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려면
매 순간 위대하지도, 대체로 행복하지도 않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가에겐 책, 책상, 식탁의 시간이었다. 당신은 무엇인가?
책 언제 처음 책을 소유하게 됐을까.
그저 거기에 있는 ‘사물’로서의 책이 아니라 내 인식과 감성 안으로 스며들어와 어떤 마음을 만드는 ‘사건’으로서의 책 말이다. 아시다시피, 책은 구매한 순간이 아니라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다음에야 내 것이 된다. 수전 손택은 독서는 “작은 자살”(<수전 손택의 말>)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엔 현실의 ‘나’-아니, 어쩌면 ‘나’의 현실-가 일시적으로 이 세계에서 삭제된다는 의미로 한 말일 것이다.
아홉 살 때까지 나는 내 책을 소유해본 적이 없다. 책 말고도 즐거운 것이 많던 시절이었다. 나는 골목의 혜택을 받은 거의 마지막 세대로, 내 유년의 골목엔 늘 친구들이 있었고 놀이 목록은 무궁무진했다.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와 맞벌이를 하던 그 골목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이 책이나 책을 사주는 어른 없이도 알아서 크는 줄 알았던 듯하다. 그들도 그들의 고향에서 그렇게 자랐으므로. 나는 아홉 살 여름에 그 골목을 떠나게 되었는데, 새로 이사 간 동네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섞여 있어서 골목이 따로 없었다.
골목이 사라진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내가 선택해서 읽은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책은 참 이상했다. 평면의 종이 위에 나열된 문장이 어느 순간부터 종이에서 분리되어 입체화되었고, 내 머릿속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와 장미꽃이 등장하는 극장 하나가 생성되기도 했다. <어린 왕자>를 읽는 동안,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나는 잠시 삭제되었으니 내게 그 독서는 첫 번째 ‘작은 자살’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꽤 오랫동안 작고 연약한 생명체를 보듬듯 <어린 왕자>를 가슴에 안고 다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이제 나는 40대가 되었고, 내가 작가이면서 독자이기도 하다는 게 다행이라고,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개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눈뜨는 시간이 딱히 아침이 아닐 때가 더 많긴 하지만- 가장 먼저 무언가를 마시며 책을 읽는데, 낮에 일정이 있어서 독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날 귀가해서라도 독서를 시작한다. 일단 책은 재미있다. 내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독서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에는 내가 몰랐던 세계가 들어 있고 그 세계를 알고 나면 몰랐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나는 마음에 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흑인 정권이 들어설 무렵의 혼란(존 맥스웰 쿠체의 <추락>)과 미국 어민들의 일상(애니 프루, <시핑 뉴스>), 세운상가 오디오 수리점의 분위기(황정은, <디디의 우산>)와 IT 기업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는 모두 소설을 통해 먼저 배웠다.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살아본 적 없고 일해본 적 없는 그 공간에 대한 상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서라고 하면 하품이 나는 취미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자기 삶의 범위 바깥을 상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따분하기만 하다.
책상 3년 전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낭독회를 한 적이 있다. 낭독을 하기 전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나는 한국에서 온 소설가입니다”라고 영어로 말한 순간(물론 미리 외워간 문장이다) 객석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낭독회가 끝난 뒤에야 미국에서는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는 일이 보편적이지 않기에 청중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며 반응한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예술가야, 알아?” 그때 내 소개가 이 정도의 어감으로 그들에게 가닿았던 걸까.
하긴, 한국에서도 나뿐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작가가 자기소개가 필요할 때는 “소설/시/평론 쓰는 누구누구입니다”라고 말한다. 소설가, 시인, 평론가라는 명사보다는 ‘쓰다’라는 동사에 자신의 핵심적인 정체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쓰지 않는 작가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오직 쓸 때만 작가라는 ‘상태’에 머물 수 있으므로. 노동이 직업을 증명한다는 원칙은 작가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언젠가 시인이 주인공인 단편소설에서 나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시인의 책상은 네 개의 다리가 달린 평편한 나무판자에 지나지 않는다.”(<동쪽 伯의 숲>)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책상에 앉아 쓰기면 하면 삶이 지속되느냐고,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도. 물론 소설을 쓴다고 규칙적으로 월급을 입금해주는 곳은 없고 출간한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어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렇다고 내가 생계를 무시하고 소설만 쓰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생계는 걱정한 것보다 훨씬 더 무탈하게 꾸려지고 있다. 생계는 분명 중요하지만, 생계가 삶 전체가 되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다. 나는 띄엄띄엄 대학 강사이기도 한데, 한 학기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생계는 스스로 책임지되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남들과 똑같이 갖고 똑같이 누리기 위해서 너무 애쓸 필요 없다고…
꿈꾸는 것도 있다.
내 소설 작법 중 하나는 인물의 가장 쓸쓸하고 아픈 순간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인데, 그렇게 인물들을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세상의 접힌 모서리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펴가고 있다는 상상이 나는 좋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내 책상이 생계를 일구는 장소이자 나를 인간적으로 살게 하는 공간인 동시에, 그전까지 보지 않았고 보려 하지도 않았던 모서리를 빛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장의 역할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식탁 작가에게 슬럼프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돌이켜보니 내게 가장 큰 위기는 30대 후반에 찾아왔다. 부지런히 쓰긴 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으니 도무지 왜 쓰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더 이상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 무렵 사귄 친구들과 음식을 해 먹은 뒤 맥주와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이전까지 마감과 출간 같은 이유로 번번이 외면해왔던 그 시간이 뜻밖에도 위로가 됐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덧없음 위에 겹쳐진 위로였다. 그러니까 마치 두 겹의 종이처럼. 소설을 쓰지 않은 채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삶이 지속된다는 게 소설에 대한 덧없음을 키웠는데, 그 덧없음을 인정하고 나니 허무도 원망도 없는 평정심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삶은 위대한 걸까. 종종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삶의 총체성은 결국 위대함으로 판결되리라 믿(고 싶)지만, 매 순간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위대하지도 않고 행복은 대체로 일시적이지만, 그럼에도 삶이 지속될 수 있는 건 식탁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시시한 수다와 다정한 구박이 오가고 음식은 식어가는 평범한 식탁이 그 사람의 식탁 밖 투쟁-심지어 대체로 실패로 끝나는 투쟁이다-에 가까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심은경 배우가 ‘엔딩송’을 부를 때 들려오는 그 가사, “사람들은 젊을 때 고생 좀 하라지만 나는 맛있는 게 더 먹고 싶어”(<걷기왕> OST)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명언이다. 우리는 좀더 웃어야 하고, 좀더 사랑해야 한다.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글
- 조해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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