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꿈꾸는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

2019.10.21

by 손기호

    꿈꾸는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

    파리의 중요한 문화 공간인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개하는 새로운 전시의 주인공은 샤를로트 페리앙이다. 진정한 모던 디자인을 고민했던 건축가 겸 디자이너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전시를 먼저 살펴보았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전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Charlotte Perriand: Inventing a New World)>

    기간~2020 2 24일까지 

    « Art is in everything, art is in life and it expresse itself in every occasion and in every country. »

    샤를로트 페리앙

    2014년 설립 이래, 빠르게 파리의 주요 현대미술 명소로 자리매김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2019년 하반기 전시는 실내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에게 헌정했다. 페리앙 하면 르 코르뷔지에나 장 프루베와 같은 근대 건축 대부들과의 협력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페리앙은 나이로만 치더라도 자신의 아버지뻘이었던 대가, 르 코르뷔지에의 창작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생활예술 사상가’였으며, 근대사회의 흐름을 누구보다 명확히 꿰뚫어 본 예언자였다. 페리앙의 예지적이고 선봉적인 면모는 그의 서거 20주년을 기리는 기획전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미술관 4층 전관에 걸쳐 펼쳐지는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전은 90대라는 고령까지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디자인과 건축, 도시계획, 크래프트, 순수 미술을 넘나들며 활동한 페리앙의 작품을 총망라한 전시지만, 기존의 건축과 디자인 전시의 수식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있다. 200여 점에 달하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와 스케일 모델, 사진, 스케치 등의 작품과 그와 함께 20세기 모더니즘을 이끈 르 코르뷔지에,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 페르낭 레제와 같은 근대미술 거장들의 페인팅과 조각, 콜라주, 세라믹 작품 등이 아무런 경계 없이 한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건축과 디자인, 예술 사이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생활예술(아르 드 비브르)을 제시하고자 했던 페리앙의 디자인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페리앙은 실제로 다수의 실험적인 전시를 큐레이팅했다. 1955년 페르낭 레제,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술라주, 한스 아루퉁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가구 디자인, 공간 디자인을 집대성한 전시 <예술의 통합을 위한 제안(Proposal for a Synthesis of the Arts)>은 본 전시와 여러모로 맥을 같이한다.)

    연대기적 방식으로 나뉜 11개 갤러리 중 첫 번째 전시관에는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손잡고 ‘모던 하우징’을 정의해나갔던 시기인 20년대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매끄러운 곡선의 철관과 얇은 가죽 시트가 어우러진 <세즈 롱그(Chaise Longue, 긴 의자)>와 <포퇴이 피보텅(Fauteuil Pivotant, 회전의자)> 등 아이코닉한 페리앙의 가구가 칼더의 모빌, 피카소와 페르낭 레제의 페인팅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가 하면, 여성해방을 의미했던 개방형 키친과 크롬 튜브, 유리, 알루미늄 등 공업용 소재 사용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생쉴피스(Saint-Sulpice) 아파트의 주방 공간을 재현한 스케일 모델도 만나볼 수 있다.

    20세기 초 산업의 진보와 기계적 미학을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페리앙은 3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능성과 합리성만 강조한 근대 디자인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전시관의 두 번째 갤러리에는 이 시기에 촬영한 자연이 만들어낸 조형적인 디테일을 담은 페리앙의 사진과 유기적인 곡선을 지닌 가구, 기계와 자연의 모티브가 공존하는 페르낭 레제의 역동적인 페인팅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자동차, 영화와 같은 근대 산물에서 자연과 환경으로 관찰의 대상을 점차 넓혀간 페리앙은 40년대에 일본과 브라질이라는 낯선 타지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경험하면서 또 한 번 전환기를 맞는다. 페리앙의 현대적 미학과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소재, 현지 장인들의 전통적인 기술을 결합한 가구와 공간 디자인은 전통과 현대적 생활공간의 완벽한 접점에 이른 듯 보인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는 재단 미술관 전체를 샤를로트 페리앙에게 헌정한 이 기획전의 합당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페리앙 작업의 매우 명백한 ‘동시대성’에 있다고 말했다.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공간, 전통과 현대 기술의 대화가 깃든 공간, 타지 문화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개인의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 일상의 공간을 사유하는 포용적이고 다층적인 시선이야말로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업이 갖는 동시대성의 원천이 아닐까?

    에디터
    손기호
    정혜선(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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