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콜리어 쇼어의 사진집 <폴의 책>

2020.02.06

by 송보라

    콜리어 쇼어의 사진집 <폴의 책>

    콜리어 쇼어와 폴 아멜린이 처음 함께 촬영한 건 2015년입니다. 미국 사진가인 쇼어는 프랑스 출신 모델인 아멜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꼈죠. 물론 인스타그램 덕분입니다. 55세인 쇼어와 23세인 아멜린은 우정에 나이가 중요치 않다는 걸 증명합니다.

    “다른 사람과 공통점을 가질 때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말하길 폴과 나는 둘 다 순수하고 순진한 면이 있어요. 우리가 함께 작업할 때면 그게 사진에 드러납니다. 매우 나른하고 느린 느낌이죠. 긴장감이란 전혀 없어요. 우린 게으른 한 쌍의 고양이거든요.” 테스트 사진으로 시작해 개인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다음은 <리에디션> 매거진을 위한 발렌시아가와 베트멍 촬영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폴의 책(Paul’s Book)>을 완성했죠.

    이 사진집은 파리 마레 지구에 가족과 함께 사는 아멜린을 방문한 쇼어의 결과물입니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2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수많은 변화의 순간이 있어요.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친밀감과 편안함이 쌓이면서, 몸의 표현 방식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말하는 거죠.” 쇼어가 책에 썼듯이 대부분의 사진은 그녀가 시차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멜린은 파리 패션 위크의 피팅을 다니는 동안에 촬영한 것입니다. 쇼어가 찍은 폴의 사진 사이에는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나 모델 제임스 크루 같은 친구와 동료의 사진도 있습니다.

    쇼어에게 아멜린과의 작업, 오늘날 패션 사진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여성의 시선’이라는 표현은 모든 여성 사진작가를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남성 사진작가는 이런 식으로 분류되지 않죠. 이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만약 내 앞에 여성 사진가 20명의 작업물을 놓는다면 그중 일부는 여성 작가의 작품인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으니까요. 여성 사진작가들은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습니다. 가끔 난 게이와 스트레이트의 시선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1980년대에는 스트레이트 여성의 여성주의 작업물과 레즈비언의 여성주의 작업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거든요. 스트레이트 여성은 남성에 좀더 가까운 관점을 갖고 있었죠. 레즈비언으로서 나는 남자들이 내 작업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경우 사진은 정치적 선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보다 사적입니다. 모두가 서로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니까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그들은 내 사진 속 여자들이 너무 레즈비언 같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것 같더군요. 속옷 입은 여자만 찍던 사진가들이 바이커 재킷이나 수트를 입고 ‘이게 강한 여자의 모습이야’라고 말하듯이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는 여자들을 찍기 시작했으니까요. 물론 이건 허울일 뿐입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가 더 이상 똑똑해 보이거나 카리스마 있어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거죠.

    폴의 책은 전통적인 남성성에 도전합니다. 기대어 있는 아멜린의 이미지는 권투 선수 드미트리 살리타가 펀치를 날리는 사진과 대조를 이룹니다. 2019년의 남성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남성성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절대 모를 수도 있고요. 드미트리는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브루클린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권투 선수입니다. 그는 유대인이고 안식일에는 경기를 뛰지 않았어요. 그래서 강점과 약점이 공존하죠. 나는 항상 남성성과 공존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남성성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패션이 성전환자 같은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함으로써 전통적인 남성성이 변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도시와 창의적인 집단에서요. 남성성이라는 개념이 구식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 그 단어가 생겼을 때부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는 것 그 이상이에요.

    아멜린은 당신의 뮤즈인가요?

    누구도 진정한 나의 뮤즈는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각각의 개인이고 쉽게 공유될 수 없죠. 이 책에는 폴의 사진이 많습니다. 나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그를 찍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내게 중요한 건 친밀감입니다. 당신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당신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중요하죠. 누군가의 소유권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아멜린과 다른 모델들을 나체로 찍었나요?

    나는 누드를 거의 찍어보지 않아서 폴을 나체로 찍어보고 싶었어요. 그와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 찍었기 때문에 그렇게 다양한 걸 시도할 수는 없었죠. 폴을 찍을 때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를 관찰했습니다. 그의 몸이 드러내는 선과 창백한 피부를요. 조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에서는 그의 몸이 거의 빛나는 것처럼 보여요. 그 모습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의 작품을 떠오르게 했죠.

    누드는 요즘 같은 인스타그램 시대에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내 이미지가 검열된다기보다 그전에 내가 먼저 검열하게 되니까요. 예전에 <리에디션> 매거진 커버 사진으로 프레야 베하 에릭슨의 누드를 촬영한 적이 있어요. 자동차 바퀴 사진을 콜라주해서 그녀의 가슴을 가렸죠. 폴의 책에서는 눈 부분과 잡지 조각을 콜라주해서 그의 성기를 가렸어요. 그런 식으로 대조와 텍스처를 사용해 ‘옷을 입히는’ 건 누드 촬영만큼이나 재미있죠. 폴과 나는 정면 누드 사진을 책에 싣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작업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진으로 콜라주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사진을 보기 쉽게 만드는 동시에 사회가 누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책에는 모델 제임스 크루가 쓴 에세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필자를 골랐나요?

    나는 나이 든 누군가가 쓴 에세이보다는 폴의 동료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어요. 20대 초반의 모델이 또 다른 20대 초반의 모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비슷한 가치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걸 글로 쓸 수 있는 누군가요.

    <폴의 책>에 담은 이미지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완전히 잘못됐다고 느꼈죠. 그건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폴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 아늑한 장소에서 친밀함과 다큐멘터리적인 면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록물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애인이나 타인을 기록한 게 아니니까요. 나는 사진을 이해하지 않는 누군가를 기록해본 적은 없습니다. 나는 폴과 협업했다고 말하고 싶군요.

    내가 폴의 사진을 찍을 때, 그가 사진 찍히는 게 어떤 것인지 의식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점에서 이전 작업물인 <Jens F.>와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그 책에서 내가 찍은 소년은 우리가 앤드류 와이어스 프로젝트를 재연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폴과 나는 <폴의 책>에 사진의 연속성을 담을 생각이었습니다. 그의 집 커피 테이블에는 래리 클락이 찍은 사진을 넣은 작은 액자가 있었고 그의 방 벽에는 피터 후자가 찍은 화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누드 사진엽서가 있었죠. 나는 그 엽서를 들고 있는 폴의 모습을 찍었어요. 내 생각에 폴은 어떻게 이 두 부분을 함께 이용할 수 있을지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워나로위츠처럼 자율성을 가질 수도 있었고 또는 클락의 사진처럼 욕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죠. 그것을 재창조한다기보다는 역사에 그것을 더하고 있는 것처럼요.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of Collier Schorr, MACK
      Liam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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