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AR GENERATION

2020.02.27

by VOGUE

    AR GENERATION

    실재와 허구의 혼연일체. ‘증강현실’로 얼굴을 치장한 뷰티 신인류.

    “에스티 로더가 차원이 다른 컬러 매칭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얼마 전 뷰티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코퍼즈(Kristin Corpuz)가 <보그>에 전해온 따끈한 소식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영국, 일본 20개 매장에서 시범 운영한 ‘아이매치 버추얼 셰이드 엑스퍼트(iMatch Virtual Shade Expert)’ 이야기다. “이마부터 턱 끝까지 빈틈없이 스캔해 56가지 ‘더블 웨어 스테이-인-플레이스 파운데이션’ 컬러 중 내 피부에 꼭 맞는 셰이드를 알려줍니다. 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백색광 조명을 설치한 섬세함도 잊지 않았죠. 턱이나 볼 등 얼굴 일부 부위만 체크해 피부색을 진단하는 타 브랜드와 차별화한 한발 앞선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아직 감동하긴 이르다. “똑똑한 인공지능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고객의 베이스 취향을 묻고 명쾌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웜톤과 쿨톤, 밝은색과 어두운색 중 평소 선호하는 베이스만 말하면 돼요. 단순한 셰이드 추천을 넘어 파운데이션 구입과 직결되는 만족도 높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거죠. 여기에 AR 시연까지 곁들이니 매장 직원의 짜증 섞인 눈빛도 이젠 안녕이에요.”

    증강현실, 즉 AR(Augmented Reality)은 현실에 가상 정보를 덧입히는 신기술이다. 진짜 같은 허구의 세상을 만드는 VR(Virtual Reality)과 달리 AR은 ‘실재와 허구의 혼연일체’를 지향한다. 토론토대학 기계 및 산업 공학과 교수 폴 밀그램은 어느 포럼에서 AR 기술 선도 분야로 게임, 스포츠, 교육, 국방, 테마파크를 꼽았다. 2020년, 그 목록에 ‘뷰티’를 넣지 않은 사실을 그는 후회하지 않을까? AR 생태계로 거듭난 뷰티 세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턱은 날렵하게, 눈은 동그랗게 키우는 성형 필터와 형형색색의 아기자기한 스티커, 고개를 움직여도 흔들림 없는 요술 선글라스처럼 ‘진짜 위에 덧입힌 가짜’로 도배된 ‘셀피’가 사진첩을 채우고 있다면 이미 당신도 ‘AR 뷰티’ 추종자다. AR 영역의 가능성을 본 뷰티 브랜드는 대중적 상용화에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니나 팍이 “인생 최고의 뷰티 툴”이라 극찬한 ‘리키 미러(Riki Mirrors)’는 마법 같은 조명(부드러운 자연광은 기본, 빛의 세기를 높이면 반사판 효과는 보너스)으로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의 그 어떤 필터와 만나도 막강한 보정 효과를 발휘한다. 왜곡 없이 얼굴을 비춰 메이크업 과정도 살뜰히 보조하는 데다 휴대폰과 연동하면 거울 하단 버튼으로 애써 뻗은 팔이 보이지 않는 셀피까지 남길 수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영특한 뷰티 툴이 또 있을까?

    지난해 유튜브는 모바일 광고 항목에 메이크업 시뮬레이션 서비스 ‘AR 뷰티 트라이온’을 추가했다. 맥 코리아는 이를 아시아 최초로 실전에 투입, 뷰티 크리에이터 조효진과 메이크업 튜토리얼 콘텐츠로 제작했다. 화면 상단에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하단에 카메라가 구동해 전방 렌즈가 시청자의 얼굴을 인식한다. 그 위로 10가지 립스틱 컬러가 주르르 팝업되고 원하는 셰이드를 터치하면 끝. 컬러, 광택, 입술 주름까지 실제 립스틱을 바른 것과 다름없고 얼굴 각도와 입술 모양도 다양하게 비춰 볼 수 있어 매장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오렌지 레드와 핑크 누드 립 화면을 캡처해 단체 채팅방에 전송했다. 만장일치로 당첨된 ‘러브 미 립스틱 #쉐임리슬리 베인’을 화면 하단 ‘쇼핑하기’ 탭을 눌러 구입까지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분. 발색, 사진 촬영, 제품 구입까지 한 화면에서 끝낼 수 있는 콘텐츠 커머스의 온상이다.

    이처럼 다채롭게 발전하는 AR 뷰티 세계가 생산한 신인류도 화제다. ‘3D 메이크업 크리에이터’, ‘E-메이크업 아티스트’, ‘AR 뷰티 크리에이터’ 등 디지털 아티스트 군단이다. 파리에서 활약하는 이네스 알파(Ines Alpha)는 AR 영역에 뛰어든 기업이 앞다퉈 찾는 3D 뷰티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이네스의 작품 ‘This is Human’, ‘Oyster Moisture’ 등이 기본 필터로 장착되어 있다. 독특한 필터를 원한다면 AR 필터 작가 알렉세이 예프레모프의 계정(@solar.w)을, 사이보그 전사 같은 신비로운 필터는 뷰티 블로거이자 필터 장인 코추코바 다샤의 계정(@dasha.kochukova)에서 찾아보시라. 신종 필터 수집으로 4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계정 ‘@instmask’도 추천한다.

    AR 필터는 인스타그램으로 생생한 패션 & 뷰티 소식을 접하는 고객에게 안성맞춤인 홍보 전략이다. 구찌, H&M, 나이키 등 패션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AR 필터 공개는 패션 위크의 필수 프로모션이고,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은 랑콤 ‘블루 세럼’, 아워글래스 ‘앰비언트 파우더’, 닥터자르트 ‘시카페어 타이거 그라스 컬러 코렉팅 트리트먼트’ 등 프로모션 주요 브랜드 제품을 형상화한 필터를 전 세계 고객에게 퍼뜨렸다. 그런가 하면 지난 연말 디올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 이미지 디렉터 피터 필립스는 이네스 알파와 함께 ‘해피 2020 컬렉션’을 위한 ‘3D 메이크업 인스타그램 필터’를 만들었다. 이를 즐기는 슈퍼모델 벨라 하디드의 ‘짤’은 SNS상에서 수차례 회자됐고 디올 인스타그램에는 8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홍보 효과를 충분히 누렸다.
    에스티 로더 글로벌 브랜드 대표 스테판 데 라 파베리는 AR 서비스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고객 경험 향상에 초점을 맞춘 진화”라고 말한다.

    실제로 에스티 로더는 매장 내 립스틱 AR 테스트 기능 도입 후 고객들이 2.5배 이상 쇼핑에 만족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이처럼 증강현실은 일상 여기저기에 침투해 고객에게는 편의성과 즐길 거리, 브랜드에는 또 다른 마케팅 방식,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뷰티 신세계를 개척 중이다. 이제 늦은 밤 남자 친구로부터 페이스타임 벨 소리가 울려도, 야근 후 만난 친구의 급작스러운 셀피 요청에도 머뭇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AR 뷰티라면 ‘화장발’과 ‘시술발’ 없이 굴욕 없는 외모를 뽐낼 수 있으니까.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Estée Lauder, Dior, M·A·C, Ines Al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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