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 말고, 내추럴 간장
지난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마르쉐@에 갔다가 좀 특이한 전시(?)를 봤습니다. 다름 아닌 간장 전시. 간장 전문 브랜드인 ‘어프로젝트가 장집(醬集)’에서 단출한 간장 전시를 열고 있더군요. <참간장어워즈 2019>를 통해 지난 10월 시민위원회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맛 좋은 국내산 한식 간장 8종을 선정했거든요. 구본일 간장, 대숲맑은 우리콩간장 수, 더건강한 백말순 간장, 방주 제주푸른콩간장 농후, 보성 이금숙 전통간장, 살래다 한식간장, 솔뫼 전통간장, 아미산 쑥티간장 등입니다. 이런 간장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지, 어떤 맛이 나는지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잠시 간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와인으로 비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의 간장은 잘 아시는 대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됩니다. 통제된 효모로, 통제된 환경에서 콩을 간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진행되죠. 재료는 자연이지만 생산 과정은 모두 인간의 의도대로입니다. 와인과 같죠.
요즘 내추럴 와인을 많이 드실 텐데요, 간장에도 내추럴이 있습니다. 원래도 와인은 공기 중의 효모가 포도의 당을 먹으며 성질을 변화시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인공을 가하지 않고 만드는 것이 내추럴 와인이죠. 간장도 똑같이 공기 중의 효모의 힘으로 발효되고, 만드는 사람, 노하우, 환경, 재료에 따라 다른 향과 맛을 냅니다. 어프로젝트가 장집의 간장은 그런 의미에서 내추럴 간장이라고 말할 수 있죠. 공장에서 판박이로 생산되는 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맛간장의 천편일률적인 맛 대신에, 간장이 태어난 곳의 자연이 그대로 담긴 간장입니다.
그 간장 8종을 테이스팅 키트로 구성한 흥미로운 펀딩도 진행합니다. 언제나 훌륭한 셀렉션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농사펀드’ 사이트 https://farmingfund.co.kr/products/3181에서 2만원대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 중이에요. 전시에 나온 어워드 수상 간장 8종을 20ml씩 담은 작은 플라스틱병이 한 박스에 담겨 있어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 그리고 나의 취향 정도를 기록할 수 있는 테이스팅 노트도 함께 제공합니다. 테이스팅 방법은 한 방울씩 빨대 등으로 덜어 손등에 찍거나 티스푼에 담아 맛보는 거죠.
전시에서 8종을 모두 맛보았습니다. 어느 간장은 소고기 등심 로스구이와 잘 어울리는 스모키한 맛, 어느 간장은 기름 쫙 오른 방어회와 잘 맞는 상큼한 맛, 어느 간장은 나물무침을 만들고 싶은 구수한 감칠맛이 있더군요. 8종의 간장이 모두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미 우리 입맛을 길들인 현대식 공장 간장도 좋지만, 가끔은 음식에 맞춰 이 간장 저 간장 써보면 어떨까요? 분명 취향을 저격하는 간장의 신세계가 펼쳐질 거예요. 올 연말 파티에는 다양한 음식과 간장 8종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의 간장 취향을 찾아주려 합니다.
-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사진
- 참간장어워즈, 농사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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