 대세가 바뀌는 인터넷 중심의 현재 음악계 트렌드를 대표하기 힘들다. 또 지금의 미국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인 힙합을 꺼려 대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새로운 트렌드가 빨리 자리 잡지 못하게 지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롤링 스톤>이 라디오를 배제한 데엔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단지 수동적 · 적극적 청취의 구분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라디오를 차트에서 배제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최신의 흐름에 집중하는 차트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지표를 종합해 보다 보편적 흐름을 포착하는 차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지표가 클릭 한 번으로 공개되는 세상에서 그와 다를 바 없는 스트리밍 중심 차트로 과연 차별화될지 의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롤링 스톤>의 의도는 더 분명해진다.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잡지답게 보수적 흐름을 제외한 최신 취향을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디오는 그런 흐름을 포착하기에 적당한 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디터
    김나랑
    이대화(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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