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피자, 올드 스쿨 vs. 뉴 스쿨
몇 해 전 뉴욕 시장 빌 더블라지오가 취임한 직후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피자집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피자를 먹는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대체 어떤 뉴요커가 (손이 아닌) 포크와 나이프로 피자를 먹는가?”라며 경악했죠.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이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원래 이탈리아에서는 그렇게 먹는다”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피자는 아무리 치즈와 올리브유가 흘러도 손으로 들고 접어서 먹는 것이 뉴욕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분노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매체에서 보도할 정도로 파장이 컸습니다.
이 모든 논란은 물론 반쯤 농담입니다. 진정한 뉴요커인지 검증하는 것은 원래 뉴욕 사람들의 오래된 유희죠. 하지만 뉴욕 사람들이 피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입니다. 뉴욕 피자가 나폴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피자의 본고장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있는지도 별 상관이 없죠. 그들에게 뉴욕 피자는 뉴욕의 전통 음식이니까요!
그래서 뉴요커들은 숙취에 시달리는 주말 아침, 부스스한 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동네 조각 피자집부터 친구가 뉴욕에 여행 올 때 꼭 데리고 가야 하는 피자집까지, 누구나 자신만의 ‘최애’ 피자집 리스트를 가지고 있답니다. 뉴욕 최고의 피자에 대한 논쟁도 역사가 깊어요. 우리나라 냉면 애호가들이 평양냉면집의 계보를 줄줄 읊으며 어떤 스타일이 가장 맛있는지 논쟁을 벌이는 것처럼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 피자집과 새롭게 등장한 신흥 피자집 간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롬바르디스 피자(Lombardi’s Pizza)
1905년 맨해튼 리틀 이탈리아에 오픈한 롬바르디스 피자는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곳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오래된 곳임은 분명합니다. 접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얇으면서도 바삭한 도우에,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올려 화덕에 구운 뉴욕 스타일 피자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죠. 나무가 아니라 석탄 화덕에 굽는 것이 특징입니다. 온도가 높으면서 불꽃이 적은 석탄 화덕 덕분에 이곳 피자는 한 판 크기가 꽤 커서 아주 푸짐합니다.
로베르타스(Roberta’s)
로베르타스가 2008년 브루클린에 문을 열기 전 부시윅은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강력 범죄 뉴스에나 등장하던 이 동네에 힙스터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데는 이 피자집의 공이 크죠. 석탄이 아니라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오븐에서 피자를 굽기 때문에 피자 한 판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고 피자 크러스트의 끝부분은 탄 것처럼 살짝 그을려 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그냥 남기기엔 살짝 탄 탄수화물 특유의 고소한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디 파라 피자(Di Fara Pizza)
1964년에 문을 연 브루클린의 디 파라 피자는 이탈리아보다 더 이탈리아 같은 피자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치즈는 나폴리 근교의 카세르타(Caserta)에서 만드는 카사풀라(Casapulla) 모차렐라 치즈를, 토마토는 길쭉한 고추같이 생긴 이탈리아의 산 마르차노(San Marzano) 토마토를 쓰죠. 지금도 창업자 도메니코 데마르코(Domenico DeMarco) 할아버지가 직접 피자를 만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답니다. 피자 한 판이 완성되어 테이블까지 오는 시간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루칼리스(Lucali’s)
루칼리스 홈페이지에는 “5시쯤 오셔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어디 가서 한잔하고 계세요. 테이블이 나면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어요. 그러니 대기하는 1~2시간은 맘 편하게 그냥 식사 시간의 일부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주로 생모차렐라를 쓰는 뉴욕의 다른 피자집과 달리 숙성 모차렐라와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섞어서 토핑을 만듭니다. 여기에 듬뿍 뿌린 생바질잎의 향긋함까지. 이제 10년 남짓 된 피제리아지만 벌써 뉴욕 피자 명가와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 글
- 신현호(칼럼니스트)
- 사진
- Instagram, Abac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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