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티에 연대기
장 폴 고티에의 패션 인생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패션 에디터 해미시 보울스가 기억하는 장 폴 고티에와의 기막힌 추억.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마지막 오뜨 꾸뛰르 패션쇼가 열렸다. 그 런웨이를 바라보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내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고티에 패션쇼를 처음 본 것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하던 풋내기 시절이었다. 갓 스물이 넘은 나이였지만, 나는 이미 런던에서 발행되는 잡지 <하퍼스 앤 퀸>의 파트타임 패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동시에 호주판 <하퍼스 바자>의 런던 & 파리 에디터로도 일하고 있었다. 당시 편집장은 리 툴로치(Lee Tulloch)로, 선견지명을 지녔지만 그가 그곳에 몸담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우리가 그 잡지 표지 모델로 보이 조지를 찍은 것이 마지막 작업이었다).
고티에의 1984년 가을 컬렉션 무대는 프랑스 제2제국 시대에 지어진 시르크 디베르(Cirque d’Hiver)에서 열렸다. 그 당시 그곳은 실제로 운영 중인 서커스장 때문에 톱밥과 코끼리 똥 냄새가 진동했다. 꼭 봐야 하는 무대로 여겨졌던 고티에의 패션쇼장에 입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 출입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초대장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해 입장객 수천 명이 좁디좁은 입구를 통과하려고 아우성쳤다. 고티에의 참을성 있는 홍보 책임자 프레데릭 로르카(Frédérique Lorca)가 입구 한쪽에 무표정한 가드를 여럿 세워놓았지만, 몰려드는 관람객을 제대로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단 그 대열에 발을 들여놓은 뒤, 안쪽으로 들어가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들어가서 자리를 찾다 보니 어쩌다 카트린 드뇌브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기로 유명한 그녀조차 몹시 화가 난 모로코 여성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나는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입구에서 벌어지는 이 광란이 고티에의 화려한 쇼에서 당연히 벌어지는 일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 바자회에 몰려들어 뾰족한 팔꿈치를 찔러대는 약삭빠른 아줌마들 틈바구니 속에서 근사한 플래퍼 드레스와 30년대풍 바이어스 컷 프록 드레스를 낚아챌 때 쓰는 기술을 사용하게 되었다. 영국 <보그>의 사라제인 호어(Sarajane Hoare)는 튈르리 정원에 마련된 고티에 패션쇼 천막 밖에서 건장한 기도에 거칠게 떠밀려 나가떨어진 적도 있다. 그 당시 그녀의 상사였던 우아하면서도 거침없는 리즈 틸베리스(Liz Tilberis, 맬번여자대학 학생 대표 출신이자 라크로스 챔피언이었다)는 너무 격분한 나머지 그 기도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그의 턱을 후려갈겼다. 물론 나도 놀랐다. 지금 회상해보면, 그 컬렉션은 투쟁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마이 페어 레이디>의 ‘Ascot Gavotte’가 흐르는 무대와 세실 비튼에게 영감을 받은 남성과 여성을 위한 프랑스 총재정부(Directoire) 스타일의 흑백 스트라이프 앙상블이 특징을 이루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내가 쇼장 안으로 슬그머니 몸을 밀어 넣고, 예정된 시간보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다! 장 폴은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런던을 자주 방문했고,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런던에서는 포스트 신낭만주의의 물결 속에서 클럽 키즈들 사이에서는 캠던 팰리스(Camden Palace, 대형 클럽 ‘Heaven’ 뒤편에 자리한) 소규모 클럽 차차 클럽(Cha Cha club) 그리고 ‘트러스터페어리언(Trustafarian, 빈민처럼 행세하는 부유층 젊은이)’이 드나드는 화려한 타이타닉 클럽(Titanic Club)이 대세였다. 나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 동기인 스티븐 리나드(Stephen Linard)는 건장한 남성들을 캐스팅해 여성스럽게 만든 오간자 블라우스를 매치한 1930년대풍 남성 수트를 이미 선보였다. 그 후 딘 브라이트(Dean Bright)가 자신의 졸업 컬렉션으로 십자수를 놓은 남성복을 디자인했다. 퍼플 벨벳 드레싱 가운과 시폰 블라우스를 입고 흐느적거리며 걷는 남자들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두 디자이너가 보여준 임팩트는 조지나 고들리(Georgina Godley)와 스콧 크롤라(Scott Crolla)가 메이페어 거리 중심부에서 탄생시킨 브랜드 크롤라(Crolla)가 선보인 친츠와 에스닉 패브릭으로 만든 유니섹스 작품의 임팩트만큼 대단했다. 이 브랜드의 분위기는 어려운 시기의 멋을 담고 있었다. 신낭만주의가 살짝 풍겨 이색적이면서도 흙먼지가 일던 더스트 보울(Dust Bowl) 시대풍 그런지 스타일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고티에는 당연히 매력적인 프랑스 스타일을 선택했다. 리 바워리(Leigh Bowery)와 아를레티(Arletty)를 똑같은 비율로 합쳐놓은 컬렉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굉장히 다양한 모델을 캐스팅했고, 각자 분명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었다. 장 폴이 즐겨 기용한 모델로는 두툼한 입술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위도브로(Claudia Huidobro), 금발의 백인이며 강인한 여성 이미지를 풍기는 크리스틴 버그스트롬(Christine Bergstrom), 신즉물주의 화가 오토 딕스(Otto Dix) 스타일이며 여배우 루이스 브룩스(Louise Brooks) 같은 몸매를 지닌 애나 폴로스키(Anna Pawlowski), 유명 의류 브랜드의 디바였고 여왕과 같은 자태를 뽐내던 거만한 미인 파리다 켈파(Farida Khelfa) 등이 있었다(그들 모두 장 폴 고티에의 마지막 패션쇼 무대에 올랐다. 다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멋졌다).
특히 앙증맞은 코, 주근깨투성이 얼굴, 길고 숱 많은 짙은 곱슬머리의 린다 스피어링스(Linda Spierings)는 여전히 반박할 여지없는 미녀였다. 장 폴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에스닉 패브릭을 찾아다녔고 벼룩시장을 돌며 오뜨 꾸뛰르에 접목할 의류 장식품을 구하러 다녔다. 이처럼 다양한 모델의 캐스팅은 파리 외곽을 돌며 찾아낸 재료와 소품이 그의 컬렉션에 잘 녹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 폴은 늘 신체, 성별, 인종 차원에서 다양한 모델을 캐스팅하고 있다. 심지어 인기 디자이너들이 앙상하고 어린 백인 소녀들을 고집해도 그는 소신을 고수하고 있다.
시르크 디베르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는 여성 모델들이 한 번에 열댓 명씩 런웨이를 박차고 나와 무대를 돌면서 포즈를 취해 보였다. 긴소매가 팔꿈치와 소맷동에 돌돌 말려 있고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멜턴이나 벨벳 코트를 입은 디킨스 소설 속 캐릭터처럼 변신했다. 브로케이드 조끼는 상반신을 감싸도록 재단했다. 그리고 다마스크 스모킹 재킷과 드레싱 가운은 자연스러운 어깨 라인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어깨 부분이 굉장히 넓었다. 한 아이가 분장 놀이를 하려고 아버지의 옷장을 뒤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린다는 앤티크 실크 밀리너리 벨벳으로 만든 통이 좁으면서도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극장 커튼 같은 주름이 잡혀 있고 거대한 원뿔 모양 브라로 화려함을 더한 이 작품은 그 후 10여 년간 중요한 의상 중 하나가 되었고, 어린 시절 장 폴이 집착한 사랑하는 할머니의 코르셋을 접목해 꾸준히 탄생시키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가 장 폴의 패션쇼를 위해 모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보이 조지의 부탁으로 스티븐이 컬처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는데, 장 폴은 그 영상에서 스티븐이 직접 디자인하고 썼던 그 페즈(Fez) 모자를 발견하고 감탄에 마지않았던 것이다. 장 폴은 자신의 1984년 스프링 남성복 패션쇼 무대에 스티븐이 서길 원했다. 프랑스 영화 <망향(Pépé le Moko)>에서 영감을 얻고, 뮤직비디오 속 스티븐의 모습을 반영해 기획한 무대였던 것이다. 아쉽게도 스티븐은 무대에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여성복 무대를 위해 아몬드 모양으로 눈 부분을 오려내고 긴 수술 모양 ‘눈썹’을 붙여 멋진 페즈를 탄생시켰다. 그것은 가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머리 아랫부분까지 덮고 있었다. 그 시즌에 장 폴은 스티븐 존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파브리스 에메르(Fabrice Emaer)의 그 유명한 나이트클럽 르 팔라스(Le Palace)에서 파티를 열었고, 나는 그때 처음 그곳에 가보았다. 내 인생 최고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런던의 그 어떤 클럽보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칵테일을 너무 과하게 마신 탓에 클럽 옆 골목 쓰레기 더미에 누운 채 새벽 여명을 맞아야 했지만. 그래서 내 인생 최고로 좋은 시간이라고 말할 순 없을 수도 있다.
시르크 디베르에서 열린 패션쇼를 위해, 스티븐은 옛 스타일의 남성용 트릴비(Trilby) 펠트 모자를 구한 뒤 빈티지 풀라르(Foulard) 천을 덮어씌워 아트풀 다저(Artful Dodger)가 썼던 톱 햇(Top Hat)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늘 용도를 바꾸고 업사이클링을 중시하는 장 폴 고티에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나는 최근 이 스타일의 모자를 소장품으로 구했다. 하넬로레 스마트 (Hannelore Smart)가 쓰던 것으로, 그녀는 서커스 기획자 빌리 스마트(Billy Smart)의 아내이자 화려한 패셔니스타였다. 그녀가 입었던 타탄 무늬 직물로 만든 앙상블도 손에 넣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1991년 <보그> 9월호 스코티시 스토리 화보 촬영에서 이 의상을 입고 스포랜(Sporran,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허리에 매는 작은 장식용 주머니)까지 매고 사진작가 아서 엘고트와 촬영한 바 있다. 그 의상은 댄디한 프록 코트, 몽고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아우터, 논란이 많았던 고대 유대교 하시드 스타일의 1993년 가을 컬렉션 등 여러 경이로운 작품, 심지어 장 폴이 독특한 레이스 상표를 부착해 1997년 론칭한 오뜨 꾸뛰르의 보물 같은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장 폴의 패션쇼는 황홀함, 놀라움, 충격의 연속이었다. 따분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그의 뮤즈 태널 베드로시안츠(Tanel Bedrossiantz)가 독특한 힙 스윙 워킹을 선보이며 런웨이에 섰을 때는 더더욱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는 영국적 인습 타파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봉 시크 봉 장르(Bon Chic, Bon Genre, 프랑스에서 파리 상류층의 세련된 구성원의 하위문화를 지칭하는 말로 고티에가 에르메스를 디자인할 때 절정에 달했다)에서부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 스타일의 아코디언 연주자 이베트 오르네(Yvette Horner)의 잦은 참석까지 프랑스 문화의 시끌벅적한 축제 같은 면을 꽤 많이 보여주었다. 또 프랑스식 테 없는 세일러 모자와 선원 상의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활용했고, 1960년대 프랑스의 컬트적 패션 & 컬처 다큐멘터리 TV 시리즈로 미국인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던 <딩댕동(Dim Dam Dom)>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1989년 나는 알베르타 페레티에 관련한 기사를 쓰려고 장 폴 고티에를 찾아갔다. 알베르타는 이탈리아 해안가 마을 카톨리카(Cattolica)에서 아에페(Aeffe) 공장을 운영하며 당시 고티에 컬렉션 의상을 생산하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장 폴은 새 컬렉션을 한창 피팅하는 중이었고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또 우리가 이탈리아 디스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웠지만, 장 폴이 일을 마친 후 어마어마한 규모의 나이트클럽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미니밴을 빌려놓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났다. 나이트클럽을 재빠르게 쏘다니면서 특별하고 재미있는 저녁을 보낸 후 이른 아침, 우리는 느긋한 분위기를 지닌 클럽의 야외 테라스에 모여 있었다.
장 폴의 믿음직한 PR 책임자 리오넬 베르메유(Lionel Vermeil, 브라사이(Brassaï)의 사진 속에서 바닥에 끌리는 스키니 오버 코트를 입고 1930년대풍 여우털 띠를 두른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내게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했다. “장 폴이 수줍어서 못 물어보겠다는데, 혹시 그의 다음 패션쇼에 서고 싶은 생각 있나요?” 나는 정말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하고 싶죠. 좋아요, 좋아!” 나는 내 컵에 물이 넘치는 줄도 모른 채 대답했다. 리오넬은 나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장 폴의 이번 시즌은 바이마르 시대 레즈비언에서 영감을 받았거든요. 그는 당신이 딱 적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나는 얼굴에 담황색 파우더를 바르고 네덜란드 화가 키스 반 동겐(Kees van Dongen) 작품의 주인공처럼 아이섀도를 눈 주변에 검게 바른 채 록 콘서트가 열리는 거리에 있는 건물의 피팅으로 정신없는 백스테이지에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이 캐스팅을 동료들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대신 편두통이 온 것처럼 둘러대고 그들에게 그 쇼를 보러 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고티에 쇼에 서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었지만, 동료들은 그 거짓말에 속는 듯했다. 무슨 도덕군자인 양 나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폭풍 전야 같은 상황과 마주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모든 것이 대혼란에 빠졌다. 독일 화가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의 날카로운 드로잉처럼 곤두선 머리털로 만든 가발과 1920년대 종 모양 모자 클로슈를 쓴 사람들로 북적대는 킷 캣 클럽(Kit Kat Club)의 드레싱 룸 같아 보였다. 당시 이미 패션쇼 스타였던 나오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다들 초조해하고 있었다. 쇼 시작 직전 그녀가 마침내 극적인 모습으로 난처한 듯 멋쩍게 웃으며 등장했다. 분장사들과 헤어 팀 한 부대가 달라붙어 그녀를 재즈 시대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처럼 변신시켰다.
그다음엔 내가 무대에 올라, 엉덩이는 크고 허리는 잘록한 야스민 가우리(Yasmeen Ghauri)처럼 조심스러운 워킹과 나오미의 씰룩거리는 워킹을 최대한 흉내 내려고 애쓰면서 무대를 돌며 섹시한 자태를 보여주려고 했다. 메이크업이 너무나 혁신적이어서 관람객이 나를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퍼스 앤 퀸> 동료들은 내가 화보 촬영할 때마다 돌려보낼 의상 주변에서 보여준 동작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등장하자 영국 잡지 기자단 좌석 쪽에서 한 무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잡지의 런웨이 촬영 전담 사진작가인 니얼 맥키너니(Niall McInerney)는 내가 첫 번째 등장할 때 정신없이 필름을 교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내 모습을 다음 기회에 꼭 포착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두 번째 등장하자 그의 얼굴에서 알아챈 듯한 표정이 서서히 보였고, 다행히 그는 내 모습을 잘 찍을 수 있었다.
그 무대에서 내 워킹이 다소 과장된 게 분명했다. 두 번째 의상을 준비하러 들어가는데 리오넬이 다가오더니 장 폴이 미국 화가 로메인 브룩스(Romaine Brooks) 분위기는 조금 더 살리고 프랑스 발레리나 지지 장메르(Zizi Jeanmaire) 분위기는 조금 줄였으면 한다고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무대에 설 때는 조금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는 성공과 실패가 반반이었다. 실제로 나는 머릿속으로 완전히 다른 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열리는 그 패션쇼 당일 새벽 3시에 피팅하던 도중 내 무대의상 바지가 지나치게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내 허리가 꽤 가늘었는데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재단사들이 그것을 가져가 급하게 허리를 늘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크게 수선했고, 나는 그 사실을 무대에 오르기 직전 백스테이지에 줄을 서면서 발견하고 말았다.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심지어 핀을 찾아 고정해줄 시간조차 없었다. 어쨌든 누군가가 그 어둑어둑한 조명 속 무대로 내 등을 떠밀었고, 결국 나는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진 런웨이를 웨이스트 밴드만 의지한 채 걸어야 했다. 워킹 도중 바지가 흘러내릴까 봐 거의 발작 수준의 공포에 휩싸여 덜덜 떨어야 했다. 다행히도 스테판 마레(Stéphane Marais)의 무성영화 스타일 메이크업이 굉장히 두꺼웠기 때문에 빨개진 내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무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돌출되어 있던 내 골반뼈를 드러내며 바지가 흘러내리고 말았다. 다행히 위에 입은 미니스커트가 그 낯부끄러움을 덮어주었다. 장 폴의 성별 구분 없는 레이어드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내 모습의 남성 버전인 멋진 친구 마틴 호튼(Martine Houghton)의 팔을 잡고 피날레 무대에 올랐다.
할 이야기는 아주 많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나중에 출판될 책을 통해 못다 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길 바란다. 한편 이 모든 영감을 주고, ‘패션이란 포용, 기쁨, 알 수 없는 마법과 같은 힘에 관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 장 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 글
- 해미시 보울스(Hamish Bowles)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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