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공포라는 바이러스

2020.02.27

by VOGUE

    공포라는 바이러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만끽하던 순간, 나는 서울역 대합실에 앉아 시상식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혈압 문제로 매월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행인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역사 안은 대체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마지막 작품상이 호명되고 대합실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카데미 역사상 어떤 외국어 영화도 넘지 못한 선을 넘은 것이다. 모두가 흥분해 침을 튀기며 한마디씩 축하의 말을 꺼내던 그때, 공기 중의 무언가도 우리들 사이의 선을 넘고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아직까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의심 환자가 서울역을 다녀갔다는 얘기는 없었다. 하지만 막 기차에서 내린 어머니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한 노모는 낯선 사람들 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나를 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방에서 여분의 마스크 10여 개를 꺼냈고 바이러스가 야기한 온갖 극단적 상황과 비극적 예언을 쏟아내며 당장 집 안에 식량을 비축해놓으라고 닦달했다. 인류 종말에 가까운 그 엄청난 얘기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사실 나는 최근의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동업자 친구가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본업에 과부하가 걸려 바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운영 중인 매장을 거의 내가 도맡아 관리해야 하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다. 종종 이용하던 집 근처의 이마트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23번째 확진자가 하필이면 이마트 마포공덕점을 다녀갔다는 발표가 나왔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이마트에서 사용한 카드의 내역을 살펴보니 최근 방문일이 2월 1일이었다. 그 중국인 여행객은 다음 날인 2월 2일 해당 이마트에 들렀다. ‘럭키’! 아무튼 근방에서 제일 큰 마트가 방역을 위한 임시 휴업에 들어간 탓에 장 보는 게 다소 수고로운 일이 됐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좀 우울한 얘긴데, 이제 갓 문을 연 우리 매장에 손님이 없다. 물론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두되기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손님이 줄었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나 그렇다고 위로가 되진 않는다.

    종합병원의 내부는 한산한 거리와 달리 인파로 북적였다. 세상 사람들은 죄다 여기 모인 것 같았다. 체온계를 들고 선 직원들이 차 안에 탄 사람들의 열을 일일이 체크하느라 주차장 입구부터 차가 밀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도 한참 줄을 서야 했다. 로비엔 신종 코로나 검역용 열 감지 카메라와 손 소독제가 놓여 있었다. 내원객은 최근 방문 국가나 이상 증세 등에 관한 차트를 작성해 입구의 의료진에게 제출하고 검사가 필요한 경우 선별 진료소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병원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환자들이 모인 곳인 만큼 당연히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광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내가 숨 쉬고 떠들고 먹고 마시던 세계에선 아무 일도 없었는데 유리문 하나를 통과하자 비상사태였다. 나 역시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왠지 긴장됐다. 만원 엘리베이터에선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병원 내 커피숍 앞에서 마주친 마스크를 낀 외국인 커플은 나와 팔이 닿을 뻔하자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누군가와 접촉하는 게 두려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그랬다.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원 안에는 ‘공포’라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스며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괴물>이 떠올랐다. 한강 둔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 때문에 패닉에 빠진 정부는 이 괴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다고 의심하고 괴물에게 어린 딸을 잃은 강두(송강호)는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격리된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딸을 구출하고자 병원에서 탈출한 강두네 가족은 겁에 질린 사람들에 의해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상황. 봉준호 감독은 극한의 상황에 처한 평범한 이들을 통해 비현실적인 사건과 일상의 괴리가 빚어내는 삶의 아이러니를 기가 막히게 풀어낸다. 무지와 공포가 빚어낸 그 바보 같은 해프닝을 극장에서 느긋하게 지켜볼 땐 대체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 눈앞의 현실이라면 누가 그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계 코로나 사망자 1,000명 돌파’ 같은 자극적인 제목만 보면 당장이라도 이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의 절반을 몰살시킬 것 같지만 유튜브 등에서 떠도는 이 같은 뉴스는 과장된 면이 있다. 2월 14일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2% 미만이다. 계절성 바이러스인 독감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흔해빠진 감기가 대수냐 싶지만 요즘도 감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기가 심해져 폐렴이 되고 숨을 못 쉬게 되면 결국 죽는 것이다. 물론 드문 사례다. 건강한 사람이 라면 잘 먹고 며칠 푹 쉬면 감기쯤은 툭툭 털고 일어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중앙임상TF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고 건강한 분들은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국내 감염자 중에 사망한 경우도 없다. 중국 후베이성을 제외하면 전파력도 독감보다 떨어진다. 초기 대응 실패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감염자가 급증한 중국의 경우는 예외다. 그런데 대체 왜 대재앙이라도 벌어진 듯 온통 난리일까?

    나는 그 이유를 미스터리함 때문으로 여긴다. 첫째, 코로나 발생지인 중국은 비밀이 많은 나라다. 중국 시장이 개방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언론과 인터넷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공산국가다. 종종 진실은 은폐되고 사건도 조작된다. 이번 사태의 최초 경고자인 중국 의사는 공안에 잡혀가 조사를 받고 반성문을 썼다. 지난해 12월 30일 온라인 메신저 위챗 단체 방에 “우한 화난시장에서 일곱 명이 사스류 확진을 받았다. 조심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게 잘못의 이유였다. 결국 그는 사람 간의 전염성이 없다는 우한 보건 당국의 주장에 따라 마스크 같은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폐렴 환자를 진료하다 감염됐다. 그는 지난 2월 7일 결국 사망했다. 현재 우한은 봉쇄되었다. 우한에 갇힌 백인 영어 강사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동영상 브이로그는 조회 수 380만을 넘었다. 그에 따르면 한때 런던보다 더 인구가 많고 숱한 상점으로 활기가 넘쳤다는 이 대도시는 좀비 영화 속의 그것처럼 텅 비어 있다. 거리엔 휴지 조각이 나뒹굴고 버려진 강아지만 홀로 시내를 떠돈다. 지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중국이라는 미스터리한 나라에서 발생한 이 질병은 아직 그 원인을 모른다. 두 번째 미스터리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최초 숙주인 박쥐에서 중간 매개 동물을 이용해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뱀, 밍크, 사향고양이, 천산갑까지 다양한 동물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중국에 체류 중인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의사이자 작가로 유명한 남궁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가적 입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올렸는 데, “기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박쥐를 사 와서 살아 있는 채로 무엇인가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박쥐를 솥에 넣어 삶거나 구웠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살아 있는 채’로다. 용의선상의 동물 중 어떤 것도 산 채로든 끓여서든 먹고 싶지 않지만 세상엔 각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건 솔방울 같은 비늘로 뒤덮인 개미핥기 천산갑이다. 중국 화난농업대학 연구진은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추출한 시료를 검사한 결과 천산갑에서 나온 바이러스 유전체 염기 서열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서열과 99% 일치한다고 밝혔다. 천산갑은 꽤 귀엽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면 꼬리에 새끼를 매달고 다니는 엄마 천산갑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중국 내에선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나 멸종 위기라고 하는데 코로나 덕분에 2월 15일이 ‘세계 천산갑의 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은 추정일 뿐이다. 중국의 연구진이 분석한 천산갑 시료는 직접적인 경로인 화난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설이 난무한다. 요즘 유튜브상에서 화제가 되는 영상 중 하나는 관리가 허술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설이다. 화난시장에서 3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연구소에는 사스, 에볼라 등 고위험성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P4 실험실이 있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 정보가 에이즈 바이러스와 묘하게 닮았다는 것이다. 유전 조작 가능성을 암시하는 이 같은 내용이 확산되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의 연구원인 P4 실험실의 부주임이 직접 나서서 “내 목숨을 걸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연구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수록 봉쇄된 도시와 그곳에 대한 루머는 더 확산된다.

    세 번째 미스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라는 것 자체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물체가 아닌 데다 감염자 중에는 기침이나 발열 등의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이 나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지 알 수가 없다. 이 같은 무지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공포는 혐오를 낳는다. 이 공포와 혐오는 지구상의 어떤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흑사병이 기승을 부리던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을 떠올려보라. 사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인 지난 1월 이탈리아로 모처럼 가족 여행을 떠났던 지인은 로마 관광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이들에게 손가락질과 욕설을 들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축구 선수 손흥민은 토트넘의 승리 기념 인터뷰 도중 마른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백인 축구 팬들에게 조롱당했다.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같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파키스탄에 거주 중인 또 다른 지인은 카라치 시내를 걷던 중 자신을 가리키며 “코로나 바이러스”, “칭 총(Ching Chong)”이라고 하는 말을 하루에 수차례나 들었다며 그들의 인종차별과 무지에 격분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뜻의 ‘칭 총’은 서양인들이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청원이 올라오고 광장에선 관련 집회가 열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한동안 우한 교민 수용 반대 현수막이 나붙기도 했다. 중국에 간 적 없는 조선족에 대한 시선도 싸늘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분노와 반감은 또 어떤가.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에 대한 혐오)는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같은 혐오에 그럴듯한 명분이 된 셈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공포와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종 코로나가 좀비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법석을 부리는 어머니에겐 ‘모르는 소리 말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막상 내 옆에서 중국 말이 들려올 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감염이라도 된다면 치사율의 문제는 둘째 치고 격리 조치부터 당할 테니까. 나의 모든 일상이 중지되고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 동정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은 더 끔찍하다.

    ‘우한 폐렴’의 발생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후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오늘 자 신문 1면도 온통 코로나 관련 뉴스다. 딱 하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그 1면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을 뿐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선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카데미에서 92년 만에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다. <기생충>은 선을 넘었고 사람들은 편견이라는 또 다른 선을 긋고 있다. 사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외출 전후로 열심히 손을 씻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며 해외여행이나 모임을 자제하는 것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누군가를 혐오해서도 안 된다. 어리석은 이기심을 거두고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우한 사태를 최초로 알린 의사 리원량은 세상을 떠나기 전 중국 매체와의 원격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 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억울한 누명을 벗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정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피처 디렉터
      조소현
      이미혜
      일러스트
      조성흠,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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