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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탄생시킨 패션 스타 토모 코이즈미의 네버랜드

2023.02.20

SNS가 탄생시킨 패션 스타 토모 코이즈미의 네버랜드

색색의 네버랜드

토모 코이즈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단숨에 패션 스타가 되었다. 평범한 옷이 넘치는 가운데 그의 옷은 무지개처럼 떠올랐다.

디자이너 토모 코이즈미. 일본에서 코스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는 형형색색의 러플 드레스로 단숨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어느 날 새벽 3시, 도쿄에 살던 토모 코이즈미(Tomo Koizumi)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DM을 받았다. “그야말로 제가 몇 년 동안 본 것 중 가장 멋진 옷이에요.” 짧지만 강력한 칭찬. 영국 스타일리스트이자 <러브> 편집장 케이티 그랜드(Katie Grand)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모든 게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2020 F/W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리던 지난 2월 아침, 루브르 근처 카페 르 뮈세에서 만난 토모가 그때를 회상했다. “디자이너 자일스 디컨이 제가 만든 옷 사진을 리그램했고, 그것을 케이티가 본 거죠. 그 DM은 캡처해서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마크 제이콥스와 미우미우 쇼를 스타일링하는 슈퍼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의 전폭적 지지로 토모는 지난해 2월 뉴욕에서 데뷔했다. 장소는 마크 제이콥스의 매디슨 애비뉴 매장이었다. 유명 하우스 브랜드를 담당하는 캐스팅 디렉터 아니타 비튼의 지휘 아래 모델 벨라 하디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조안 스몰스, 배우 로완 블랜차드가 그의 옷을 입고 나왔다. 헤어는 귀도 팔라우, 메이크업은 팻 맥그라스(돈을 주고도 섭외하기 힘든 슈퍼 아티스트들이 토모의 쇼를 위해 모였다). 신인의 행운으로 보기에 데뷔 쇼는 파격이었다. 뉴욕 패션 위크에서 한 방을 터트린 토모는 전형적인 런웨이를 탈피한 퍼포먼스로 두 번째 쇼를 발표했다. 물론 첫 쇼와 스태프는 같았다. 트랜스젠더 모델 아리엘 니콜슨이 홀로 나와 옷을 하나씩 갈아입었고 사랑, 행복, 유머, 집착, 공포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동그란 대리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가 파란색 벨벳 소파 쪽으로 갔다. 의자에 털썩 앉는 토모의 얼굴에서 약간 피곤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제 LVMH 프라이즈 행사가 늦게 끝났어요.” 토모는 아메리카노 대신 마시멜로가 올라간 핫초코를 한 잔 시키며 대답했다. “어제가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날이었어요. 뉴욕에서 쇼를 발표하기 전에는 LVMH 프라이즈에 도전할 생각도 못했어요. 자격 요건 중 하나가 두 번 이상 컬렉션을 발표하는 것이었죠. 이전에는 코스튬 디자이너로 일했기에 이렇다 할 적절한 컬렉션이 없었어요. 그런데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들다니! 오래 꿈꾸던 것 중 하나가 이뤄진 거죠.”

이번 프라이즈의 심사위원은 안나 윈투어, 지지 하디드, 조나단 앤더슨, 사운드 디자이너 미셸 고베르, 매치스패션 패션 & 바잉 디렉터 나탈리 킹엄,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 등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브랜드의 가능성을 평가했다. 우승자에게는 상금 30만 유로(약 4억원). 우승 혹은 스페셜 프라이즈 수상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음으로 답했다. “LVMH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든 아시아 디자이너 가운데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저뿐이더군요. 모두 미국이나 유럽에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독학인 저와 달리 모두 유명 패션 스쿨 출신이죠. 다들 옷이 진열된 부스에서 전문용어로 자신의 컬렉션을 설명하는데, 저는 그저 이런 식이었죠. ‘제 옷 귀엽지 않아요?’” 패션 피플들은 오히려 꾸뛰르적 드레스를 번지르르한 말보다 친근하고 순수한 언어로 설명한 그의 말재주에 매력을 느꼈을지 모른다. 혹은 알록달록한 옷을 직접 입어보라고 권유하는 그의 미소에 마음이 녹았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직접 제 옷을 입어보더니 웃으며 사진을 찍더군요.” 그가 스타일리스트 카린 로이펠트, 블로거 수지 버블, 저널리스트 데릭 블라스버그를 언급했다.

나 역시 촬영을 위해 토모의 옷을 서울로 공수했을 때 옷 자체로부터 느껴지는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옷이 담긴 압축 지퍼백을 여니 드레스가 한순간에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모델들과 스태프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 때보다 ‘인증샷’을 많이 찍었다). 서울에서 촬영한 현장 사진을 보여주자 토모는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 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원의 클럽 트렁크(Trunk), 동대문 원단 시장과 식당이 단골이에요. 육회, 족발, 감자탕이 제가 좋아하는 한식 메뉴죠. 동대문은 일본보다 원단 시장 규모가 커서 자료 조사차 방문해요. 한국의 브랜드 기준(Kijun)의 디자이너 김현우와도 오랜 친구입니다.”

도쿄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지바시에서 자란 토모가 패션에 관심을 가진 건 열네 살 때였다. “서점에서 존 갈리아노의 디올 오뜨 꾸뛰르 사진을 본 후 ‘하이패션이 이거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패션 에디터나 스타일링, 패션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죠. 전문 패션 스쿨을 갈까, 대학에 갈까 고민하다, 대학 진학이 먼저겠다 싶어 예술교육을 전공했어요. 페인팅, 조각,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걸 배웠죠. 하지만 제대로 옷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진 않았어요. 친구들과 1년에 한두 번 저만의 패션쇼를 열듯 옷을 만들었죠. 제가 만든 옷을 친구들이 클럽에 입고 간 적 있는데 그 모습이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 찍히면서 제 이름을 알렸어요. 그게 2011년쯤이군요.”

그의 시그니처 룩은 온갖 색깔이 섞인 무지개떡 같은 러플 드레스다. 대부분의 창조가 그렇듯 그 시작은 예상치 못한 데서 시작됐다. “평범한 옷보다 강렬하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원하는 옷감을 살 돈이 부족했죠. 3~4년 전쯤 원단 시장을 둘러보다가 화려한 폴리에스테르 오간자가 재고 판매용으로 나온 적 있어요. 옷에 여러 색깔을 섞게 된 것도 재고 원단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예요.” 이렇듯 화려한 러플 드레스는 그 탄생부터 ‘지속 가능 패션’이었다. 요즘 패션계의 주제와도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어제 LVMH 프라이즈에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해 수차례 질문을 받았고 또 대답했어요. 조만간 토모 코이즈미의 업사이클링 티셔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토모 코이즈미의 옷 가격에 대해 덧붙이자면, 이런 티셔츠는 200달러. 정교한 드레스는 3만 달러까지 치솟는다.

화려한 색감의 폴리에스테르 오간자로 디자인한 토모 코이즈미의 2020 S/S 룩.

토모는 도쿄 요요기 공원 근처의 아틀리에에서 어시스턴트와 둘이 모든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만든다. 주문 제작 방식이기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그의 옷을 볼 기회는 드물다. 그에게 옷을 의뢰하고 싶으면? “제게 이메일을 보내면 됩니다!” 재고를 만들지 않는 제작 방식 또한 지속 가능성의 한 부분이다. “제 스스로도 지속 가능한 상태이고 싶어요(웃음). 두 번의 뉴욕 쇼, 한 번의 도쿄 쇼를 거치니 휴식이 필요해요.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쇼를 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옷은 기성복이 아니니 1년에 한 번쯤 쇼를 발표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새 옷을 보여주고 싶으면 언제든 웹사이트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면 되니까요.”

젊은 디자이너에게 특유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생기는 것이 좋은 일인지 한계를 긋는 일인지 물었다. “개성이 있다는 건 어쨌든 좋은 것 같아요. 어디서도 살 수 없는 옷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른 디자이너가 이미 만든 일상적인 옷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가 소질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현재 패션계에는 판타지와 초현실주의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옷은 너무 많아요. 옷이 넘쳐 재고를 태우는 시대잖아요.” 옷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 팀과 조화를 이루는 것, 소셜 미디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 모두 디자이너를 이루는 요소로 꼽을 수 있겠지만 토모는 무엇보다 자신의 옷을 통해 ‘순수한 행복’을 전달하길 원한다.

2020년은 토모에게 전환점이 될 것이다. “오는 9월에 뉴욕 패션 위크에서 쇼를 발표할 거예요. 다른 나라 젊은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주기 위해 마닐라, 상파울루 등에서도 쇼와 전시를 열어요. 도쿄 올림픽에 맞춰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고, 또 깜짝 놀랄 만한 큰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얼리, 웨딩드레스, 코스메틱 등 패션에 한정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죠. 정말 많은 계획이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패션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Tim Walker, 이준경
헤어
이현우
메이크업
유혜수
모델
선혜영, 김다영, 김주향, 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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