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우울증은 ‘남’의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대중적 질병을 넘어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뼈 때리는’ 조언.

VOGUE 우울증을 겪는 2030 젊은 여성의 공통된 고민은 무엇일까요?

DR. J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민이 있기 때문에, 특정 연령대와 성별로 묶는다고 하더라도 공통된 고민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요. 2030 젊은 여성의 공통 고민을 굳이 찾아보자면 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공통분모를 차지하는 걸로 보입니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나 상사의 기대치가 있을 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은 좀더 관계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많이 느끼고, 그만큼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고 싶은 마음도 커요.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 부담을 느끼는 경우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우울증과 같은 문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착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환자들에게 착하게 살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해요. 착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 나쁘게 살라는 뜻은 아니에요. 착한 딸, 착한 부인, 착한 엄마, 착한 제자, 착한 부하 직원으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요, 친구, 연인이나 부부, 부모 자식 간이나 사제지간, 직장 선후배 사이에서도 일방적인 관계는 지속되기 힘들죠. 결국 한쪽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거나 병들게 되고요. 병드는 것보다는 그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당연히 더 낫죠.

VOGUE 우울증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으로 어떤 손실이 우려되나요?

DR. J 2014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2011년 연간 10조원을 넘어섰다고 하며, 현재는 그 비용이 더 증가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는 의료비뿐 아니라, 조기 사망으로 인한 미래 소득 손실, 생산성 저하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으로, 우울증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우울증을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VOGUE 멘탈 강화를 위한 전문가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DR. J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손절매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주식 가치가 떨어질 때, 이미 잃은 돈을 아쉬워하며 끝까지 붙잡고 있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매도해 앞으로 더 많이 잃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죠. 인생에서도 손절매가 중요해요. 공부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내 인생에 좋지 않은 영향만 계속 미친다면 과감하게 중단하거나 단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계속 끌고 가다가 내 인생 전체가 진흙탕에 처박힐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진흙탕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도 있겠지만 돌아갈 수 있는 장애물에 굳이 덤벼들 필요는 없어요. 손절매만 신경 쓰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포기해버리는 습관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 엄습할지도 몰라요. 이유 있는 걱정입니다. 인생은 항상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해요. 그런 균형 감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경험’이고요. 인생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배워가는 과정임을 잊지 마시길. 결론은 내가 항상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VOGUE 우울증 치료와 예방에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해외 사례를 들려준다면?

DR. J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명상에 심취한 것처럼, 동양에서 시작된 명상이 해외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명상의 정신적 치유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뇌 영상학적 연구와 접목해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기도 하죠. 실제로 해외에서는 ‘캄(Calm)’이라는 명상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됐습니다. 현재 널리 사용하고 있는데요, 명상이 IT 기술과 접목되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죠. 이처럼 명상은 정신적 여유와 삶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도구이지만 한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명상을 하기에는 한국인의 삶이 너무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겠죠.

VOGUE 향후 10년을 내다봤을 때 주목할 만한 멘탈 이슈는 뭘까요?

DR. J 검색의 중심이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넘어가면서 유튜브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중에서도 유튜버 활동을 병행하는 이가 늘고 있는데요, 정신 건강과 관련된 재미있고 실용적인 콘텐츠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고 궁금해하는 정보를 좀더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유튜브라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또 정신 건강 영역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IT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지속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캄’이라는 앱은 삼성전자와 협력을 통해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명상 등 각종 콘텐츠의 종류와 양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IT 기술은 자가 진단 도구 등 정신과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며,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접목해 생체 신호를 진단, 평가, 치료 효과 피드백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AI의 발달은 디지털 동반자 또는 사이버 동반자의 등장으로 연결되며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죠. 때로는 그 연결이 강제적이기도 합니다만, 역설적으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단절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만 생각해주고 나만 위해주는 존재를 누구나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대상을 찾을 수 없고, AI의 발달은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맞춤형 동반자의 등장을 유도하지 않을까요?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조이처럼 사랑스러운 여성뿐 아니라 믿음직한 남성 AI가 동반자가 되는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VOGUE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울증에 맞서는 영특한 대처법을 알려주세요.

DR. J 우리가 통증을 느낄 때, 통증은 사실 우리 신체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통증은 무시하고 무리하다가 병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느끼는 우울과 불안 같은 정신적 불편함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합니다.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참고 지낸 사람들은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한 것처럼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이런 신호를 무시하고 무리하다 보면 우울증이 심해지고 인생의 궤적이 내가 바라는 방향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내 삶이 내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권합니다. 정신과 치료가 문제를 해결해주고 주변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문제에 맞서는 나의 자세가 달라지게 도와줄 수 있고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