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페미니즘
임신부의 그림자에서 배가 사라질 수 없듯, 결혼한 ‘나’, 임신한 ‘나’, 모두 똑같은 ‘나’다.
결혼한 여자에게 페미니즘은 존재하나. 우리에겐 각자의 페미니즘이 있다.
트위터에서 ‘기혼 여성은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는 트윗을 봤다. 스스로 가부장제 밑으로 들어가 사회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있으면서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는 건 이중적이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한두 명의 의견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비혼, 비출산이 답이다”라는 말에는 사회에 대한 반감과 체념은 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는 삶을 선택한 여성에 대한 혐오도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기혼자는 페미니즘을 말할 자격이 없었다. 기혼 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보는 대부분은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진 20~30대 남자나 기득권 남성이 아닌 광장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영페미’였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가 다른 자리에서 내 뒷담화를 하는 모습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상처를 받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만큼 일상적인 단어로 떠오른 지는 5년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겪는 불합리가 실제로 불합리를, 이를 표현하는 ‘언어’의 실존을 깨달은 역사는 놀랍도록 짧고 그 온도는 기꺼이 데고 싶을 만큼 뜨겁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던 페미니즘은 우리 각자에게 제각각 ‘찾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남녀 임금격차를 줄일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고도 꽃뱀으로 낙인찍힌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던 순간에, 누군가에게는 외모 강박에 진절머리가 난 순간에 찾아왔다. 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결혼 후’ 찾아왔다. 이 순간은 아이러니하지 않다. 누구든 차별받고 억압받는 순간 꿈틀하는 법이니까.
남자들에게 기회를 빼앗기고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들은 딸들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교육시켰다. 하지만 결혼 후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상견례 자리에서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었는지 매일 확인하겠다는 시아버지의 농담을 들으며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할 삶에 아침밥 같은 사전 단서가 달리기 시작했다. <보그> 지면에 나열할 필요도 없는, 사회가 결혼한 여자들에게 부여하는 의무이다.
결혼과 육아는 LED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 폰을 손에 쥐고 AI에게 명령하는 시대에서 지아비를 섬기고 대를 잇는 수백 년 전 삶으로 순간 이동을 시켰다. 옳다고 믿어온 삶과 현실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겼다. 결혼은 개인을 소멸시키고 아내, 엄마, 며느리 같은 역할을 남긴다. 결혼과 육아는 깨어 있는 매 순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확인시켰다. 우리 집은 ‘처가’인데 왜 남편 집은 ‘시댁’인가, 남편의 마른 몸이 왜 내 탓인가, 남편이 아이를 돌보면 자상한 아빠로 칭송받고 내가 아이를 돌보면 왜 당연한가.
결혼한 여자에게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다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 ‘왜?’의 정체를 어떻게 설명할 건지 묻고 싶다. 거부와 회피로 가부장제가 무너지길 바란다면 이 또한 너무 이상적이다.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부당함을 몸소 느끼며 제기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물론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결혼은 남자들에게 물질적 성적 편의를 제공해줄 뿐 여자들에게는 선택을 수동적으로 하게 하는 부도덕한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했다면, 여성으로 맞닥뜨리는 갈등을 풀고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으로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길 바라는 엄마들의 모임 ‘부너미’는 주로 고충 토로에 머물러 있던 결혼한 한국 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저자 11명이 묶어낸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일상에서 변화를 일궈낸 투쟁의 기록이다. 결혼한 여자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림자 노동 목록을 만들고, 아이를 가진 사람도 비즈니스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창업자 저녁 모임에 아이를 데려가고, 전업주부로서 주 5일 근무제와 월차 제도를 시행한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유모차 대신 ‘유아차’라고 말한다. 이들이 바꿔나간 남편, 부모, 형제자매의 변화는 한 가정에 국한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주 양육자 역할을 하기로 한 남편, 제사를 없앤 시어머니, 옷방이나 서재 대신 각자의 공간을 만든 부부… 이들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그 사람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다.
흔히 여자들이 결혼해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게 한 사람 교육이라고 말한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왜 다 큰 성인을 교육까지 해야 하나 화가 났지만 함께 살아가기로 한 사람조차 바꾸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나. 개인의 변화가 쌓여 사회가 변화한다. 또한 결혼한 여자들이 경험을 나누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시도는 여성 자신도 바꿔놓는다. 부부 사이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육아와 가사 노동이 아내의 의무가 된다면 친정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떨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위, 손자까지 끊어낼 수 없는 노동을 요구하고 당연시하는 주체는 딸 자신 아닐까. 결혼이 여전히 여성을 제약하는 사회제도라면 페미니즘 렌즈는 세대 너머 결혼한 모든 여성의 삶을 비춘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에게 부여되는 딸, 학생, 아내, 회사원, 이웃, 엄마, 할머니 같은 여러 역할에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페미니즘이 있다. 결혼한 여자들의 광장은 매일 먹고 자고 가족들과 부대끼는 ‘집’과 가정을 돌보면서도 임금노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이다.
‘부너미’가 일군 또 다른 성과는 결혼한 여자들의 삶을 글로 썼다는 점이다. 그동안 결혼한 여자들이 겪는 성차별은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지적했듯 직장 일과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나면 손 하나 까딱할 정도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아 대의를 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기는커녕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언어가 필요하다. 은유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폭력이 사라지게 하려면 역설적이게도 폭력에 대해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는 정확히 말해야 하지만 말하기 어렵다면 우리에겐 글이 있다고 했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장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글쓰기다. 말과 글은 산발적으로 떠돌던 생각을 또렷하게 정리해주고 읽고 듣는 수용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페미니스트가 더 많이 말하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결혼한 여자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개인적이지 않음을 보여줬다.
역사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페미니스트를 설명했지만, 나는 문화 평론가 손희정이 내린 정의를 가장 좋아한다. “페미니스트는 완전체로 이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되어가는 과정에 있고 성장해가는 존재들이다. 이 세계에 여전히 성차별이 있고 성차별을 둘러싼 부정의가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 스스로 성장해야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 넉넉한 정의에 따르면 나는 페미니스트다. 개인의 욕망과 부여된 역할 사이에서 매일 모순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지만. 당신은 어떤가.
- 피처 디렉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Dylan Kronen, Courtesy of Trunk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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