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와인
홈 바와 홈 파티가 트렌드가 되어버린 지금, 와인 셀러에 근사한 와인 한 병 챙겨두고 싶잖아요.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샤토 무통 로칠드 1945
지난 5월 8일 한국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했다면 유럽에선 ‘유럽 전승 기념일’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보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죠. 이때 감옥에서 탈출한 필리프 드 로칠드 남작은 곧바로 프랑스 보르도의 와이너리로 향했습니다. 이름에서 예상했겠지만, 필리프 드 로칠드는 현재 프랑스 5대 샤토 중 하나로 불리는 무통 로칠드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가문 출신인 탓에 전쟁 중 감옥에 투옥되었고 프랑스인 아내는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기나긴 전쟁의 끝을 축하하듯 1945년 보르도는 20세기 최고 빈티지를 기록했죠. 필리프 드 로칠드 남작은 화가 필리프 줄리앙에게 승전과 훌륭한 빈티지를 기념할 레이블을 주문했어요.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아’의 앞 글자를 올린 ‘샤토 무통 로칠드 1945 포이약, 보르도’는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죠. 그때부터 무통 로칠드는 샤갈,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담은 라벨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와인은 영국의 대형 와인 숍 헤도니즘에서 1만7,800파운드(약 2,690만원)에 판매 중입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자르모젤빈처젝트의 1989년 젝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었던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죠.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연합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냉전 시대였고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독일 통일을 이루며 냉전 시대도 끝을 맺었죠. 독일 서부 라인강과 모젤강을 따라 향그러운 포도밭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중 모젤 지역은 청량하고 섬세한 리슬링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죠. 이곳에 독일의 스파클링 와인 ‘젝트’로 소문난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자르모젤빈처젝트(이하 SMW)는 1983년 프랑스의 샴페인 때문에 잊혔던 독일 고급 젝트를 되살리고자 와인 생산자 32명과 함께 설립한 와이너리입니다. SMW의 와인 셀러에는 특별한 와인이 있는데, 1989년, 1990년 빈티지의 젝트입니다. 라벨의 사진부터 눈길을 끄는데요, 이는 장벽이 무너진 후 독일 정부가 각국의 독일 대사관에 전송한 사진으로 당시의 생생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SMW의 슈미트 회장은 오랫동안 숙성시킬 수 있는 젝트를 선별해 20년 숙성 후 출시했습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따르면 짙은 황금 빛깔에 고목과 시가, 가벼운 페트롤 향, 섬세한 기포와 모젤 와인 특유의 미네랄 향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고 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92회 오스카 와인
와인을 빚는 셀러브리티들이 있습니다. 와인 애호가로서 여가 삼아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와인메이커로서 사활을 건 사람도 있죠. 전설의 명작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입니다. 그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의 포도밭을 오가며 와이너리를 운영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1975년 나파 밸리에 첫 포도밭을 구입하고 1977년 첫 와인을 출시했죠. 필름메이커보다 와인메이커로 명성을 얻은 건 2000년대부터였어요. 소노마 밸리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가 문을 열고 ‘프란시스 코폴라 리저브’, ‘소피아’ 등 그와 가족의 이름을 딴 와인과 ‘디렉터스 컷’, ‘디렉터스 그레이트 무비’ 등 영화를 모티브로 한 와인이 화제가 되었죠. 이름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랍니다. ‘프란시스 코폴라 2014 블랙 라벨 클라레 다이아몬드 컬렉션 카베르네 소비뇽’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음료 품평회인 ‘월드 와인 컴피티션’에서 플래티넘 메달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엔스지애스트(Wine Enthusiast)>는 지난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와인메이커로서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죠. 그의 와인 리스트에는 특별 한정판 와인도 꽤 눈에 띕니다. 특히 올해는 지난 2월 아카데미 시상식의 공식 와인으로 선정된 ‘더 패밀리 코폴라 92회 어워드’가 번쩍번쩍 금빛 광채를 뽐냅니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관왕을 거머쥐었죠. 2018년 피노 누아, 2017년 샤르도네로 구성된 오스카 와인은 영화 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 글
- 서다희(칼럼니스트)
- 사진
- Courtesy Photos
- 에디터
-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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