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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으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2020.01.18

by 조소현

    최면으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흡연자라면 누구나 상상해본 일을 실행에 옮긴 사람 이야기.


    도시 흡연자들은 북극곰과 비슷한 위기에 처했다. 한때 광활하던 그들의 영토는 잔뜩 짜부라져 흔적만 남았다. 서울은 특히 가혹하다. 흡연자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강박적으로 촘촘히 늘어선 금연 마크를 마주친다. 거리에는 그들을 가두는 ‘흡연 부스’라는 이름의 감옥이 생겼고, ‘흡연 갑질’이라는 엉터리 신조어를 들이대는 이웃들 때문에 자기 집 안방에서도 마음 편히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사람들이 건강과 미용 때문에 금연을 ‘결심’하던 너그러운 시절은 끝났고, 이제는 담배를 끊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조차 지킬 수 없는 시대다. 설상가상으로 흡연자의 한 줄기 희망이던 전자담배마저 폐질환 위험으로 금지 위기에 처했다. 담배는 한번 시작한 이상 절대 끊을 수 없고 고작해야 남은 평생 참는 게 최선이라는데 정말일까? 이 끔찍한 중독에서 헤어날 방법은 없을까? H는 이런 절박함을 안고 최면치료사를 찾았다. 한국과 상황은 다르지만 담배를 끊으려는 혹은 누군가의 금연을 돕고 싶은 당신에게는 그의 얘기가 도움이 될 거다.

    40대 중반의 유럽인 남성 H는 지난 30년간 사흘 정도를 제외하고는 매일 담배를 피웠다. 최근에는 하루 두 갑을 피웠다. 실제 나이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건 개의치 않았으나 점점 심해지는 가슴 통증은 그를 두렵게 했다. 그는 종교, 점성술, 명상, 요가 등을 비웃는 극도로 현실적인 인간이고, 자신이 남들보다 강한 의지력을 가졌다 믿었다. 하지만 담배는 다른 문제였다. 그는 평생 여러 가지에 중독되었다. 마약, 스피드, 알코올 그것들을 모두 끊은 후에도 담배는 남았다. 최면 치료는 비쌌다. 그는 3시간 세션에 200달러를 지불하고 치료실에 앉았다. 최면치료사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자, 당신은 최면에 빠져듭니다. 이제부터는 담배가 맛이 없습니다. 레드 선!” 하는 식의 명쾌한 주문을 외는 대신 평범한 심리상담가처럼 그의 인생사를 물었다. 처음 담배를 피운 날, 가족 관계, 어린 시절 상처 H는 웬일인지 자기 얘기를 하는 데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창자 속까지 뒤집어보일 기세로 모든 어두운 기억을 털어놓았고, 결국에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기 때부터 지금껏 울어본 적이 없다. 울지 않는 아기가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이건 그의 부모가 보증하는 사실이다. H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멈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담이 끝나자 치료사는 오늘은 좀 피곤할 거라고 말했다. 과연 그랬다. 그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허탈감, 피곤이 뒤죽박죽이 되어 차분하고 멍한 상태로 오후를 보냈다.

    H는 그후 한 달째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최면이 도움이 되었나 물어도 그는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자신이 진짜 최면에 걸린 건지, 원래 최면이란 그런 건지, 그게 최면이라면 대체 어느 순간 무엇 때문에 걸린 건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치료실에서 벌어진 일, 그가 한 말, 치료사와 나눈 대화, 그가 마음을 연 순간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긴 하다. 치료사는 담배에 관해 특정한 인셉션을 심어준 것 같지 않다. H는 자주 흡연욕구를 느낀다. 다만 그럴 때, 금연을 시도해본 사람은 다 아는 습자지 같은 경계에서 ‘에라 모르겠다’가 아니라 ‘조금 더 참아보자’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최면으로 금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헤비스모커였고, 여러 트라우마와 불안 증세가 흡연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가능했을 거예요. 나는 그날 치료를 받으면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고, 그건 굉장히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다른 최면치료사에게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꼭 금연 때문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우리에겐 아직 음력 새해가 남았다. 간절히 끊고 싶은 나쁜 중독이 있다면 올해야말로 싸워서 이겨내시길 바란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이숙명(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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