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CHANGE THE FUTURE
젠더의 벽을 허물고 몸의 한계를 넘어 매일 자신과 때론 세계와 싸워 이긴 스포츠 우먼 6인.
펜싱, 최수연의 지구력
검투사의 상이 있다면 이런 얼굴이 아닐까? 날카로운 눈, 무정한 턱, 발레리나처럼 반듯하게 곧추세운 등, 절제된 동작… 카메라 앞에 선 펜서 최수연의 모습은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언뜻 보이는 등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에 나오는 이 성경 구절은 스스로를 지탱하는 무기이자 삶 그 자체다.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가득 채워진 약력을 뜯어보면 그의 선수 생활이 이 비장한 문장만큼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2003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검을 잡은 최수연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건 스물아홉 살의 일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따기 전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국가 대표 엔트리에 이름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메달을 휩쓴 유망주였지만 대학교 졸업 직전 실업 팀 입단이라는 관문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십자 인대 파열로 1년 이상 휴식과 재활이 필요하다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잠깐, 포기할까 생각했어요. 다시 펜싱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 신앙을 붙잡고 재활에 집중하려고 애썼죠. 그 덕에 8개월 후 국내 복귀전에서 3위라는 성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18년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은퇴를 생각하던 최수연은 2019년 국제펜싱연맹이 주관하는 국제 그랑프리 대회에서 세계 랭킹 1위였던 소피아 벨리카야와 겨뤄 준우승을 기록한다. 종주국 프랑스와 유럽의 강국, 아시아의 강호 중국 사이에서 세계 랭킹 9위까지 올라간 지구력은 경기에서도 드러나는 강점이다. “경기 중엔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이에요. 지고 있는 게임을 자주 겪었는데 격차가 커도 위축되지 않고 따라잡은 적이 많거든요. 나 자신을, 내 움직임을 믿고 해왔던 것 같아요.” 시작을 알리는 신호, ‘알레!’가 울리자마자 동시에 달려들어 단숨에 점수를 내는 사브르 종목은 경기가 전개되는 스피드만큼이나 점수 차가 빠르게 커지는 것이 특징이다. 빛 같은 칼 놀림으로 상대를 먼저 찌르고 베어야 공격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힘과 기개도 중요하다. “승리욕이 강해요. 어릴 때부터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게 좋았어요.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상대의 수를 읽고 약점을 간파해 허를 찌르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게 지금도 검을 계속 잡고 있는 이유 같아요.” 만 서른이 된 최수연은 이번엔 진짜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불확실한 환경, 예상 밖의 변수가 늘 도사리는 운동선수에겐 긴 호흡으로 먼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은 애초에 사치다. “당장 눈앞에 놓인 1년만 봐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는 단체전뿐 아니라 개인전에도 참가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요.” 스스로는 해마다 ‘마지막’을 각오하지만 올해에도 내년에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삶 속에서 갱신하고 있다.
다이빙, 조은비의 끈기
높은 곳에서 물 가운데로 뛰어드는 수상경기 종목.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공포심을 극복하고 달리기, 발 구름, 공중 기술, 입수 자세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스포츠. 다이빙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건 물론 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수 미터 높이의 스프링보드에 선 선수도 무서움을 느낄까? 짧은 숨 한 번 뱉고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게 너무 궁금했다. 온라인 사전엔 원하는 답이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해 열다섯 살에 국가 대표가 된 16년 차 다이빙 선수 조은비를 만나자마자 우문인 걸 알면서도 물었다. “매일 하는데, 무섭진 않죠”라는 답을 짐작하고. 예상과 달리 ‘항상 무섭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서워서 난간을 잡을 때도 있어요.” 그건 열심히 훈련한 기술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와는 전혀 다른, ‘오금이 저리는’ 공포에 가깝다고 말한다. 10m 플랫폼, 3m 스프링보드와 싱크로나이즈드 종목에서 경연하는 조은비는 그 무서운 걸 하루에 적게는 60~70번, 많을 땐 100번도 넘게 한다.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의 난이도, 정확성 같은 건 제치더라도 거의 매일 수십 번 이상 공포에 맞선다는 뜻이다. 그거 하나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나? 2013년 톈진 동아시아대회 여자 싱크로나이즈드 10m 플랫폼 동메달로 시작해 2017년 전국체육대회 수영 여자 일반부 싱크로다이빙 3m 금메달까지 조은비의 화려한 성적과 완벽한 기술도 대단하지만 공포에 맞선다는 사실이 제일 멋졌다. 그거야말로 자기를 뛰어넘는 일이니까. “무서울 땐 그 마음을 그냥 눌러요. 긴장하면 몸이 굳으니까.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다음에 어떤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고.”
그가 구사하는 기술은 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돌고 수면으로 착지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경쟁자는 더 어려운 걸 해내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실수’다. “기술을 너무 빨리 습득해 그 동작을 완벽히 구사하는 기본기를 다지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에요. 그래서 기본기를 다지는 데 시간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죠.” 타고난 힘과 탄탄한 실력, 많은 국제 대회 경험에도 불구, 올림픽 출전이라는 문 앞에서 늘 기회를 놓쳤다. 그 위기에 잠시 주춤했지만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적이 없었거든요.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가, 오기가 나서 더 열심히 훈련에 매달렸어요, 악바리처럼. 또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8년을 기다렸어요.” 그 간절함과 열망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화 내내 꾸미는 말과 겉치레,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던 그가 솔직하게 답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이 ‘재미있다’고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즐긴다거나, 재미를 느낀 적은 없어요. 다만 내가 해냈다는 거, 성취감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아요. 이게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다이빙은 그냥 저의 전부죠.”
우슈, 서희주의 절실함
‘우슈’라는 단어를 발음해본 적 있나? 비인기 종목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그 언어가 스포츠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우슈는 무술의 중국어다. ‘스포츠가 된 쿵후’로도 설명한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예술적인 몸 사위로 장검을 휘두르는 장쯔이와 양자경의 검투를 기억한다면, 거기서 결투라는 행위를 뺀 것이 서희주가 하는 일이다. 우슈 세계에선 그 운동을 ‘투로’라고 부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속도로 창검을 휘두르고, 공중에서 720도까지 회전하는 고난도 무예. 종주국의 창창한 고수 사이에서 서희주는 세계우슈선수권대회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잘하는 까닭은 심플하다. 스무 해 동안 거의 매일 우슈만 했으니까. 우슈 체육관장을 아빠로 둔 일곱 살 소녀에겐 무술이 놀이였고, 그게 올해 만 스물일곱이 된 선수에게 ‘20년’이라는 거대한 경력이 생긴 이유다. “유치원 학예회, 초등학교 장기 자랑 같은 데서 우슈를 하면 친구들이 되게 멋지다고 했어요. 그게 좋아서 계속하다가 지금까지 온 거죠.” 물론 오래 한 것만 실력의 비결은 아니다. 아홉 살에 전국 대회에서 단숨에 주목을 받고, 열여섯 살에 청소년 국가 대표로 발탁됐다. ‘타고난 재능’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좋아서 인생을 걸었지만 수월한 길은 아니었다. 낮은 인지도와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 여러 번 발목을 잡았다. 대부분의 훈련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탓에 2014년 스물두 살 때 은퇴를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여겼던 도전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었다. 거기서 잡은 동메달은 서희주에게 새로운 동력이 돼줬다. 그 뒤로 주위의 만류, 열악한 환경 따위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진짜 고비는 우슈를 더는 할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을 만났을 때였다고 회상한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유력 금메달 후보였던 서희주는 경기 직전 리허설에서 공중회전 연습 중 잘못된 착지로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됐다. “4년 동안 준비했는데, 눈앞에 기회를 두고 기권해야 했어요. 그때도 마지막 도전으로 생각했거든요. 너무 속상했지만 부상도 제 책임이니까요. 더 힘든 건 우슈를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렇게 물러나긴 분했죠. 그래서 더 독하게 재활하고 훈련하며 버텼어요.”
이미 ‘국내 최초, 최다 여성 투로 메달리스트’라는 역사를 쓴 서희주는 우슈 선수로 더 성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슈를 알릴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인기 종목으로 만든 것처럼. 물론 그만큼 해내긴 어렵겠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절실해요.” 몸담은 일, 직업에 이런 열망과 애정, 책임감을 가진 인물이 몇이나 될까? 인터뷰 중에도 그녀는 ‘우슈가 좋다’는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다. “가끔 영상으로 우슈를 하는 제 모습을 보면 제 자신이 정말 멋있어요. 거칠기도 하지만 아름답잖아요. 그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어요.”
축구, 이민아의 책임감
A매치 12년 경력의 국가 대표 축구 선수. 2017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3,369명의 회원을 보유한 팬클럽 ‘민아월드’의 여신. 짧은 한국 여자 축구의 역사에서 ‘황금 세대’로 불리는 이민아는 여전히 ‘여자가 무슨 축구냐’라는 편견과 마주한다. “축구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요. 축구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예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운동이니까.” 이 쿨한 태도는 축구에 가진 순전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대화를 나눈 40분 동안 이민아는 ‘축구가 재미있다’는 말을 열일곱 번쯤 했다. 축구 인생도 그런 이유로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게 좋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쟁취하는 게 즐거워 축구에 빠져들었다. 한 반 45명 중 30명을 뽑아 축구를 시켰던 교내 특별활동을 넘어 선수가 되기로 한 이유, 열악한 환경과 지원에도 축구 선수를 직업으로 삼은 이유도 ‘좋아하고 재미있으니까’라고 일축한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그런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곧장 따라오는 답변. “인생의 절반을 축구를 하며 보냈어요. 재미에 이유가 있을까요? 골을 넣었을 때, 멋진 장면을 만들었을 때, 역전했을 때 짜릿하고 희열을 느껴요. 그 기분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물론 힘든 순간이나 잘 안 풀리는 순간도 있지만 그런 좋은 기억이 그걸 덮어줘요.”
이민아가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잘해서다. 그는 2011년 WK리그 인천 현대제철에 입단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 시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볼을 다루는 능력이 있어 돌파력이 좋다는 평을 듣는다. 허를 찌르는 패스, 작은 체구를 극복하는 빠른 몸놀림과 발재간, 볼에 대한 집착도 강점. 그 기량으로 2018년 동아시아 여자 축구 강국인 일본에 진출해 나데시코 리그 고베 아이낙에서 준우승을 견인했다.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 부상을 안고 뛴 그는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올해 WK리그로 돌아왔다. 도쿄 올림픽 예선 경기가 한창인 요즘 전치 4~6개월의 햄스트링 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활에 매진 중이다.
“급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대표 팀이 소집된 상황에서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크지만 선수 생활을 지속하면서 오랫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한 걸 아니까요. 몇 주 이상 재활에 도움이 되는 근력 운동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지루하고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욕심을 내려놓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어요. 부상이 심할 땐 운동 자체를 아예 못했는데 그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내 차례가 또 올 거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다독이는 중이에요.” 오래 축구 하고 싶은 마음은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이민아는 개인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한국 여자 축구를 더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여자 축구는 뛸 수 있는 경기가 많지 않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이길 원한다. “그러다 보면 어린 친구들이 여자가 하는 축구에 관심을 갖고 ‘저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민아에겐 다 계획이 있다.
피겨, 임은수의 도약
올해 만 열일곱 살이 된 임은수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엠마 왓슨이 연기한 헤르미온느 같았다.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고, 질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답하며 곁길로 빠지면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죠?”라는 말로 산만한 대화를 정리했다. 등을 곧게 편 채 성실한 태도로. 그것만으로도 임은수가 왜 김연아를 잇는 유망주로 꼽히는지 알겠다고 쓰면, 성급한 추측으로 비칠까? 자기의 역사, 목표와 미래 같은 걸 묻는 질문에 망설임이나 중언부언이 없다는 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임은수는 TV에 나온 김연아를 본 후 엄마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놀러 간 ‘여섯 살 끝 무렵’이 첫 스케이팅 경험이라고 기억한다. 여덟 살엔 스스로 ‘선수’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말했다. 엄마 이규숙 씨가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한 번도 먼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회상한 시절은 고작 초등학생 때다. “힘들다는 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성격이 아니에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 힘들어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참고 했어요.” 의젓함은 실력이 돼 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 대표가 됐다. 이후 쌓은 경력은 -‘쇼트 70점, 총점 200점을 넘은 두 번째 한국 여자 선수’,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메달을 딴 두 번째 한국 여자 선수’, ‘챌린저 시리즈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 선수’, ‘주니어 세계 선수권에서 최고 순위를 보유한 두 번째 선수’ 같은 기록- 열셋부터 열일곱까지 그가 어떤 강도로 인고했는지 쉽게 짐작케 한다. (잘 알고 있겠지만 최초의 기록은 모두 김연아의 것이다.) 올포디움이라는 전설을 남긴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한동안 그랑프리 시상대에서 우리말로 된 이름을 찾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임은수가 첫 시니어를 맞은 2018-2019 시즌에 포디움 위 태극기는 다시 현재형이 됐다. CS 아시안 오픈 트로피 1위, CS US 인터내셔널 클래식 2위, 그랑프리 5차 로스텔레콤 컵 3위 등 그해 일군 성과로 임은수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이 됐다.
올해 시니어 2년 차가 된 그는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202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8위라는 성적을 냈다. 미디어가 라이벌로 종종 견주는 유영은 은메달을 땄다. 결과를 두고 어떤 매체도 시즌 첫 200점 고지를 돌파한 그의 경기력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열세 살 때부터 보여준 꾸준한 기량 덕이다. “나 자신이 잘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는 진짜 열심히 했으니까요.” 자신감의 비결을 스치듯 물었던 하루 일과에서 찾았다. 임은수는 일요일을 뺀 매일, 거의 하루 종일 빙상장과 체육관에서 훈련한다. “연습을 열심히, 성실히 하면 경기에서 어떤 상황이 와도 전에 해왔던 것들이 있기에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연아 언니’의 조언을 붙잡고. 그런 시간이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운동선수가 가져야 할 꿈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겠지만 제가 진짜로 원하는 건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는 거예요.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발전하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요.”
핸드볼, 최수지의 각오
1997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한국 스포츠 역사를 기록하는 ‘이야기 한국체육사’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다. <단체구기의 MVP 핸드볼>은 열한 번째 출간된 책이다. 축구, 야구, 농구와 같은 쟁쟁한 구기 종목 사이에서 핸드볼이 MVP라는 단어를 차지한 건 화려한 전적 덕이다. 올림픽에서 한껏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목. 지난해 9월 도쿄 올림픽 예선에서 우승해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룬 한국 여자 핸드볼 팀이 역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총 일곱 개로 두 개의 금, 네 개의 은, 한 개의 동메달이 있다. SK 슈가글라이더즈의 최수지는 한국 여자 핸드볼의 영광을 이을 자원이다. 2014년 핸드볼 코리아 리그 여자부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인화여중 3학년 시절 전국중고핸드볼대회에서 여중부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면서 고교, 실업 팀 감독의 눈에 들었다. “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제가 있던 팀이 매번 우승을 했거든요. 그래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기는 맛을 알아서.”
전문가들은 그의 기량을 이렇게 분석한다. 빠르고 정확한 패스로 공격에 기동성을 더하는 플레이. 빠른 발을 수비에 잘 활용한다. 가로채기, 돌파 등의 기술이 좋아 공격의 활로를 만들고 경기의 흐름을 유리하게 바꾼다. 좌우 패스에 능수능란하며 수비 범위도 넓은 편이다. 볼 배급이 좋고 센스가 있다. 윙 포지션, 센터백에 요구되는 조건을 갖춘 선수. 걸출한 실력이 물론 첫 번째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의 예쁘장한 얼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다. “그렇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아요. 중계방송에서 저를 보면 별로 안 예쁘던데. 왜들 그러지?”
최수지는 대화 내내 직선적이고 담백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 같은 것, 고난과 갈등을 딛고 어떤 걸 넘어선 이야기를 기대하며 던진 질문은 영민하고 쿨한 요즘 운동선수 앞에서 번번이 무안을 당했다. “몸이 아플 때 위기나 슬럼프가 오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운동을 해와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나 자신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아니까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롤모델도 멀리서 찾지 않는다. 주저 없이 같은 팀에서 운동하는 김온아를 꼽았다. “멋있잖아요. 잘하고.” 연대는 여전히 여자 핸드볼 팀을 지탱하는 힘이다. “연대감이 어떤 건지 잘은 모르지만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며 토닥이고 격려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단체 운동이라 한 명만 삐끗해도 팀에 영향을 끼치거든요. 선후배 사이의 위계도 예전처럼 일방적이지 않아요. 후배들도 하고 싶은 얘기, 원하는 게 있으면 편하게 말해요. 존중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예요.” 리우 올림픽에서 조별 리그 탈락으로 분루를 삼킨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 팀 최종 엔트리는 2월 현재 확정되지 않았다.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이 계획이자 목표라고 말한다. “한 번도 제 자신이 마음에 든 적이 없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도록 만들고 싶어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그런 순간이겠죠.”
- 피처 디렉터
- 조소현
- 컨트리뷰팅 에디터
- 베베 킴(Bebe Kim)
- 글
- 류진
- 포토그래퍼
- 목정욱, 고원태(최수지)
- 헤어
- 에녹(최수연, 조은비, 이민아, 임은수), 한송희(서희주), 김우준(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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