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10 TO 20

2019.12.19

by VOGUE

    10 TO 20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의 역사를 20가지 키워드로 압축한〈보그〉 뷰티 바이블.

    PHOTOGRAPHER 이신구

    1. NICHE.COM
    2012년 조 말론 런던, 2014년 딥티크 국내 론칭은 5만원대 패션 향수가 판치던 한반도에 니치 향수 열풍을 이끌었다. 여기에 캔들, 디퓨저 등 리빙 퍼퓸 열풍이 맞물리며 니치 시장의 몸집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니치 향수의 성공은 좋은 원료를 알아보는 수준 높은 소비자의 형성을 뜻한다. 한국의 유별난 향수 사랑에도 K-퍼퓸의 현실은 여전히 물음표투성이. 근본적 이유는 열악한 조향사 배출 환경이다. 니치 향수 붐을 틈타 우후죽순으로 생긴 조향사 양성 아카데미는 실력 있는 강사진은커녕 원료 수급조차 불투명한 곳이 수두룩하다. 대기업이 해외 유명 조향사를 스카우트하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에르메스는 하우스 퍼퓨머에게 무한의 시간을 약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예술품을 대하듯 향수 한 병에 장인 정신을 담는 것이다.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기업 중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향에 투자할 회사가 얼마나 될까. 유럽은 현재 니치 향수를 넘어 ‘초고가 향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샤넬 부티크의 익스클루시브 라인이 좋은 예다. 한국 소비자의 향에 대한 의식 수준은 이미 필요 이상으로 높고 더 높아질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 니치 향수 조향사는 한 손에 꼽지만 이 추세라면 역전의 순간은 온다.

    —느바에(살롱 드 느바에)

    PHOTOGRAPHER 김보성 / MODEL 하현재 / HAIR 최은영 / MAKEUP 이나겸

    2. IRON MAN
    2013년 뷰티 디바이스 시장은 800억원 규모에서 2018년 5,000억원으로 여섯 배 이상 확대됐다. BNK투자증권은 2022년 1조6,000억원 규모의 성장을 예측한다. 메이크온 방은주 BM은 “2010년대 초반 LED와 고주파, 초음파로 피부 관리에 초점을 맞추던 뷰티 기기가 최근 피부 진단과 이에 준하는 맞춤 관리를 한 번에 끝내는 수준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관리 범위 또한 얼굴에서 목으로 확대됐다. 펜티 뷰티 글로벌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리실라 오노는 영화 <제5원소>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사용한 뷰티 머신의 현실화를 예언한다. “LED 마스크처럼 얼굴만 갖다 대면 알아서 화장이 되죠. 당장 사고 싶지 않나요?”

    3. THE UNICORN
    이 단어에 뿔 달린 전설의 동물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을 일컫는 유니콘은 이제 뷰티 월드의 핵심어가 됐으니 말이다. 패션 기업은 이미 유니콘 세계에서 유의미한 지분을 차지한다. ‘스니커즈계의 애플’로 칭송받는 올버즈(Allbirds)와 ‘모두를 위한 속옷’을 표방하는 써드러브(ThirdLove)가 대표 사례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뷰티업계의 지분이 급상승하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 ‘듣보’ 스타트업에서 블록버스터급 브랜드로 성장하는 뷰티 기업의 성공 비결은? 화장품은 옷이나 신발에 비해 사이즈 고민이 없고, 환불 건수가 적다. 또 수백만 팔로워를 지닌 뷰티 인플루언서는 누구보다 막강한 셀링 파워를 지닌다. 아나스타샤 베버리힐즈, 팻 맥그라스 랩스, 카일리 코스메틱, 글로시에, 드렁큰 엘리펀트를 이을 후발 주자는?

    4. MEN IN BLACK
    10년 전만 해도 ‘뷰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도, 그들을 위한 뷰티 창구도 전무했다. ‘남자도 가꾸는 시대’란 허울 좋은 말뿐 실제 공감 지수는 제로. 그러나 지금 ‘뷰티’는 남자들의 일상에 있다. 피부 고민은 기본,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주제 또한 무궁무진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개의치 않고 선을 지키는 무리도 있다. ‘올인원 로션’에 올인하는 ‘직진남’들이다. 남자에게 올인원 로션이란 여자의 쿠션 팩트와 다름없다. 완벽하진 않지만 사용이 쉽고 간편하다. 그래서 향후 그루밍 트렌드를 논할 때 자신 있게 예측할 트렌드도 ‘올인원’이다. 남자 메이크업 시장은 어떨까? 베이스 제품의 대중화보다 시술의 힘을 빌리는 쪽에 한 표. 피부는 매끈하게, 퀭한 눈 밑은 차오르게, 입술은 혈색 있게 가꿀 남성 맞춤 시술은 꾸준히 발전할 테고, 피부과 문턱은 닳고 닳아 아버지들이 자주 가는 사우나 역할을 피부과가 대신할 시대가 머지않았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면도기의 진화. 날 면도기와 전기면도기 모두 100년 전 초기 디자인에 멈춰 있지만 레이저 제모 기술 발전 속도에 비춰볼 때 2030년엔 면도와 제모를 겸하는 완전체가 나올지 모른다.

    —황민영(뷰티 스페셜리스트)

    5. K-FACE
    전 세계가 인정한 성형수술 강국 한국. 성형외과 전문의 김유명은 단편소설 <내일의 페르소나>를 통해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풍자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거울로 보는 내 얼굴. 클렌징 오일로 닦은 이 얼굴을 이렇게 병실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다니. 이제 이 얼굴 다시 보지 않으면, 점점 잊어버리겠지? 아냐. 미련 갖지 말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도 싹 다 지워버리고, 새 계정을 만들 거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쌓아가야지. 내일만 생각하자. 내일이면 이 짧은 코와는 영원히 작별이야. 이 동글동글한 얼굴과도…

    일찍 자야 하는데, 정말 잠이 안 오네. 내일이 수술인데 이렇게 안 자면 어떡해.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술받아야 할 텐데. 간호사에게 수면제라도 있는지 물어볼까? 아냐, 12시부터 금식이라고 했는데 안 될 거야. 그나저나 줄기세포로 만든 새 얼굴은 정말 잘 만들어졌을까? 잘 만들어졌다면 왜 오늘 안 보여주는 거지? 진짜 세균이라도 묻을까 봐 그러나? 배에서 주사기로 지방만 뽑았는데, 정말 피부도, 뼈도, 연골도 만들어졌을까? 설마 실리콘 보형물 같은 걸 심어서 만들어주는 건 아니겠지, 그 비싼 수술비를 받고?
    세 명의 연예인은 잘 선택한 걸까? 컴퓨터로 합성을 해서 만든 얼굴을 3D 프린터로 조직을 만들어낸다니 보여준 그대로 나오겠지? AR(증강 현실)로 보여준 그대로만 된다면 너무 예쁠 것 같아. 짧은 이 코도 쭉 뻗은 코로 바뀌고, 둥글넓적한 이 얼굴도 갸름한 계란형으로 변하는 거니까. 가면을 쓴 것처럼 가장자리 따라 흉터가 남진 않겠지? 만약에 생기면 흉터 제거도 줄기세포로 AS 해준댔으니까 믿어봐야지.
    그런데 혹시 그 배우들이 자기들의 얼굴을 합성한 걸 알게 되면 어쩌지? 뭐 초상권 같은 거로 소송을 걸진 않을까,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면서? 아냐, 1억원이나 냈는데 그건 병원에서 알아서 해야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변호사도 아닌데.
    너무 비싸긴 해. 1억. ‘절대미’를 향한 티켓치고는 싼 건가? 새로운 얼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 얼굴을 가질 수만 있다면, 결코 비싼 건 아닐지 몰라. 원장님이 약속한 새 얼굴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가져올 거야. 수술을 받고 아예 고향에 내려가지 말까? 여기서 새로운 직업도 구하고? 아, 근데 엄마가 보고 싶진 않을까? 아냐, 어차피 엄마가 날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엄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면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해. 그래도 두 달 동안 예전 얼굴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준다니 다행이야. 마음에 안 들면 원래 얼굴을 도로 붙여준다잖아. 근데 두 달은 너무 짧지 않나? 두 달 지나서 맘 바뀌면 또 어떡해? 아이참, 옵션을 좀 더 길게 할 걸 그랬어. 아냐. 지금만 해도 돈이 얼만데. 잊자. 이 얼굴 수술 끝나면 바로 버려달라고 하자. 그래, 괜히 고민할 거야. 아예 버려야 해.
    새 얼굴 아까 AR로 봐선 딱 마음에 들던데. 이제 그 얼굴이면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여자가 되는 걸까? 그 누굴 새로 만날 수 있을까? 오빠가 좋아한다던 배우 얼굴을 섞었으니 분명 다시 날 좋아할 거야. 그럼 빠져들고 말고. 부기만 빠져보라지. 그땐 오빠가 울고불고 매달리게 만들고 말 거야.
    아냐, 오빠를 또다시 괴롭히진 말자.
    사랑은 그런 게 아니잖아.
    사랑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ILLUSTRATION 무나씨

    6. HEAVY MENTAL
    10년 전 우울증은 ‘남’의 일이었다.
    이제는 대중적 질병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됐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황에 따르면 젊은 환자들의 정신과 이용이 다른 연령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2017년에는 20~29세에서 정신과 진료비 증가율이 전년 대비 10.2% 증가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기성세대와 달리, 정신과 진료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 이 세대의 특징이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이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에 걸리듯,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인생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결론은 내가 늘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의 ‘뼈 때리는’ 조언이다.

    7. AIRPOCALYPSE
    2014년 1월 초 베이징 미세먼지 농도는 ㎥당 993㎍을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인 ㎥당 25㎍의 약 40배에 달하는 최악의 수치. 한반도에도 적색경보가 울렸다. 2019년엔 미세먼지보다 건강상 위해가 큰 ‘초미세먼지’가 추가로 유입되며 마스크 없인 외출도 없는, 그야말로 국가 재난 수준. 미파문피부과 문득곤 원장은 “초미세먼지가 모공을 뚫고 진피 깊숙이 침투해 노화를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홍콩의 경우 피부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줄 국소 항산화제 처방이 늘고 있어요. 인도에는 미세먼지보다 작은 초미립자 보습 크림이 등장했는데 오염 물질이 피부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죠.” 한반도를 뒤흔든 미세먼지 사태로 이제 화장품 개발 시 ‘안티폴루션’ 기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 메이크프렘은 미세먼지 차단 효과를 넘어 피부 장벽을 강화하는 ‘프리-안티폴루션’ 스킨케어 라인 개발이 한창이다. 모발은 미세먼지 방어 영역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8. COSMECEUTICAL
    2017년 기획재정부가 만든 시사용어경제사전에 생경한 단어가 등장했다. 코스메틱과 약학의 합성어인 ‘코스메슈티컬’. 2000년 CNP차앤박화장품으로 시작한 더마코스메틱 신드롬은 2018년 특허 성분을 보유한 제약 회사의 가세로 더 치열한 경쟁이 예측된다. ‘마데카솔 연고’의 모태 동국제약의 센텔리안24 ‘마데카크림’, 일동제약의 퍼스트랩 ‘프로바이오틱 크림’을 필두로 지난달 ‘박카스’, ‘노스카나겔’을 히트시킨 동아제약이 스킨케어 브랜드 파티온을 론칭했다.

    9. SUSTAINABLE
    화장품 효능만 보고 구매한다면 그건 순전히 ‘나’를 위한 구매 행위다. 그러나 ‘나’를 있게 하고 지탱하는 환경과 지구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나 자신만 생각할 수 없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비건(Vegan)’이라는 개념은 1944년 영국에서 탄생했다. 수많은 비건 인구를 중심으로 비거니즘(Veganism)이라는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유럽과 반대로 국내 비건 뷰티 시장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11년 이후 러쉬, 더바디샵 등 해외 유명 비건 코스메틱 브랜드가 수입됐고 이들의 마케팅을 통해 비건을 접한 고객이 늘면서 비건 코스메틱을 출시하는 기업이 생겼다. 초창기 ‘비건=순수 채식주의’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출발한 비건은 식품은 물론, 화장품, 패션, 케이터링 서비스 등 생활하면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범위가 포괄적이고 다각화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천연·유기농으로 떠올랐던 기존 자연주의 화장품의 인기에 힘입어 동물 복지와 환경보호까지 생각하는 비건 화장품이 급부상했다.
    그랜드 뷰 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2017년 129억 달러의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208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기업과 이를 요구하는 고객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위해 비건 뷰티는 그린 라이트를 반짝일 것이다.

    —박희경(하우스부티끄)

    COURTESY OF GUCCI BEAUTY

    10. FASHION INTO BEAUTY
    샤넬, 입생로랑, 톰 포드…, 강렬한 로고 플레이가 시선을 압도하는 패션 하우스의 뷰티 라인은 우리 여자들의 파우치를 풍족하게 했다. 2018년 지방시, 2019년 D&G에 이어 2020년엔 더 화끈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1월 말 한국에 상륙하는 구찌 뷰티를 시작으로, 에르메스 역시 3월 뷰티 사업 출격을 앞뒀다. 에르메스 대표 악셀 뒤마는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했다”는 포부와 함께 “컬러가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며 메이크업 라인 출시에 대한 힌트도 흘렸다. 지금 이름을 공개할 수 없지만 향수로 시작해 패션 사업으로 저변을 넓힌 하이엔드 퍼퓸 브랜드 역시 하반기 뷰티 라인을 선보인다.

    PHOTOGRAPHER 김보성 / MODEL 김희원

    11. RE:BOOB
    1900년대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남긴 조선 풍속화에는 저고리 아래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들이 나온다. 기생이 아니라 필부들이 밭일하고 애 키우고 빨래하는 와중에 포착된 모습이다. 미개한 동양의 작은 나라를 신기해하는 시선이 담겼다. 당시 여자들이 가슴을 드러낸 게 ‘아들을 낳아 여성으로서 의무를 다했다’는 표시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때가 오히려 좋았다고 한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조상님들의 가슴은 편안했을 거다. 그 후 100년간 세상이 어떻게 변했나? 실로 <베테랑>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자의 가슴은 문젯거리가 되었다. 야하게 보지 않으면 야하지 않은데, 야하게 보니까 야해지는 거. 그 일이 우리 신체에 일어났다. 마음 아프지만 설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영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을 선언하고, 속옷 회사가 브라렛 매출 신장에 환호하고, 패션지가 와이어와 푸시업과 볼륨 패드에 앞다퉈 사망 선고를 내린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걸핏하면 ‘걔가 오늘도 브라를 안 하고 사진을 찍어 올렸답니다’라는 사이버불링 선동 기사가 포털 뉴스를 장식했다. 한국 사회가 자유로운 영혼을 보유할 자격이 없어서 설리는 우리를 떠났고, 어느 언론사는 부고에서조차 그를 ‘노브라의 아이콘’이라 명명했다. 남겨진 우리는 그가 시작한 자리로 되돌아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내게는 내 몸이 원하는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실천에 옮길 용기가 있는가. 누가 동참할 것인가.’ 여성에게서 가장 돌출된 장기라는 이유로 가슴은 여전히 핍박받고 있다.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자 드러내선 안 될 금기로, 열망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누군가는 클수록 좋다 하고 누군가는 그 장기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짐작만 하게 해도 발작하는 기관으로, 가슴은 거기에 존재한다.

    —이숙명(칼럼니스트)

    PHOTOGRAPHER 김선혜 / MODEL 배윤영 / HAIR 최은영 / MAKEUP 이영 / NAIL 최지숙(브러쉬라운지)

    PHOTOGRAPHER 장덕화 / MODEL 제이미 / HAIR 최은영 / MAKEUP 이숙경 / NAIL 최지숙(브러쉬라운지)

    12. MLBB
    호주 출신 뷰티 인플루언서 릴리 메이맥에 의해 탄생한 뷰티 신조어 ‘MLBB’는 ‘My Lips But Better’의 약자로 ‘내 입술과 비슷하지만 좀 더 예쁜 입술’을 말한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컬러 표현으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브라운과 레드를 섞은 MLBB의 정석 ‘마르살라’는 색채 연구소 팬톤이 지정한 2015년 핵심 컬러로 급부상, 업계에선 “말린 장미 꽃잎을 닮은 ‘MLBB 립스틱’이 브랜드를 먹여 살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동안 이어질 ‘노 메이크업 메이크업’ 트렌드에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니 MLBB 열풍은 2020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보그>의 조언이라면, 마르살라 립스틱 위에 투명 립글로스를 얹어 ‘비닐’ 효과를 연출하는 것.

    PHOTOGRAPHER 이신구

    13. INNER PEACE
    레몬 디톡스, 오일풀링, 저탄고지, 방탄커피, 밀크어터…, 10년간 명멸한 신종 식이요법이다. 비교적 간편한 레시피에 식사 대용으로 각광받았지만 뷰티 컨설턴트 안미선은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지 않으면 체중 감량 효과는 제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 빈틈을 채워준 ‘비타민’은 영양 보충을 뛰어넘어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멀티플레이어. 한편 헬스 트렌드를 이끄는 한국 의술의 힘은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더 클리닉 김명신 원장은 “이제 소변으로 대사 균형 검사가 가능한 시대”라 말하니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건강 검진을 할 날이 머지않았다.

    PHOTOGRAPHER 김경동

    14. IT GIRL
    리한나, 카일리 제너, 미란다 커, 빅토리아 베컴, 레이디 가가. Z세대가 열광하는 밀레니얼 뷰티 퀸이다.
    리한나는 펜티 뷰티의 성공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이 됐고 카일리 코스메틱의 2020년 예상 매출은 무려 1조1,448억원. 얼마 전 국내 상륙한 세포라 코리아는 이들의 성공 비결로 ‘소통’을 꼽는다. 이처럼 뷰티 사업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면서 셀럽 파워를 앞세운 신생 브랜드가 우르르 등장했다.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박초희 교수는 “타사 제품을 모방한 제형과 성분에 그럴듯한 포장과 SNS 스타를 앞세워 새로운 제품인 양 판매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연성대 뷰티스타일리스트학과 이은주 교수도 셀럽 뷰티의 어두운 현실을 지적한다. “10년 전 어느 조사에 따르면 화장품 원가에 연구 개발비는 고작 1.8%를 차지해요. 문제는 이마저도 제로에 가까운 ‘속 빈 강정’이 수두룩하다는 거죠.”

    15. E-COMMERCE
    신상 립스틱을 손에 넣기 위해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발을 동동 구르던 것도 이제 추억이다. 눈 깜짝할 사이 한국 뷰티 쇼핑 메카는 백화점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했으니 말이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뷰티 시장의 성패는 전자 상거래를 뜻하는 ‘e커머스’ 에 달렸다. 변화의 물결을 타고 글로벌 뷰티 브랜드는 앞다퉈 인스타그램 계정에 쇼핑 태그를 걸었고, 온라인 매출이 백화점을 앞섰다. ‘직구’ 열풍이 빠지면 아쉽다. 네타포르테 뷰티 디렉터 뉴비 핸즈의 추천은? 날렵한 페이스 라인을 위한 크리스털 롤러와 괄사.

    16. INSTAGRAM SCOUT
    인스타그램이 세상에 나온 2010년 이후 모델 데뷔의 새로운 터널이 뚫렸다. ‘인스타그램 스카우트’다. 여기에 남다른 개성과 매력이 각광받고 개개인의 기호를 존중하는 ‘나나랜드’ 신드롬과 맞물려 온 세상이 ‘신인류’에 주목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
    뷰티 월드는 천편일률적 미의 기준을 깨부술 새 얼굴에 목말라 있다.

    17. CLEAN & CLEAR
    2018년 세포라가 ‘클린 앳 세포라(Clean at Sephora)’란 이름의 ‘클린 뷰티’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유해 성분을 최소화한 ‘착한 화장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같은 해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 탄생으로 클린 뷰티를 실천하는 소비자가 늘었고, 이런 흐름에 맞춰 브랜드는 미국 환경 단체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 성분 10개 미만의 최소 성분 화장품에 이어 단 하나의 유효 성분만 담은 단일 성분 화장품이 주목받는 이유.

    18. DIVERSITY
    내 이름은 미아. 뉴욕에서 활동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다. 예부터 ‘아름다움’을 논할 때면 하이힐만큼 높은 기준이 요구됐다. 16세기 유럽은 코르셋, 중국은 전족 문화가 있었고 2000년대 미국 잡지와 TV 광고는 말라깽이 모델들이 점령했다. 2019년 1g에 집착하며 끼니를 거르는 냉혹한 모델계에서 나는 여전히 ‘튀는’ 존재다. 우리는 과연 마른 몸에 대한 열망을 멈출 수 있을까? 족쇄 찬 아름다움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8사이즈여도 당당한 내가 그 증거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다양성’이다.
    그러기 위해 거대 기업과 대중매체는 획일적 미의 기준을 탈피한 의미 있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배포해야 한다. 매 시즌 미의 새 기준을 제시하는 패션계는 범접할 수 없는 컴퓨터 미인 대신 신선한 매력의 뮤즈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포용하자. 건강한 ‘자기애’는 새 시대의 필수 덕목이자 자기 발전의 기폭제다. —강미아(모델)

    19. FOREVER K
    2013년 사용이 쉽고 간편한 쿠션 팩트와 시트 마스크가 미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K-팝 스타의 ‘빛’ 피부는 한국 여자들의 치밀한 자기 관리를 증명하는 지표가 됐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K-뷰티’ 타이틀 아래 신뢰를 얻었고, 점잖은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에 짜릿한 자극제가 됐다. 전 세계 뷰티 구루들이 모이는 ‘뷰티콘’에 아모레퍼시픽이 등장하면서 K-뷰티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왕좌에 올라섰다.
    K-뷰티는 쿠션 파운데이션, 1일 1팩 신드롬 그 이상의 의미다. 탁월한 품질, 합리적 가격, 참신한 컨셉, 응집력 강한 한국 뷰티 커뮤니티와 깐깐한 리뷰, K-팝 열풍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나라는 우주 통틀어 대한민국뿐. 어느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47%가 “아직 K-뷰티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K-뷰티는 아메리카 대륙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새로움’보다 즉각적 효능의 제품 개발에 초점을 맞춘 채 말이다. 여기에 사회적 책임은 필수. 불필요한 포장 대신 환경과 지역 공동체를 위한 노력은 한국 뷰티 기업의 과제다.
    —샬롯 조(소코글램)

    PHOTOGRAPHER James Cochrane

    20. SECOND SKIN

    ‘살색’ 스타킹을 뒤집어쓴 듯 더 얇고 더 감쪽같이 가리는 베이스 제품과 스킬이 뷰티 월드를 장악했다.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은 인류가 화장을 멈추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거예요.” 맥 코스메틱 글로벌 시니어 아티스트 도미닉 스키너의 주장에 플런트 비 변명숙 대표가 의견을 보탠다. “세컨드 스킨 트렌드에 발맞춰 스킨케어 효과를 강화한 베이스 제품이 다가올 베이스 시장을 뒤흔들 겁니다.” <보그>의 민첩한 추천은? 샬롯 틸버리 ‘매직 크림’, 팻 맥그라스 랩스 ‘스킨 페티쉬 서브라임 퍼펙션 프라이머’, 제스젭 ‘베어 크림’.

      에디터
      이주현, 이주현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