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가면 타파스 바에 꼭 들르세요
스페인의 타파스 바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판으로 타파스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타파스 바 초보거나 관광객이죠. 타파스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바에 서서 어깨를 부딪치며 먹는 편이 더 자연스럽거든요. 물론 여행자에게는 이 인파를 뚫고 스페인어로 주문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메뉴 이름만 외워가도 소음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에도 원하는 음식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바와 나 사이 30cm 거리의 장벽만 넘는다면 훨씬 더 많은 타파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스페인의 흔하디흔한 타파스 바에서 현지 단골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타파스 바 생존 스페인어’를 알려드립니다. 꼭 타파스 바가 아니어도 스페인 식당에서 어디든 써먹을 수 있다는 건 안 비밀.
우나 카냐 포르 파보르(Una caña por favor): 맥주 한 잔 주세요
일단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바에 당도했다면 술부터 주문해야죠. 영어의 ‘플리즈(Please)’에 해당하는 ‘포르 파보르(Por favor)’는 어떤 메뉴든 주문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카냐(Caña)는 우리나라 식당에서 쓰는 맥주잔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잔을 의미하죠. 하지만 카냐는 양보다는 맥주를 따르는 태도를 표현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좋은 타파스 바는 아무리 바빠도 거친 거품을 몇 번씩 걷어내고 고운 크림층을 정성스럽게 올린 맥주를 주거든요. 게다가 이 작은 잔의 용량이 맥주가 미지근해지기 전, 가장 맛있는 상태로 마실 수 있는 최적의 양이죠. 그래서 더 큰 잔인 도블레(Doble)가 있음에도 카냐를 주문해야 합니다.
주의: 카냐 두 잔을 주문할 때는 ‘도스 카냐스(Dos cañas)’를 외치면 됩니다. (세 잔은 주문해도 어차피 한 번에 들고 가기 힘드니까 그냥 두 잔까지만 주문하는 걸로.)
스페인의 술 헤레스(Jerez)와 베르무트(Vermut), 로컬 와인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주요 와인 생산국입니다. 그래서 어느 타파스 바에 가더라도 다양한 하우스 와인을 맛볼 수 있죠. 레드 와인은 ‘비노 틴토(Vino Tinto)’, 화이트 와인은 ‘비노 블랑코(Vino Blanco)’입니다. 와인에 브랜디를 섞은 셰리주(Sherry Wine)는 스페인어로 헤레스(Jerez)라고 주문해야 합니다. 셰리 특유의 단맛이 싫다면 가장 드라이한 헤레스 피노(Jerez Fino)를 시도해보세요. 스페인에서는 마티니를 만들 때 넣는 베르무트(Vermut)에 얼음과 오렌지를 넣어 마신답니다. 이국적인 식물 향이 가득한 시원한 베르무트는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로 적당해요. 물론 술자리를 시작하기에도 좋은 음료입니다.
감바스(Gambas): 새우
이 기사를 읽고 있다면 감바스를 모르진 않겠죠! 스페인에서 먹을 수 있는 새우의 종류는 꽤 다양한데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는 작은 새우를 마늘 기름에 튀기듯 익힌 요리입니다. 카마론(Camarón)과 카라비네로(Carabinero)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보기 힘든 새우입니다. 둘 다 향이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데, 특히 카라비네로 새우는 한 마리에 20유로 내외의 고급 재료니 주문하기 전에 주의하세요.
아 라 플란차(A La Plancha)
아 라 플란차는 올리브유나 버터를 두른 철판 위에서 재료를 굽는 요리입니다. 간단하게 재료 이름 뒤에 ‘아 라 플란차’만 붙이면 되죠. 새우구이는 감바스 아 라 플란차(Gambas a la Plancha), 오징어구이는 칼라마레스 아 라 플란차(Calamares a la Plancha)처럼요. 스페인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철판구이는 맛조개로 만든 나바하스 아 라 플란차(Navajas a la Plancha)입니다. 높은 온도로 달군 철판 위에서 살짝 구워 나오는 조갯살은 맥주나 화이트 와인, 어떤 술과도 찰떡처럼 어울린답니다.
카르카무사스(Carcamusas)
타파스 바에는 초밥집처럼 바에 재료를 넣어 놓는 냉장고가 있는데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고 싶다면 이 냉장고를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만약 제육볶음같이 생긴 고기 요리가 보인다면 그게 바로 카르카무사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념에 토마토와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실제로 제육볶음과 비슷하죠. 공깃밥을 추가하고 싶은 맛이랍니다.
프리토(Frito)
치킨만큼이나 튀김도 맥주와 환상의 조합입니다. 스페인 멸치에 가벼운 튀김옷을 입힌 건 보케로네스 프리토스 (Boquerones Fritos), 소금에 절인 대구튀김은 바칼라오 프리토(Bacalao Frito)죠. 모험심이 강하다면 돼지 코를 튀긴 모로 프리토(Morro Frito)를 시도해보세요. 돼지 코가 생각보다 아주 부드러워요.
베르베레초스 살테아다스(Berberechos Salteadas)
살테아다스(Salteadas)는 소금을 넣고 찐 요리를 뜻합니다. 베르베레초스(Berberechos)는 우리나라 꼬막과 비슷한 새조개죠. 이렇게 요리한 새조개는 우리나라 조개찜과 99% 비슷한 맛이 납니다. 잘 삶은 베르베레초스를 입에 넣고 씹으면 톡 터지면서 바다의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답니다.
하몽 이베리코(Jamón Ibérico)
하몽은 돼지 다리로 만드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햄이죠. 이 중에서도 일정 기간 도토리만 먹고 자란 돼지로 만든 높은 등급의 하몽은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ón Ibérico de Bellota)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합니다. 100g당 가격이 어지간한 소고기 부위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스페인을 여행한다면 경험 차원에서 한번 먹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타파스 바에선 모두들 포크 대신 손으로 집어 먹는데요. 하몽의 지방은 체온에서 녹기 때문에 손가락을 쪽쪽 빨면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만체고(Manchego)
만체고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치즈 중 하나입니다. 양젖으로 만들어 길게는 2년까지 숙성시키죠. 맛이 깊고 후추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이 있습니다. 몇 조각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만체고 타파스는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스페인산 와인과 함께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주죠.
모하마(Mojama)
모하마(Mojama)는 참치를 소금에 절여서 육포처럼 말린 바다의 하몽이라고 불리는 음식입니다. 식감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풍부해서 특히 셰리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죠. 분명 해산물인데 소고기 육포의 맛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음식이랍니다.
라 쿠엔타 포르 파보르(La cuenta, por favor): 계산서 주세요
자, 맛있게 다 드셨나요? 타파스를 충분히 즐겼다면 라 쿠엔타 포르 파보르(La cuenta, por favor)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계산서를 가져다줄 겁니다. 정해진 자리도 없고, 수많은 사람이 정신없이 오가며 주문한 바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고 마셨는지 정확하게 적혀 있는 계산서를 보면 대체 그 비결이 뭘까 궁금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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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 송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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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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