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지속 가능한 모험

2019.12.03

by VOGUE

    지속 가능한 모험

    고급 원단을 다루는 이탈리아 브랜드가 있다.
    겸손하고 근면한 이들이 패션계에 유행이 돼버린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

    로로 피아나가 뤽 자케 감독과 하우스의 주요 섬유에 대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영상이 이 고급 원단으로 의류를 만드는 점잖은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거라고 했을 때, ‘아, 또 지속 가능성이군’이라고 생각한 건 나 혼자가 아니다. ‘지속 가능성’은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섹시’한 키워드다. 많은 패션 브랜드와 하우스가 이 개념을 유행하는 마이크로 백처럼 남발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세상에서 품질에만 몰두해온 하우스가 유행하지 말아야 할 유행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뤽 자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브랜드가 지속 가능성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남극의 추위를 견디며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애쓰는 황제펭귄 무리의 모습을 담은 <펭귄-위대한 모험>으로 2006년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늘 자연과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죠.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 나의 고민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자케는 2010년에 영상물을 통해 환경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 ‘와일드 터치’를 설립했고 자연과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수많은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결국 큰 규모의 회사나 브랜드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설득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10월 18일 밤, 상하이 MIFA 1862 아트센터에서 3부작의 첫 번째 시리즈인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을 공개했다. 어떤 내레이션도, 자막도 없는 이 작품은 명상적이며 시적이다. 거기에는 내몽골과 외몽골에서 유목민의 삶을 사는 목동과 그들의 염소 떼 그리고 사계절이 있다. “너무 쉬운 일이었어요. 거기에 이미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내가 무엇을 의도하거나 연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캐시미어의 기원에 흥미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것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지만 생각하면 됐어요.”

    이 아름다운 영상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로 피아나에 최고 품질의 캐시미어를 제공하는 몽골 목동과 염소 떼가 공생하는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척박한 야외 환경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지내는데, 지금도 캠핑카가 아니라 전통 천막집 게르를 치고 산다. 세계 구석까지 샅샅이 스며든 유니클로 파카나 나이키 운동화도 이들의 낡은 전통 복장을 대신하지 못했다. “그들이 사는 방식을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과거 어느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과 너무 다르죠.” 목동과 염소 떼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절과 날씨의 변화는 그들에게 다음 할 일을 알려준다. 날씨와 환경이 열악할수록 캐시미어 염소의 털은 더 부드러워진다. 로로 피아나의 CEO 파비오 디안젤란토니오는 놀랍다는 듯 말한다. “독특한 대비죠.”

    하지만 몽골의 자연과 유목민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감상적 이미지만으로 로로 피아나의 지속 가능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프리미어 상영일 밤, 피에르 루이지 로로 피아나 회장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동안 더 질 좋은 캐시미어와 비쿠냐, 메리노 울을 생산하기 위해 지속해온 노력과 놀라운 성취에 대해 설명했다. “이 결과는 플라스틱처럼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더 놀랍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지속적인 헌신을 통해 일궈낸 것이죠.” 이들은 캐시미어 염소를 기르는 목동과 사육자들이 동기부여를 통해 더 좋은 섬유를 만들어내도록 2015년부터 ‘올해의 캐시미어’ 상을 시상해왔다. 매년 전 세계 250만 타래(Bales)의 섬유를 받아 그중 가장 굵기가 가는 섬유를 선정하는데, 첫해에 수상한 캐시미어 섬유는 14미크론이었고 4년 후인 올해는 13.6미크론까지 줄어들었다. 미크론은 1mm의 1,000분의 1 단위로, 섬유가 가늘수록 원단은 가벼우면서 따뜻하다. 로로 피아나는 더 질 좋은 섬유에 더 나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목동과 사육자들이 염소의 수를 늘리지 않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우리는 계속 돌아가는 엔진의 기어입니다. 엔진을 돌리기 위해 원료가 있어야 하고 그 원료를 댈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 원료를 가져다가 가공해서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눈 쌓인 몽골 언덕의 염소 떼와 목동.

    이탈리아 하우스가 이들의 삶이 잘 유지되도록 돌보는 또 다른 이유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목동의 아이들이 가업을 이어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로로 피아나 사업의 근원과 다름없는, 이 놀랍도록 보드라운 천연섬유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혹은 더 향상시키면서 사업을 지속할 유일한 방법이다. 뤽 자케 감독은 다시 말한다. “지속 가능성을 의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지속 가능한 브랜드였으니까요. 이들에게 이 모든 것은 순수하게 사업 유지를 위한 현실입니다. 지속 가능성을 유지해야만 이들은 수익을 낼 수 있죠.”

    로로 피아나의 3부작을 촬영한 뤽 자케 감독.

    최근 이들이 염려하는 것은 캐시미어 의류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다. 캐시미어 섬유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방목하는 염소 떼의 수도 늘고 있는데, 이 염소들이 먹어 치우는 풀뿌리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과 몽골 정부는 아직 이런 사태에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이동하면서 염소 떼를 먹이는 목동들의 특성상 몽골의 초원이 벌거숭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CEO 디안젤란토니오는 담담하게 말한다. “소규모 염소 떼로 더 질 좋은 섬유를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땅이 황폐해지면 동물도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목동들의 노하우, 전통과 장인 정신도 함께 사라지겠죠.”

    뤽 자케와 촬영팀은 촬영 중에도 염소 떼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목동은 등장인물로 촬영에 참여하는 동시에 염소도 돌봐야 했다. “보통 영화에는 출연 배우와 세트가 있어 반복 촬영할 수 있지만 우린 불가능했어요. 한겨울에 눈 속에 있는 염소들을 반복해서 찍을 수는 없으니까요.” 감독은 적합한 인물을 찾고 섭외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어떤 장면도 연출된 것이 아니다. 자케는 촬영하는 동안 인내심을 발휘한 목동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촬영은 정말 지루한 일입니다. 하지만 목동 가족은 매우 협조적이고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했어요.” 목동들은 이 사려 깊은 촬영팀이 마음에 들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은 촬영이 끝나자 자케 감독에게 호기롭게 낙타 한 마리를 선물했다. 이 낙타는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낙타 무리 중 한 마리다. “매우 털이 많고 보드라운 낙타랍니다. 하지만 몽골에서 프랑스까지는 너무 먼 거리라서 목동 가족이 내 낙타를 돌봐주고 있어요. 쌍봉낙타는 프랑스 기후에 맞지 않죠. 몽골에서 살아야 합니다.”

    캐시미어 섬유의 원천인 히르커스 염소와 몽골의 목동.

    이 순간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지속 가능한 방식을 도입하겠노라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생산 라인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것은 지난 시즌 스트래피 샌들을 잔뜩 만들었던 공장에서 이번 시즌에는 컴뱃 부츠를 찍어내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근본적이며 대대적인 변화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패션계의 은둔자였던 이 하우스가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어온 방식은 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자연과 환경을 돌보는 것이 부수적 업무가 아니라 사업의 일부로 함께 가는 방식 말이다. 자케 감독은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과 함께 사는 목동의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들이 이 세상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자연과 감정적으로 이어진다면 지구에서 미래를 맞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당신은 나의 세상을 본 겁니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of Loro P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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