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꿀 떨어지는 술

2022.08.12

꿀 떨어지는 술

뭐 좀 새로운 술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미드’를 만났다. 잠들어 있던 꿀술, 미드(Mead)를 깨운 건 크래프트 맥주 긱(Geek)들이다.

술을 공부하듯 마시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옷을 사듯 술을 매번 바꿔가며 마시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술 한 종류를 깊고 넓게 파면서 집요하게 마시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때그때 제일 핫한 술을 찾아가며 즐기는 것도 아찔하고 신난다. 요즘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 어차피 맛을 가늠하기가 힘든 내추럴 와인이라면 레이블이 잘빠진 것, 지금 당장 꽃을 꽂아도 좋을 예쁜 병을 고른다. 북유럽 어디께에 있는 작은 양조장에서 한정적으로 만든 맥주가 있다고 하면 얼른 달려가 ‘낼름’ 마신다. 위스키 중에도 아이리시 위스키가 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스키 바에 성큼 달려가 아이리시 위스키만 연달아 마신다. 편견도, 경계도 없이, 그냥 기분과 취향에 이끌려 술을 고르는 이 즐거움이 매일 밤 이어진다.

이런 내가 몇 달 전부터 잡고 싶지만 영 손에 잡히지 않는 술이 하나 있다. 지금 이 술을 마셔야 어디 가서 술 좀 마신다 하는 힙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그 술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다. 그 술의 이름은 ‘미드(Mead)’고 주재료는 꿀이다. 처음엔 술 이름이 무엇의 준말인데 내가 눈치가 느려 몰랐나 싶어 한참 검색해본 기억이 난다. 미드는 신조어도, 요즘 생긴 말도 아니다. 꿀로 만든 술, 미드는 우리가 모르던 단어였을 뿐이다. 미드의 역사는 기원전 7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유구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라고 불리지만, 지금 이 술을 아는 사람이 와인을 아는 사람의 7,000분의 1이나 될까? ‘허니문’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이야기하면 그제야 ‘아하’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갓 결혼한 부부가 한 달 동안 밤마다 꿀술을 마시는 것에서 허니문(Honeymoon)이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허니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도 팔팔하게 살아남은 언어가 됐지만, 미드는 억겁의 기간 동안 생활과 역사에서 깜빡 잊히고 말았다. 미드를 즐겨 마시던 민족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다. 미드 사랑이 가장 진했던 부족은 바이킹이다. 전쟁을 치르고 난 바이킹족이 이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고 전해지지만 그 후 맥주와 증류주의 강세로 미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케일로 만든 술도 아니고, 아보카도로 만든 술도 아닌데, 이게 왜 지금 와서 핫해졌 는지 따져보려면 일단 맥주를 한 잔 마셔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크래프트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른바 힙스터의 드링크라고 불리는 음료의 유행은 최근에 꽤 선명하게 이어지는데 크래프트 맥주에서 시작해, 사과로 만든 사이다, 발효차 음료 콤부차 등에 사람들의 이목이 와르르 몰렸다가 옮겨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힙스터들이 요즘 주목하고 있는 술이 미드다. 꿀, 효모, 물로 만드는 미드는 곡물로 만드는 맥주도, 과실로 만드는 와인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 리며 주재료가 꿀이라 글루텐에서도 자유롭다. 무엇보다 신화에 묻혀 있는 술을 다시 꺼내 양조해본다는 것조차 ‘힙’ 조건에 충족된다. 기존의 음료 긱(Geek)들이 미드에 슬슬 관심을 주기 시작한 이유다.

미드를 만드는 양조장을 미더리(Meadery) 라고 지칭하는데, 사이다와 미드를 함께 만들거나 맥주와 미드를 함께 만드는 미더리를 지금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15년 미국의 미더리는 대략 250개 정도였는데 2019년에 600개를 넘어섰다. 유럽에서도 미드는 뜨겁다. 맥주의 경계를 넘어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덴마크의 미켈러 브루어리가 정기적으로 여는 셀리브레이션 이벤트에 미국의 가장 핫한 미더리 ‘슈퍼스티션’을 소개하면서 크래프트 맥주 신에도 본격적으로 미드 열풍이 불었고,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도 미드의 광풍이 번졌다. 미드를 맥주로 분류해야 하는지, 와인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 많고 결국엔 독자적 카테고리로 분류하지만 미드를 가장 격렬하게 품는 업계는 크래프트 맥주 업계다. 맥주 스타일을 정의해 ‘맥덕’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가이드라인에도 트래디셔널 미드, 프루트 미드, 스파이스드 미드, 스페셜티 미드로 나누어 등재되어 있다.

그래서 맛은? 꿀물에 소주 탄 맛이 날 것인가, 소테른 와인처럼 우아한 단맛이 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꿀로 만든 술이지만, 그 술을 어떻게 발효하고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셰리 와인이나 포트 와인 같은 주정 강화 와인이 먼저 떠올랐다. 독일 아이스바인이나 헝가리 토카이 와인도 슬쩍 스쳤다. 꿀로만 만들었는데도 음식에 페어링하기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의외로 산도가 단단한 미드도 있고,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할 때처럼 다양한 베리류를 첨가해 과실 향을 강조한 미드도 있다. 초콜릿을 더하거나 오크통에 숙성을 하는 미드도 있다. 기저는 ‘꿀’이지만 사실 온갖 방향으로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요망하고 요상한 술이다. 이런 분방함이 있기에 잠자던 미드는 환생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이 미드의 ‘힙’함뿐 아니라 ‘맛’에도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에인션트 파이어 미드 앤 사이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제이슨 펠프스가 <포브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의 입맛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더 달고, 더 과실의 맛이 직접적인 음료를 좋아하게 되면서 미드도 자연스럽게 더 찾는 것 같다.”

당장 종류별로 사놓고 마시고 싶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 내게 미드는 ‘잡고 싶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 술’이다. 미드가 이렇게 핫하다는데, 이슈가 있는 술이라면 놓치기 싫은 내가 아직도 마음껏 미드를 즐기지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는 이유는 국내의 수입, 통관 이슈 때문이다. 국내 맥주 마니아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맥주를 수입하는 어느 수입사는 최근 미국의 톱 셀링 미드를 수입했다가 통관에 막혀 물건을 다시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내 주세법상 미드라는 카테고리가 없다. 과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와인으로 분류되지 못해 기타 주류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데, 기타 주류의 경우 산화방지제 허용치가 와인의 10분의 1 정도로 낮다. 라벨에 산화방지제 함유 표기가 되어 있는 경우 식약처 정밀 검사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한반도 밖의 열기에 비해 아직 국내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일 확률이 높다. 다만 베리류를 섞어 만든 미드의 경우 전체 당도에 과실이 일정 이상을 차지하면 과실주로 분류돼 수입이 가능하다. 트래디셔널 미드보다 프루트 미드를 국내에선 더 다양하게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미국의 미드 브랜드 랭킹을 살펴보면 반절 정도는 과일을 더해 복합미를 더 끌어올린 제품이 많다.

그렇다고 꼭 수입에 성공해야만 미드를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다. 곰세마리양조장의 ‘어린 꿀술’은 미드의 인기와 함께 주목을 받은 종로구 체부동에 있는 양조장이다.

게임 속에 신비한 술로 등장하는 ‘꿀술’에 호기심을 느껴 양조장을 차리게 된, 30대 초반의 젊은 대표들이 만든 술이다. 무작정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쌉쌀한 맛과 약간의 산도가 더해져 은은하게 단맛이 퍼지는 게 매력이다. 최근엔 레스토랑에 납품되고, 위스키 바에서 흥미로운 칵테일 한 잔으로 변신도 한다. 영국 미드 브랜드 ‘고스넬스’도 국내에서 쉽게 마실 수 있다. 오렌지 나무 꽃꿀로 만든 미드로 총 여섯 가지 종류가 수입된다. 캐스케이드 홉이 들어가 맥주의 느낌이 스치는 미드도 있고 말린 히비스커스꽃을 사용해 핑크빛이 감도는 미드도 판매 중이다. 나는 그중 알코올 도수 12도의 ‘빈티지 2018 미드’가 밸런스가 가장 좋았다. 런던에서 생산되는 꿀을 사용한 미드다.

‘이 맛이 무엇이다’라고 명확히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미드의 참매력이다. 곡물로 만든 술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쓴맛, 과실을 발효해 만든 술에서 느껴지던 화사한 산도와 완전히 다른 결로 다가온다. 그리스 신전에 있는 것처럼 화려한 와인 잔에 따라 마셔도 좋고, 얼음을 퐁당 띄워 맥주처럼 마셔도 된다. 디저트 와인처럼 작은 잔에 따라놓고 하루 종일 홀짝여도 좋겠다. 어떻게 마시든, 지금 가장 핫한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 있다는 기분 덕에 술맛이 확 살아난다. 어렵게 구매한 새 옷을 입을 때의 그 기분처럼.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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