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여, 안녕!
다음은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하고, 카카오톡의 뉴스 서비스는 실시간 검색어를 없앴으며, 네이버는 악성 댓글 필터링 기술을 뉴스 서비스에 적용했다. 이런 변화가 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댓글이 사라지고 뉴스가 달라진다 설리가 세상을 떠나고 미디어 업계에는 나름의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카카오가 포털 사이트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인물 키워드에 대한 관련 검색어 제공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카카오톡 뉴스 서비스에서는 실시간 검색어를 없앴다. 이를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카카오는 모든 기사의 댓글 폐지와 실시간 검색어 기능 폐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댓글을 없애지 않는 대신 자체적으로 개발한 악성 댓글 필터링 인공지능 기술을 뉴스 서비스에 적용했다. 댓글에 불쾌한 욕설이 포함되면 자동으로 숨기는 기능이다. 웹툰, 쥬니버, 스포츠, 연예 등의 서비스에는 이미 적용했으며, 뉴스에도 전면 적용했다. 사실 포털 뉴스 댓글에 대한 찬반 논쟁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특히 연예인을 향한 악플은 명예훼손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곤 했지만 이 댓글 창의 존폐는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 및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법적, 제도적 정의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포털 뉴스 생태계의 역사 한국에서 인터넷 언론이 등장한 것은 2000년 무렵이지만,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은 2002년 이후였다. 거대 규모의 시설 투자 없이 기성 언론에서 볼 수 없던 콘텐츠를 담는 인터넷 언론은 2002년 대선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누구나 환영한 건 아니었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들의 인터뷰를 추진하던 오마이뉴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간법/ 방송법상 매체가 아니란 이유로 제재를 받았는데, 이 충돌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검열’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을 ”지상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로서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헌재의 정의가 나왔다. 이후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은 모두 이런 사고를 기반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스의 댓글 이슈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한국 인터넷 생태계 이슈까지 포함해 조금 복잡해진다. 한국 포털이 뉴스를 제공한 건 2000년 무렵 라이코스(이 이름 기억하는 사람?) 메인 화면에 언론사 뉴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이후 네이버와 다음도 뉴스를 제공하면서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당연히 뉴스가 나오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한국의 인터넷 업계는 1997년 하반기에 한국에 진출한 야후 코리아가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다음, 네이버, 엠파스, 라이코스 등 중소 업체의 경쟁 구도였다. 다음과 네이버가 뉴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데에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 그러니까 ‘사용자의 시간 확보’를 위한 목적이 컸다. 점유율 확보를 위한 경쟁 구도에서 포털 사이트는 무료 이메일 서비스와 무료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뉴스를 중요한 서비스 및 콘텐츠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03년 야후는 대한민국 시장점유율 1위를 네이버에 뺏기고 2005년에는 다음에 도 밀려 3위로 추락한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구글이 유일하게 한국에서 실패하다시피 한 맥락에도 한국형 포털 사이트와 뉴스 서비스가 있다고 본다.
국내 포털에서 뉴스는 핵심적인 ‘미끼 상품’이다. 자체 수익은 없지만 이용자를 지속적으로 유입하며 포털의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를 대하는 태도나 방향성이 달랐는데, 네이버가 줄곧 ‘네이버 뉴스’라는 단순한 이름을 사용하면서 스스로를 유통 업자로 정의했다면, 다음은 ‘미디어 다음’이라는 이름대로 스스로를 미디어로 정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디어 다음과 네이버 뉴스는 이름뿐 아니라 언론사와 관계 맺는 방식이나 뉴스를 편집하는 방식, 댓글 등을 관리하는 기준 등이 다르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카카오는 댓글을 폐지했다 네이버와 다음에 뉴스는 대규모 트래픽을 발생시켜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콘텐츠라는 점은 명백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과 대선 이후 포털 뉴스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 개별 뉴스보다 그에 달린 댓글이 여론을 형성하는 흐름도 생겼다.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베스트 댓글’, ‘댓글 찬반 표시’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생긴 결과다. 여기에 모바일 환경, SNS 활성화에 정치적 이슈까지 더해져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대중은 뉴스 자체보다 그에 실린 댓글을 더 신뢰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최순실 게이트나 드루킹 사건 조사 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댓글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런 현상에 대한 방증이다. 최근에는 기존 뉴스에 대한 불신의 여파로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콘텐츠의 신뢰도가 상승하면서 가짜 뉴스 이슈가 대두된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2019년에 카카오와 네이버가 댓글을 폐지하거나 관리 강화 의지를 밝히는 것은 좀 복잡하다. 카카오는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 폐지에 대해 “사람을 보고 결정한 일”이라 했지만 동시에 포털 다음의 뉴스 서비스를 ‘개인화 맞춤형 구독 방식’으로 전면 개편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올해 상반기까지 카카오의 뉴스 서비스를 구독 중심으로 개편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바꿔 말해 언론사에서 뉴스를 제공받는 방식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사실 뉴미디어 환경에서 포털의 점유율 자체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니, 카카오 입장에서는 다음을 기존 방식대로 운영하는 것에 회의적일 수 있다. 거의 독과점 수준으로 점유율을 차지한 네이버라면 다르겠지만, 다음의 경우 뉴스 서비스가 점유율 향상에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광고가 아닌 새로운 수익 모델 개발 상황까지 겹치며 ‘구독 서비스’라는 방향성이 나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사실 개념적으로 포털 사이트는 온갖 콘텐츠와 서비스로 포장한 ‘거대한 광고판’인데 카카오는 그걸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 혹은 미끼 상품으로서 뉴스의 효용성을 재고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니, 새삼 뉴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2020년 이후의 뉴스 이 질문은 포털 사이트와 뉴스 서비스를 동일시하던 인식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대신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바로 접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 결과 포털이 중요하게 여기던 뉴스의 역할이 축소되고, 콘텐츠로서 가치도 하락한다. 여기에는 포털 중심의 언론 생태계와 언론사 뉴스의 신뢰도 실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비즈니스 면에서도 사용자 감소, 점유율 하락이라는 이슈가 끼어든다. 댓글은 그 모든 과정의 결과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뉴스란 무엇인가.
‘밀레니얼을 위한 이메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뉴닉은 1년 만에 1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해외에서는 최근 몇 년간 뉴미디어 환경에서 독립 언론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자료도 나온다. 탐사 보도 기반의 독립 언론사가 후원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차별화된 관점과 끈질긴 취재력으로 영향력을 키운다는 소식이다. 이를 보면 사람들이 뉴스를 싫어하거나 회피하는 건 아니다. 새삼 1년 전 손석희 JTBC 사장의 발언이 떠오른다. 어느 컨퍼런스에서 그는 “JTBC는 아젠다 세팅이 아니라 아젠다 키핑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기존 언론사와 뉴스의 기능이 아젠다 설정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설정한 아젠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추적하며 물고 늘어지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맥락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것도 그 결과였다. 바야흐로 뉴스의 기능과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카오의 결정에서 보듯, 조만간 포털 중심의 뉴스 생태계는 끝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온다. 뉴스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어떤 뉴스를 원하는가? 뉴스가 지속적으로 살아남고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어때야 하는가? 이 맥락에서 우리는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고 이해하고 재해석할까? 인터넷 뉴스와 포털 뉴스가 등장한 2003~2004년 사이에 정리된 것 같던 논점이지만, 넓은 관점으로 다시 보면 오히려 포털 뉴스 시대가 과도기처럼 여겨진다. 2020년 이후의 세계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본질로 돌아갈까?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글
- 차우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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